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재밌게, 쌈박하게, '영악한' 글쓰기
'격조있는 조롱', 그게 바로 강인규스타일

[2008 올해의 뉴스게릴라상①] 미국 해외통신원 강인규

등록 2008.12.29 14:36수정 2008.12.3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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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2008 올해의 뉴스게릴라상' 수상자로 강기희 강인규 김갑수 이윤기 기자를 선정했습니다. '올해의 뉴스게릴라상'은 한 해 동안 최고의 활동을 펼친 시민기자에게 주어지는 상이며, 이번 수상자부터 부문 없이 선정했습니다.

시상식은 2009년 2월 6일 <오마이뉴스> 상암동 사무실에서 치러집니다. <올해의 뉴스게릴라상> 수상자에게는 상패와 상금 100만원씩을 드립니다. 이 자리에서는 <2009 2월22일상>과 <2008 특별상>, 시민기자 명예의 전당, 제3회 대학생 기자상 시상식도 함께 열립니다. 수상하신 모든 분들께 축하인사를 드립니다. [편집자말]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이 시기에 '역사의 심판'이 무관심과 비겁함의 변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언제나 그렇듯, 역사란 행동의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사는 달력을 넘겨 투표일에 동그라미를 치거나, 지난 달력 뒷장에 '신문사절'이라고 쓰는 아주 작은 일부터 시작된다."

지난 2004년 3월 17일자 <오마이뉴스>의 기사 하나는 위와 같이 마무리됐다. "상업언론이 이제 공영방송까지 흔드나?"라는 제목의 이 기사는 그해 창간 84주년을 맞은 <조선일보>의 '포위된 독립 언론과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사설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었다.

반박 기사를 읽노라니 입가에 미소가 번지기까지 했다. 그해 4월 15일 치러진 총선을 겨냥한 기사가 분명해 보였던 까닭이다.

기사를 쓴 인물이 문득 궁금해진 것은 마지막 문단에 이르렀을 때였다. 기사 전문을 관통하는, <조선일보>를 향한 '격조' 있는 '조롱'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적한 기사의 끝부분은 '일개' 기자의 붓끝에서 나올 문장이 아니었던 거다. 기자의 이름을 확인해 본다. 강인규다. 그러니까 나는 지난 2004년 3월 17일부터 강인규의 이름을 기억하기로 했다.

2004년 3월 17일, '중립을 가장한 편파' 그를 알다

 미국 해외통신원 강인규 기자. 위스콘신대학교에서 박사과정(언론학)을 마치고 강사로 강단에 서고 있다. 저서로는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 미국, 미국문화 읽기> (2008, 인물과 사상) 등이 있다.
미국 해외통신원 강인규 기자. 위스콘신대학교에서 박사과정(언론학)을 마치고 강사로 강단에 서고 있다. 저서로는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 미국, 미국문화 읽기> (2008, 인물과 사상) 등이 있다. 강인규
이렇게 쓰고 보니 어폐가 있는 것 같다. '그해 총선을 겨냥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 기사'라니. 이른바 언론 본연의 자세라는 '중립'이 아닌 '편파' 찬양으로 오인될 법도 하다. 편파적인 기사가 과연 공정할 수 있을까. 강인규는 '중립을 가장한 편파'라는 대답을 준다.

"어떤 언론도 결코 중립적일 수 없다. 언론이 하는 일은 사건을 이야기로 재구성하는 것인데, 이야기란 언제나 기술자의 입장을 반영하게 마련이다. 내 기사는 중립적이지 않다. 아주 편파적이다. 나는 적극적으로 사회 소수자의 편을 들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다."


반면 '보수언론은 권력자의 입장을 두둔한다'고 강인규는 덧붙였다. 그렇다면 강인규나 보수언론이나 '도진개진'이니 상호비판을 삼가야 할까. 아니란다. '편파'의 싸움에는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을 조작하거나 논리를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 '중립을 가장한 편파'라는 '위험한' 표현을 빌려 강인규가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이다.

그러나 보수언론이 특정 권력 집단을 두둔하는 데에 강인규는 반대하지 않는다. 객관적 사실과 논리에 근거해 경합하는 것이 아니라 조작과 왜곡 그리고 '물량공세'라는 술수를 쓰는 것을 문제 삼을 뿐이라며. 강인규는 그래서 편파적인 글쓰기를 계속할 생각이다. 단, 정당하게 규칙을 지키면서. 그로 하여금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게 만든 장본이 바로 보수언론이라 한편 고마운 마음도 있다.


인용한 기사를 포함해 지금까지도 강인규가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는 주요한 동기는 언론비평이나, 여기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다양한 분야로 글쓰기의 지평을 넓혀온 것. 정치, 사회는 물론이요 예컨대 발레, 고전음악, 재즈, 회화 등속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기사를 통해 과시했다. 심지어 <발레리나의 눈물을 보다(2005.6.17)>라는 기사에서는 웬만한 작가에 비견될 만한 그림 실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타 언론의 글쓰기를 비판하는데 그치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좋은 글쓰기의 예를 보여줄 수 없다면 공허한 비판이 될 수도 있으니까."

얼마 전에는 한 보수신문으로부터 칼럼 제의까지 받은 걸로 보면 이런 노력이 헛돼 보이지는 않는다. 강인규가 끊임없이 비판해온 '그' 신문들 중 하나가 말이다. '그들'을 향한 날선 비판에도 꿈쩍없던 매체가 그의 문화기사에 반응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 신문에 칼럼을 쓸 여유가 있다면 차라리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하나 더 쓰겠다는 생각으로 정중하게 거절하기는 했지만.

보수언론 비판하던 그에게 날아온 보수언론의 '러브콜'

가끔 '<오마이뉴스>만이 희망'이라는, 농담 같은 구호를 외칠 정도로 <오마이뉴스>를 향한 강인규의 애착은 각별하다. 그에 따르면 언론의 역할은 사회와 개인을 매개하는 데 있다. 언론사는 이 중재자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한다는 전제 아래 여러 권한과 특혜를 일시적으로 허락받은 집단이라는 것. 강인규는 그러나 한국 언론이 이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우리 언론 특유의 한계도 있지만 이윤추구의 수단이 된 자본주의 언론의 근본적인 한계라고.

"이런 가운데 탄생한 시민저널리즘은 시민이 언론의 중재만 기다리는 수동적인 역할로부터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언론 특히 신문의 위기가 화두로 떠오른 지 오래다. 시민저널리즘은 시민이 망하지 않는 한 망할 수 없는 유일한 언론이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오마이뉴스>라는 매체는 시민저널리즘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시민의 참여 자체만이 시민저널리즘이다. <오마이뉴스>는 '또 다른 언론사'가 아니라 시민참여를 권하고 돕는 장이 되어야 한다."

앞서 나는 다양한 분야를 거침없이 넘나드는 강인규의 기사는 해박한 지식을 자랑한다고 했다. '깊이 있다', '통찰력이 뛰어나다', '유익하다', '쉽다'는 내용의 독자의견이 뒤따르는 것으로 미뤄보건대 <오마이뉴스> 독자들도 내 생각에 동의하는 것 같다. 

쉬운 기사. 읽기 쉬운 기사만큼 쓰기 어려운 기사도 없을 것이다. 낯설고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 독자에게 쉽게 다가가는 기사는 더더욱. 그런데도 독자들은 강인규의 기사가 '쉽다'고 말한다. 기사 한 편을 읽고 '쉽다'거나 '이해가 잘 된다'는 독자의견을 쓰는 것이 자칫 엉뚱해 보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이해하기 쉬운 기사를, 특히 난해한 주제를 다루면서 독자를 쉽게 설득하는 기사를 만나는 일이 흔치 않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강인규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기사를 쉽게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원칙이다. 아무리 어려운 주제도 쉬운 말로 표현이 가능하며 잘 아는 사람일수록 쉽고 명료하게 글을 쓴다고 믿기 때문이다. 난해하고 현학적인 글쓰기는 필자의 이해부족과 혼란스러운 사고를 전시할 뿐이라는 것. 

그래서일까. 강인규의 기사 한 편을 읽는 과정에서 스멀스멀 피어나는 의문들은 마지막 문장이 끝남과 동시에 말끔히 해소된다. 논리 전개 과정에서 독자들이 제기할 의문을 강인규는 스스로 제기한다. 자신이 주장하는 논리의 반대급부까지 미리 계산하고 있는 것이다. 영악하다고 할까.

이것은 그러나 빈약할지도 모르는 논리를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식의 얄팍한 '상술'과는 거리가 있다. 철저히 독자의 처지에서 쓰는 글이다. '내가 이해 못하는 것은 독자도 이해 못 한다'. 혹은 반대의 경우도 가능한. 해박한 기사는 그러나 이미 습득된 해박한 지식에서 불쑥 태어나지 않았다.

 강인규 기자가 2006년 세계시민기자포럼에서 '한국사회와 문화적 특수성에 기인한 오마이뉴스 성공 사례'에 관해 주제발표하고 있다.
강인규 기자가 2006년 세계시민기자포럼에서 '한국사회와 문화적 특수성에 기인한 오마이뉴스 성공 사례'에 관해 주제발표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남소연

쉽게, 재미있게, 쌈박하게, 영악한 글쓰기

프랑스의 시인 루이 아라공은 '생각이 글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극작가 외젠 이오네스코는 '자신을 위해 글을 씀으로써 타자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도 했다. 강인규의 글쓰기는 자신의 관심과 호기심을 충족시키거나 타인과 소통하는, 일종의 도구라는 점에서 아라공, 이오네스코와 만나고 있다.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고 궁금했던 내용을 확인할 수 있으며 쓰는 과정과 쓴 글을 통해 독자와 대화를 시도한다."

이런 것이다. 강인규는 '아는 내용' 보다는 '알고 싶은 내용'을 기사로 다룬다. 일상에서 호기심이 생기는 주제는 모두 기사거리다. 모르는 내용을 공부해가면서 글을 쓰는 만큼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다. 기사 한 편 생산하는 데 빠르면 1~2주, 늦으면 1~2달에서 드물게는 1년 이상이 걸리기도 했다.

흥미를 유발하는 소재를 발견하면 책이나 논문을 찾아 읽거나 타인의 생각에 귀를 기울이는 강인규의 기사는 그래서 '오랜' 탐구의 산물이다. 마치 한 편의 논문을 연상시키는 그의 기사가 독자로부터 가히 '전폭적'이라 할 지지를 얻게 된 배경이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매력적인 이유는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주제로 원하는 분량의 글을 쓸 수 있다는 거다. 물론 관심분야에서 벗어난 기사를 청탁받는 경우도 있다. 이때는 좀 더 많은 수고가 따르지만 그만큼 더 많은 공부를 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사실 확인에 강박에 가까운 집착을 갖고 있는, 그래서 자신을 '소심남'이라 부르는 강인규의 기사가 섣불리 반박할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그의 서명이 들어간 기사는 기계적으로 찾아보면서도 나는 독자의견을 남길 엄두를 내보지 못했다. 웬만한 이견이 비집고 들어갈 틈조차 남기지 않는 철두철미함에 지레 기가 죽었던 게 이유다.

강인규의 기사는 일단 재밌다. <오마이뉴스>의 다른 기사들보다 대략 두 배는 길어 보이는 그의 기사를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마지막 문장까지 끝내지 않고는 못 배긴다. 원칙은 명확하다. '새로운 시각이나 정보' 그리고 '글 읽는 즐거움'이라는 두 가지 조건 가운데 적어도 하나는 갖출 것. '글 읽는 즐거움'을 주는 기사는 곧 정보 제공의 단계를 넘어 '감상'의 경지를 선사한다는 점에서 그의 기사는 장담컨대 두 가지를 두루 충족시키고 있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일정한 형식을 갖춘 강인규의 기사는 대체로 감각적이면서 흡인력 있는 도입부로 문을 연다. 주제의 이해를 돕기 위한, 다양한 사례나 일화들이 맛깔스럽게 가미되는 까닭에 사족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애당초 의도한 주제로 돌아오는 기교와 더불어 탄탄한 구성은 한 편의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쌈박한 마무리는 기본.

강인규가 구사하는 독특한 문체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수식어 하나 허투루 쓰지 않는 주도면밀함, 차분하지만 날카로운 문장 등 관록의 작가에게서나 찾을 법한 자신만의 문체를 그는 갖고 있다. '문장은 곧 사람'이라 했다. 음색으로 가수를, 화풍으로 화가를 구별하는 것처럼 기자이름을 확인하지 않고도 이른바 '강인규 스타일'을 간파할 수 있는 것은 기사에 선명하게 새겨진 자신만의 지문(指紋) 탓일 게다. <오마이뉴스>에서 마니아 독자층을 보유한, 몇 안 되는 시민기자의 공력이 아닐까.

 강인규 시민기자.
강인규 시민기자. 강인규

고백컨대 당신은 내 라이벌이었다, 축하한다

지난 18일 <MBC 100분 토론> '2008 대한민국을 말하다'에 토론자로 나선 가수 신해철은 '올해의 좋은 뉴스'를 선정해 달라는 요청에 '넥스트(N.EX.T) 신보 발매'라 일갈한 바 있다. 2008년 한 해는 '엿 같았다'는 말을 에두른, 지독한 독설이다.

나는 신해철을 이렇게 패러디한다. '올해 가장 반가운 뉴스'는 비록 늦은 감은 있으나 '올해의 뉴스게릴라상'이 강인규에게 돌아갔다는 것이며 '두 번째 반가운 뉴스'는 이 소식을 내가 전하게 됐다는 거다. 이제야 고백하지만 강인규는 내게 라이벌이었다. 불행이라면 강인규는 이 사실을 모른다는 것. 어쩌란 말인가. 잠시 질투했지만 일찌감치 승복했는데.

[2008 올해의 뉴스게릴라]
☞ [올해의 뉴스게릴라상①] 미국 해외통신원 강인규
☞ [올해의 뉴스게릴라상②] 정치평론 쓰는 소설가, 김갑수
☞ [올해의 뉴스게릴라상③] 서평 쓰기의 달인 이윤기 기자
☞ [올해의 뉴스게릴라상④] 강원도 정선의 '강기자' 강기희
☞ [2월22일상①] 고기복 김행수 송경원 임정훈 장태욱 전대원
☞ [2월22일상②] 강지이 김준희 문동섭 문종성 성하훈 이돈삼
☞ [2008 특별상] 머리기사만 316개, '불곰' 윤근혁 기자
☞ [2008 특별상] 민간 싱크탱크,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강인규 #올해의 뉴스게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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