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수제비불린 팥을 삶을 때도 처음 끓는 물은 따라 버리고 다시 새물을 부어 삶는다
이종찬
"팥 이기 잡귀와 잡병까지 쫓아내는 영물이라카이"생일밥, 찐빵, 팥빙수, 팥죽 등에 주로 쓰이는 팥은 소두(小豆) 혹은 적소두(赤小豆)라고도 부른다. <네이버 백과사전>에 따르면 팥에는 녹말 등 탄수화물이 약 50% 들어 있으며, 그 밖에 단백질이 약 20% 들어 있다. 팥은 특히 다른 콩과는 달리 지방(2.2%)이 적고, 당질(58%)과 비타민B1(0.45mg)이 듬뿍 들어 있어 각기병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팥은 다이어트에도 그만이다. <동의보감>에 팥은 "평(平)해 차지도 따뜻하지도 않고 맛이 달면서 시고 독이 없는 작물이다. 사람을 마르게 하고 몸에 안 좋은 기능을 뺀다"라고 적혀 있다. 이와 함께 팥은 "농혈을 배출하고 소갈과 설사를 그치게 하며 소변을 잘 나오게 한다. 수종(몸이 붓는 병)과 창만(배가 나오는 병)을 다스린다"고 나와 있다.
"산모 젖 잘 나오게 하는 데는 팥 이기 최곤기라.""오데 그 뿐이가. 설사병 난 데 하고, 술병 난 데는 또 울매나(얼마나) 좋다꼬.""팥죽 좋아하는 산수골 새댁 반들반들한 피부 좀 봐라. 백옥이 따로 없다 아이가.""붉은 팥 이기 집에 들어오는 잡귀들만 쫓아내는 기 아이라 잡병들까지 다 쫓아내는 영물이라카이"
1960년대 끝자락. 나그네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마을 어머니들은 산모가 젖이 부족할 때면 팥을 삶아 소금이나 벌꿀을 넣어 먹이곤 했다. 어머니께서는 고된 농사일을 술로 달래던 아버지께서 술병이 날 때마다 팥죽을 끓이곤 하셨다. 어머니께서 팥죽을 끓이는 방법은 시간이 좀 오래 걸릴 뿐 그리 어렵지는 않게 보였다
먼저 팥과 멥쌀을 물에 불린 뒤 팥은 가마솥에 포옥 삶아 주걱으로 으깼다. 그리고 으깬 팥에 불린 쌀을 넣고 물을 부어 포옥 끓여 소금 간만 맞추면 그만이었다. 아버지께서는 그렇게 끓인 팥죽을 드신 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삽을 어깨에 메고 논으로 나가곤 하셨다. 말 그대로 팥은 나그네가 어릴 때 우리 마을 사람들을 지켜주는 수호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