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판결문을 감동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정원섭 목사, 그는 이 판결문을 가지고 아들의 묘지를 찾아가 기도할 것이라 했다. 누명을 쓰고 갇힌 자들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김민수
큰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그간 모았던 재산을 다 탕진했지만 아들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그는 삶의 의욕을 잃어버렸다. 고향인 춘천으로 돌아가 생계를 위해 만홧가게를 열었다. <여로>라는 드라마가 한창 인기가 좋았던 시절이었고, 당시만 해도 텔레비전이 귀했기에 만홧가게는 일정한 돈을 내고 텔레비전을 보는 곳이기도 했다.
근처에도 만홧가게가 있었으나 제법 장사가 잘되었고, '동물의 왕국'에 나오는 노래가사를 아이들이 배우라고 써 붙여 놓은 까닭에 간판도 없었지만 그 곳에서는 '왕국 만홧가게'로 회자되었다.
그러나 어느 날, 동네 초등학교 5학년 여아가 난행을 당한 후 목이 졸려 살해되는 일이 발생했다. 텔레비전을 보러 나간다고 한 이후 사건이 발생했고, 아이의 호주머니에는 근처에 있는 만홧가게의 'TV 시청 전표'가 들어있었다. 그런데 그로 인해 경찰이 만홧가게 주인을 의심한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다른 만홧가게 주인이 아닌 자신을 범죄자로 몰아간 것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5일간 갖은 욕설과 폭행을 당하며 조사를 받았어요. 죽은 아이의 몸에서는 성인 남자의 음모가 발견되었습니다. 살인사건의 결정적인 증거가 되는 증거물이죠. 감정결과 A형의 남자로 판명되었습니다. 나는 B형이죠. 이미 경찰은 자신들이 마음먹은 대로 사건을 조작하고, 빨리 매듭지려고 했던 것이죠."그렇게 그는 무기징역을 받고 수감되었다. 신학교를 나온 사람이 '강간살인범'이라니, 사실 여부를 떠나 이미 언론에는 그렇게 보도되었다. 그는 한국신학대학의 명예와 기독교인들을 수치스럽게 했다는 것 때문에 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단다. 수차례 자살시도를 했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893번 면회!"라는 소리가 들렸고, 순간 사형장으로 끌려간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강제로 교무과장실에 가보니 김재준 목사와 이우정 선생이 면회를 와 있었다.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 전혀 모를 김재준 목사의 "자살하면 안 된다"는 일침, 이우정 선생이 "정군이 자살하면 고문하고 조작한 사람이 정의가 됩니다.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죄를 일깨워줘야 합니다"하는 말에 자살에 대한 생각을 접었다.
이후 교도소 안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마다 반갑고 새로웠단다. 문맹교육보조를 하다 검정고시반까지 맡게 되었고, 교도소에서는 수감된 이들뿐 아니라 교도관들까지도 "정 선생!"이라고 불릴 정도로 변화된 생활을 했다. 이후 무기수에서 20년으로 감형이 되고, 1987년 12월 24일 성탄특사로 가석방되었다.
"세상에서 칭찬받으면 하나님께 받을 상이 적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