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들의 제설작업전방의 군인들에게 겨울철 눈은 낭만의 대상이 아닌 하늘에서 내리는 쓰레기처럼 느껴집니다.
카푸리
꼭 이맘 때가 되면 강원도에는 눈이 참 많이 내립니다. 추운 겨울날 낮에는 훈련 받고, 밤에는 1시간 30분씩 불침번을 서기 때문에 취침시간은 하루에 고작 6시간 정도에 불과합니다. 안 그래도 잠이 부족한데 추운 겨울날 새벽에 눈이라도 오게 되면 새벽에 영락없이 기상합니다.
만약 새벽 2시나 3시에 눈이 내리면 그때 바로 일어나서 제설작업을 해야 합니다. 곤하게 잠을 자다가 불침번의 갑작스런 '기상'소리를 들으면 정말 괴롭습니다. 이불속에서 나오는 것이 마치 사형장에 끌려가는 죄수처럼 괴롭습니다.
이불속에서 나와 전투복을 주섬 주섬 입고, 군밤장수가 쓰는 모자같은 방한모와 장갑, 내복, 깔깔이 등 완전무장한 채 밖을 나가면 차가운 겨울바람이 뼛속까지 파고드는 듯 합니다. 넉가래(눈치우는 도구)와 빗자루 등을 들고 부대 앞 도로에 나가 제설작업을 먼저 합니다.
아침에 기상해서 눈을 치우면 되는데 왜 굳이 새벽에 하느냐고요? 눈이 쌓인 후에 차가 다니면 눈을 꼭꼭 밟아놓아 눈 치우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어서 차가 다니기 전, 눈이 내릴 때 바로 치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새벽에 자다가도 일어나 도로 위 눈을 먼저 빗자루로 쓸어냅니다. 혹한에 눈치우기는 여간 고역이 아닙니다.
그런데 강원도의 겨울철, 눈이 얼마나 많이 내립니까? 쓸어도 쓸어도 눈은 계속 내립니다. 어느 날은 새벽 2시에 기상해서 아침 6시까지 제설작업을 해도 눈은 그치지 않고 계속 내렸습니다. 제가 일병이었는데, 얼마나 힘든지 제 밑으로 5개월 후임이었던 이등병 한 명이 눈을 치우다가 갑자기 이런 말을 합니다.
"어휴! 하늘에서 웬 쓰레기가 이렇게 많이 쏟아지나요? 이제 그만 좀 내리지…."그 말을 듣고 속으로 웃음이 나왔지만 참았습니다. 얼마나 눈 치우는 게 힘들면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쓰레기라고 할까요? 입대 전 대학 다닐 때는 이렇게 눈이 내리면 애인이나 여자 친구와 낭만을 즐기며 데이트할 때인데, 군인이 되고 보니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쓰레기로 보였나 봅니다. 아마도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고 힘들다 보니 낭만이고 뭐고 다 귀찮아서 쓰레기라고 표현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