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대로 쓸 대나무내년 봄, 고추 대롱을 하려고 벌써부터 준비를 하시네요. 대나무 서너 개 옮겨드린 거밖에 없는데, 할머니는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합니다.
손현희
"할머니 대나무는 뭐하시려고 그렇게 무거운 걸 끌고 오세요?"
"이거 쪼개서 꼬추때(고추농사 지을 때 쓰러지지 말라고 묶어두는 대롱) 할라꼬.""아니, 고추농사 다 끝났잖아요.""아이, 내년 봄에 또 써야흔게이.""내년에 쓸 걸 벌써 준비하세요?""그럼 미리미리 해놔야지 편하지."
잠깐 쉬시더니, 또다시 일어나서 대나무를 묶은 끈을 쥐려 합니다. 남편이 얼른 와서 할머니한테서 끈을 빼앗아 쥐고는 끌고 갑니다.
"집이 어디세요? 제가 갖다드릴게요.""아이구, 됐어. 내가 해도 되는구망."할머니는 미안하다는 듯 내주지 않으셨지만 억지로 빼앗아 갔어요. 그러고는 번쩍 치켜들더니, 이내 혀를 내둘렀어요. 생각보다 많이 무겁다면서 할머니가 어찌 이 무거운 걸 들고 오셨냐고 하더군요. 할머니는 연신 "아이구 고마버라. 아이구 고마버요"하면서 방안으로 들어갔다 나오시더니, 포도즙 세 봉지를 꺼내오셨어요.
아드님이 올가을에 농사지은 걸로 만든 거라면서, 말릴 틈도 없이 먹으라고 주시는데 할머니 맘 씀씀이가 얼마나 살가운지 몰라요. 대나무 더미를 집안으로 옮겨드린 거밖에 없는데, 그걸 이렇게 고마워하시니 우리가 오히려 부끄러웠답니다.
할머니 집에는 낮은 돌담이 울타리를 치고 있었는데, 돌아가신 할아버지(남편)가 쌓은 거랍니다. 벌써 쉰 해도 더 되었다는데, 그동안 몇 번이고 다시 고쳐 쌓고 하셨대요. 우리가 이것저것 사진을 찍는 걸 보시더니 우리를 이끌어 올해 쑤어 매달아 놓은 메주를 구경시켜주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