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 정문 사이로 본관이 보인다.
김한내
수시 1단계 전형의 공정성이 도마 위에 오른 지 한 달이 지났지만 고려대학교는 "전형요강에 따라 공정하게 학생들을 선발했다"고 말할 뿐, 납득할 만한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고려대학교는 2008학년도 수시 2학기 1단계 전형에서 고교등급제를 적용해 특수목적고등학교(이하 '특목고') 학생들을 우대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학교생활기록부 성적만을 활용하는 1단계 전형에서 내신 등급이 높은 일반고 학생들은 떨어지고 내신 등급이 그보다 낮은 특목고 학생들이 대거 합격한 사례가 속출했기 때문이다.
또한, 교과영역 90%, 비교과영역 10%를 반영한다고 했지만 교과영역의 실질반영률을 낮추고 특목고 학생들에게 유리한 공인영어성적 등 비교과영역을 기준으로 선발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고려대학교 학생들은 수시전형을 둘러싼 논란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의혹이 제기된 후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후문에 고교등급제 적용을 비판하고 대학당국의 책임 있는 태도를 요구하는 대자보가 며칠 동안 붙어 있었을 뿐 학생들의 별다른 움직임은 찾아볼 수 없었다. 고려대생들을 직접 만나 이번 논란에서부터 고교등급제에 대한 생각까지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우수한 학교 차별 두는 것 당연" vs. "교육양극화만 심화시킬 것"고교등급제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은 팽팽하게 나뉘었다. 그 필요성에 공감하는 학생들은 학교 간 실력차이를 무시할 수 없다고 말한다. 비평준화 지역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경제학과 4학년 이아무개(24)씨는 "내신이 불리해 수시로 대학가는 친구들이 별로 없었다"며 "우수한 애들끼리 경쟁하는 학교를 우대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외국어 고등학교를 나온 사회학과 2학년 장아무개(20)씨는 "다른 학교들을 어떻게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느냐"며 "고교등급제까지는 아니더라도 내신 보정조차 하지 않는다면 내신 따는 환경이 불리한 특목고 학생들을 오히려 역차별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교등급제에 대한 스스로의 위선적인 태도를 인정하는 학생도 있었다. 외고 출신인 국어교육과 3학년 윤지현(21)씨는 "겉으로는 고교평준화가 교육에 의한 계층 양극화를 줄여주니 고교등급제에 반대한다고 말은 하지만 속으로는 학교 간 실력차이를 인정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털어놓았다.
고교등급제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컸다. 정치외교학과 4학년 권경원(23)씨는 "수시 1학기 때 우리지역에서 나만 됐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주변 사람들은 놀라지 않고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고교평준화 제도에도 불구하고 암묵적으로 다들 고교등급제를 인정하고 있는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또한, 그는 성적 좋은 학생들을 뽑으려 혈안이 된 대학을 보며 "성적 높은 학생들을 모집해야 우수한 대학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을 훌륭하게 교육해야 우수한 대학"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고교등급제가 교육에 의한 계층양극화를 강화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정치외교학과 3학년 김지원(20)씨는 "고교평준화가 근본적인 처방책은 아니"라면서도 "한국교육제도 하에서 문제 풀기와 사교육에 따라 매겨지는 고교서열은 교육에 의한 계층양극화를 확대 재생산할 것"이라 말했다.
통계학과 3학년 강민수(22)씨 역시 특목고와 자립형사립고의 비싼 등록금을 지적하며 "고교등급제는 부의 대물림을 공고화할 것"이라 우려했다.
"사회적 약속 깨뜨린 고려대, 신뢰 무너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