▲실록각 편액. 실록을 보관하던 곳이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이정근
"뜻밖에 왕세자의 상을 당하여 상고할 만한 문서가 없으니 급히 사관을 강화도에 보내 실록에서 상고해 오도록 하소서."예조에서 품의했다.
"입관 이후의 상례에 대해서는 의당 실록에 의거해서 해야겠지만 입관 이전의 상례에 대해서는 실록을 상고해 오기를 기다릴 수 없으니 3일 만에 입관하도록 하라."세자를 세자답게 모셔야 합니다
"세자 저하를 그렇게 대하는 것은 예가 아닌듯 합니다.""3일 만에 입관하는 것은 사대부와 똑같은데 무슨 해로울 것이 있겠는가?"한 나라의 예를 다루는 예조가 오히려 어리둥절했다.
"대행왕과 대행왕비의 상에는 찬궁(欑宮)을 설치하고 6일 만에 성복(成服)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세자의 상에는 참고할 만한 전례가 없으니 어떻게 처리할까요?""4일 만에 성복할 것이니 찬궁은 설치하지 말라. 재궁(梓宮)이란 두 글자도 쓰지 말고 구(柩)자를 쓰라.""구(柩)자는 대부나 사서인에게 쓰는 것이므로 왕세자의 상에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세자는 평소에 동궁이라 칭하고 훙서하면 빈궁(殯宮)으로 칭하는 것인데 유독 상례에 쓰는 제구에만 궁(宮)자를 쓰지 않는 것은 죽은 이를 보내는 대례에 부족한 감이 있습니다." 보덕 서상리, 필선 안시현, 겸필선 신익전, 문학 오빈, 사서 유경창, 설서 장차주가 연대하여 주청했다.
"참작하여 결정하였으니 미진한 일이 없는 듯하다."인조가 잘라 말했다.
"원으로 할까요? 묘로 할까요?"이조(吏曹)가 의문(儀文)을 제기했다. 왕실 묘제는 능, 원, 묘로 구분된다. 등극했거나 추존된 왕과 왕후는 릉(陵), 세자와 세자빈은 원(園), 강등된 왕과 그밖에 왕실 사친은 묘(墓)로 칭했다. 연산군 묘와 광해군 묘가 여기에 해당된다.
"묘로 하라."예정된 수순처럼 인조의 의도는 거침이 없었다.
염습에는 관리를 입회시켜 주십시오"사리를 모르는 내관에게 염습을 맡겨둘 수 없으니 궁관 한 사람과 빈궁 당상이 들어가 참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승정원이 품신했다. 염습(殮襲)은 망자의 몸을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는 의식을 말한다. 세자의 벗은 몸을 확인하고 싶다는 의도다.
"그럴 필요 없다."관리들이 염습에 참여한다는 것은 탐탁치 않았다. 왕조시대에 '탁하고 치니 억하고 쓰러졌다'를 뒤집을 만한 물증이 발견된다 해도 그것을 문제 제기할 관리가 있을까마는 인조는 거절했다. 승정원의 의도를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이다.
"염습은 중요한 예이오니 종친부 족친이 들어가 참여해야 합니다.""꼭 그렇게 해야 하나?""네, 마마."인조가 마지못해 동의했다. 수묘관으로 임명된 종실 이희와 시묘관에 하명된 내시 박창수가 풀었던 머리를 묶어 매고 습(襲)에 임했다. 시강원·익위사·정원·옥당·종친·문무백관이 꿇어 엎드려 있는 사이 습이 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