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 앞 거리. 항상 활기가 넘친다. 맛있는 음식도 많다.
김귀현
'또각 또각 또각'다시 여대 앞 골목길, 하이힐 소리가 경쾌하다. 그 소리에 이끌려 나도 즐겁게 발걸음을 옮긴다. 갑자기 구두 소리가 빨라진다. 소리가 더 경쾌해졌다. 나도 덩달아 걸음이 빨라진다.
경쾌한 하이힐 소리의 주인공은 전공서적을 한 손에 쥔 여대생이다. 그녀는 뒤를 힐끗 본다. 내 모습을 확인하더니, 1초도 안 돼 시선을 정면 상방 15˚로 고정하고 빠른 걸음으로 신속하게 골목을 벗어난다.
여대 앞에 사는 나에겐 이런 일이 적잖이 일어난다. 난, 그저 집이 여대 앞이고, 집에 들어가는 것일 뿐인데, 그저 존재만으로 본의 아니게 민폐를 끼치게 된다. 여대 앞 원룸촌만 노리는 남성 범죄가 자주 발생한다는 것이 거시적 이유겠지만. 곰과 흡사한 내 덩치와 당장 산적 알바를 시작해도 충분할 정도로 시커먼 눈썹도 한 몫 한다. 혹자는 말한다. "넌 밤에 보면 눈썹밖에 안 보여."
이런 민폐를 끼치게 될지도 모르고, 난 여대 앞에 이사 올 때 정말 행복했다. 남중·남고에 '복역'했으며, 대학까지 남성 비율이 높은 '남대'를 다녔기에, 여대에 대한 어떤 환상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여대 앞은 일단 조용해서 좋았다. 남대 앞 고시원에서 6개월 정도 생활할 때를 생각하면 이곳은 '유토피아'나 다름없었다.
남대 앞은 술 마시고 추태부리는 학생들이 많다. "우웩~"하며 쏟아내는 소리는 주 5회 정도 들을 수 있었고, 혈기 왕성한 이들의 폭력 현장은 주 1회 정도 목격할 수 있었다. 쏟는 소리엔 나도 덩달아 쏠리게 된다.
싸울 땐 파이터의 친구들이 어찌나 말리던지,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 이 말이 딱 여기 적용된다. 그냥 한 번 호방하게 붙으면 끝날 걸, 말리는 녀석들 때문에 싸움이 더 길어지고, 소음은 쭉 이어진다.
"지금 이러면 안 되잖아, OO야! 정신 차려, 우리 친구잖아." 이렇게 말리면 파이터들은 괜히 승부욕만 높아진다. 신체 접촉을 못하니, 심한 욕설만 주고받는다. 그리고 10분~20분 지속된다. 정말 시끄럽다. 한 번은 새벽 3시에 그런 광경을 지켜보면서 참다 못 해, "야! 말리지 마! 그냥 빨리 싸우고 끝내라"고 외치기도 했다(다행히 고시원은 4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