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산촌유학센터 공예체험학습장 정기석
가르치는 게 없는 산촌유학 산촌유학을 하는 사람들은 산촌유학은 가르치는 게 없다, 가르치는 교육이 아니라고 한다. 그저 마을에서 마을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는 동안 스스로 배우고 깨닫는 과정이라는 말이다. 부모이자 교사 노릇을 하는 어른들은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맘껏 뛰놀고 시골살이의 단순하고 소박함을 통해 진정한 행복을 느끼고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줄 뿐이다.
경북 예천 용문의 산촌유학센터에서도 가르치는 게 따로 없다. 굳이 특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진행하지 않는다. 시골살이 자체를 온통 교육프로그램으로 보고 일상을 가족이 되어 함께 생활할 뿐이다.
이곳에서는 우선 계절별로 농사체험을 한다. 씨앗 뿌리기, 김매기, 물주기, 잎 따고 열매 따기 및 캐기, 거두기, 잿간 화장실을 이용하고 자연퇴비 만들기, 호미·삽· 괭이 사용하기 등이 있다. 사람으로서 먹고사는 기본적 활동들이다.
시골살이에 필요한 물건이나 놀이 기구 만들기도 소중한 교육이다. 나무 의자, 비닐 집, 방충망, 닭장 만들기, 담쌓기, 물총 만들기, 썰매 만들기, 연 만들기, 톱·망치 사용하기 등을 익힌다.
산과 들에서 자생하는 온갖 나물과 꽃, 열매 등으로 산야초 효소, 매실 효소 만들기도 배운다. 우리 음식 만들기, 제철 재료들을 이용해 요리하기도 생활하는 데 요긴한 산 교육이다.
동물 키우기, 개울에서 여름에 물고기 잡고 물놀이하기, 겨울에 썰매 타기, 산에서 눈썰매 타기, 곤충 관찰, 아침 산책하며 자연의 소리 듣기, 밤 산책하며 별자리 관찰하기, 모깃불 피워보기, 땔감 준비하고 아궁이 불 때기, 고구마, 감자 구워 먹기, 도끼 사용하기, 장날 장보기, 운동화 빨아 보기, 옷 개서 서랍장에 정리하기, 이부자리 개고 펴기, 자기 방 청소하기, 독서, 일기쓰기, 학과 공부하기 등, 산촌생활에서는 산촌이 교실이고 일상이 교육인 셈이다.
주말에는 주변의 금당실전통마을 등 유적지 및 볼거리 탐방, 지역 행사 참여 하기, 다양한 유기농업 농장 방문, 천연 염색 및 천연 비누 만들어 보기, 도서관·청소년 수련관 이용하기, 산행, 명상 등을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한다.
결국‘산촌유학의 생활’이란 '시골에서의 참살이'를 뜻한다는 게 교육의 철학이자 기조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아이들이 '생활(삶)'이란 프로그램을 통해 배우고 깨닫는 시간을 가지도록 애 쓴다. 무엇보다 자연요법, 자연밥상 등 시골살이의 식생활에 대해서 몸소 실천하는 프로그램들을 강조해 운영하고 있다.
산이 깊고 계곡이 많은 지리산자락 함양 봄바람네 산촌유학도 특별할 게 없다. 우선 공부를 봐주지 않아도 될 정도의 학습태도와 학교생활에 정서적으로 문제가 없는 초등학교 3학년 이상의 아이를 대상으로 주로 단기 교류형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기본적으로 인위적인 자연체험이 아니라 농가의 일상을 통해 아이들이 배우고 익히기를 바란다. 특히 자기 생각을 정리하거나 표현력을 높여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 글쓰기 지도에 많은 힘을 들인다.
음식만들기, 과자만들기, 노작, 탐사방문 활동 등이 낮시간의 주요 교육프로그램이다. 저녁시간에는 다양한 글쓰기를 하거나 일상과 관련한 자기경험 나누기를 한다. 주말에는 함양벼룩시장 참가, 안의면 5일장체험, 함양도서관 방문, 결혼이주민여성들과의 만남 등의 지역활동에도 참여한다. 삶이 교육이고, 놀이가 교육인 셈이다.
산촌유학은 대안 운동 산촌유학은 교육과정으로서는 물론, 마을, 지역, 미래로 나아가는 지속 가능한 발전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산촌유학 제도가 확산된다면 농촌의 붕괴와 공동화를 억제하고 도농상생의 길을 모색하는 유력한 방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본도 그랬듯이 최근 진안, 울주 등 지자체마다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이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다. 산촌유학 협의체를 만들어 일본처럼 지자체나 교육청의 재정 지원을 받는 문제, 학생 모집이 어려운 문제, 교사연수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문제, 자생적인 수지구조 구축 문제 등 해결해야할 숙제가 산적하다.
하지만‘기러기아빠’를 양산하고 국제중 설립 논란에 휩싸이는 등 무한경쟁으로 치닫는 오늘날 우리나라의 위험한 교육 현실에서, 보다 인간적인 삶과, 생태적인 미래를 주장하는 산촌유학은 지속가능발전의 명백한 대안 중 한 종목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산촌유학, 또는 교육이라는 숙명적인 주제에는 도시 아이와 시골 아이, 도시 부모와 시골 부모, 농가 부모와 활동가, 시골학교의 교사와 마을 사람들, 그리고 지자체 공무원 등의 인간관계가 얽혀있다.
우리 교육, 우리 사회, 우리 스스로를 치열하게 점검해보고 수정해보자. 그리하여 서로 상생하고 대동하는 오래된 미래로 가는 문의 열쇠 하나쯤, 산촌유학에서 발견하자.
덧붙이는 글 | 오래된미래마을 원주민이자 마을연구소 마을과사람(http://cafe.daum.net/Econet) 마을 일꾼 정기석이 쓴 이 글은 <월간인물과사상> 12월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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