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문을 따고 돈을 내려는데 지갑 속에 현금이 없었다.(또 당황했다!) 될 턱이 없는 카드 결제 타령을 하자, 아저씨는 명함을 슬며시 내 손에 쥐어주었다. 뒷면에는 입금할 수 있는 계좌번호가 적혀있었다.
이유하
아, 무관심이여.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애초부터 예비 열쇠 따위는 없었다. 나는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고 여러 공구들을 사용해 보았다. 밖에 굴러다니던 긴 막대들을 이어서 저 멀리 놓여있는 가방을 손에 넣기 위한 시도를 했다. 꼭 '내집 털이범'이 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결국 모든 수고는 '헛'으로 돌아갔다. 나는 꽤나 방범이 좋은 집에서 살고 있는 거였다. 슬프게도.
하는 수 없이 생에 처음 문고리에 붙어있는 스티커를 바라봤다. '열쇠 OOO-OOOO'가 적혀있는 스티커였다. 용기를 내서 '문 따기 아저씨'에게 전화를 했다. 내 방문을 딴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 아저씨가 다음에도 내 문을 따고 물건을 훔쳐 가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 그리고 세수도 안 한 내 얼굴에 대한 부끄러움, 이 모든 것 때문에 고민 좀 했다.
하지만 옥상으로 나온 내 몸은 이미 바들바들 떨고 있었고, 날씨 좋은 오후의 햇살이라 해도 이미 겨울에 들어선 날씨는 더 이상 나를 서있지 못하고 웅크리게 만들었다. 게다가 물 한 점 마시지 못한 상태라 배도 고팠다.
다시 주인집에 초인종을 눌러 전화를 빌렸다. 그리고 아저씨를 불렀다. 그 십 분 남짓 되는 시간 동안에 난 또 오만가지 생각에 잠겼다. 내 삶에 대한 저주, 부주의에서 오는 불행, '지금쯤 라면도 다 먹고, 빨래를 널고 있을 시간인데…'라는 자책감, 빨리 준비하고 아르바이트도 가야 하는 데에서 오는 강박감.
근사한 오토바이를 타고 등장한 나의 '백마탄 왕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