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이 범인일지 모른다

오쿠다 히데오 장편소설 <방해자>

등록 2009.01.03 11:53수정 2009.01.03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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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방해자> 1권 겉표지

<방해자> 1권 겉표지 ⓒ 북스토리

<방해자> 1권 겉표지 ⓒ 북스토리

삶이 틀어지는 건 한순간이다. 드라마에서처럼 어느 운명적인 일 때문에 틀어지는 것이 아니라 별 것 아닌 것 같은 일로 그리 되기도 한다. 오쿠다 히데오의 <방해자>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도 그렇다. 평범한 주부와 불량 고등학생 그리고 강력계 형사의 삶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인 일로 틀어지고 만다.

 

평범한 주부 쿄쿄의 남편 시게노리가 근무하는 회사에서 화재가 발생한다. 마침 당직이었던 남편은 그것을 발견하고 불을 끄려다가 부상을 당한다. 회사에서도 사회에서도 그 용기를 칭찬해야 마땅했건만 이상하다. 쿄쿄는 사람들이 점점 자신의 남편을 의심하고 있다는 걸 눈치 챈다. 자작극이란 말일까? 내 남편이 범인일지 모른다, 는 생각을 하게 된 순간 쿄쿄는 두렵다. 자신의 존재를 일깨워주는 두 명의 아이와 소중한 집이 부셔지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동료형사의 부정을 밝히기 위해 비밀리에 감시를 하던 구노 형사는 불량 학생들의 ‘아리랑치기’를 당할 상황에 처한다. 구노로서는 어이가 없던 일이었다. 구노는 단번에 아이들을 혼내준다. 구노는 화재 사건이 발생하자 그곳에 투입되는데 아무리 봐도 시게노리가 의심스럽다. 물증은 없지만 심증은 있다. 시게노리가 부정적인 일에 연루됐었다는 것 때문이다. 문제는 그 부정이라는 것이 그리 큰 금액이 아니라는 것이다. 설마 그것 때문에 방화를 일으켰을까? 시게노리를 보는 구노의 마음은 복잡하기만 하다.

 

한눈에 봐도 불량학생인 요스케는 친구들과 밤거리를 다니다가 아저씨들을 협박해 돈을 뜯어낸다. 그건 의외로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잠복 중이던 형사를 건드렸다가 큰 코 다쳤지만 다행히 체포되는 일은 없었다. 여기서 요스케는 그 일을 없던 것처럼 해야 했는데 건방지게도 무용담처럼 퍼뜨리고 다닌다. 일종의 치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야쿠자가 찾는다. 야쿠자는 어느 형사와 함께 요스케를 협박한다. 구노 형사를 고소하라는 것이었다.

 

쿄쿄는 남편이 불안하면서도 슈퍼마켓에서 아르바이트 일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사람들이 그녀에게 접근한다. 아르바이트하는 사람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그들은 회사가 부조리하게 아르바이트 사원들을 대우하고 있다며 투쟁하자고 한다. 평소의 쿄쿄라면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뻔뻔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나서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나선다. 화를 다른 곳에 표출하는 것인가? 아니면 정의라는 것을 찾기 위한 것인가? 모른다. 쿄쿄는 그저 할 뿐이다.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그녀는 쓰러질 것 같다.

 

구노 형사는 불량 학생이 자신을 고소했다는 사실 때문에 해고당할 처지에 처한다. 그는 분노한다. 하지만 뭘 어찌할 방법이 없다. 그는 시게노리를 미행하면서 쿄쿄를 의식한다. 하늘나라에 있는 아내와 비슷한 또래이기 때문일까? 구노는 시게노리가 밉다. 차라리 빨리 자수해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하늘은 몰라준다. 쿄쿄가 그녀 앞에서 방화를 저지르려 한 것이다. 남편의 죄를 뒤집어쓰려는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수사에 혼선을 주려는 것일까?

 

요스케는 경찰과 야쿠자 사이에 끼어서 뭘 어찌할 수가 없다. 불량 학생이더라도 학교는 졸업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포기한 상태다. 야쿠자 사무실에서 어쩌지 못할 뿐이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무엇 때문에 그런 것일까? 요스케가 가장 많이 생각한 질문은 아마 이것이었을 것이다. 쿄쿄와 구노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묻는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어째서 이렇게 된 것인가?

 

오쿠다 히데오는 <공중그네>, <남쪽으로 튀어!> 등으로 국내에서 가장 잘 나가는 일본 작가 중 한명이다. 그의 인기 비결은 유머러스함에 있다. 그러나 쿄쿄, 고노, 요스케를 주인공으로 한 <방해자>에서는 그런 유머스러함을 찾아보기 어렵다. 틀어진 인생을 어쩌지 못하고 점점 수렁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낯선 모습이다. 그럼에도 <공중그네>, <남쪽으로 튀어!>등과 마찬가지로 흡인력이 있다. 그들의 인생을 엮는 정교한 구성 때문일까? 아니면 그들의 기구한 인생에 알게 모르게 공감하게 되기 때문일까? 출판사는 이 소설의 화려한 수상경력을 앞세워 일본에서 문학성과 대중성을 두루 인정받았다고 말한다. 사실일까? 소설의 내용을 보건데 과장된 광고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소설은 어느 인생들의 진지한 이야기를 건네며 어느 길을 찾고 있다.

 

오늘이 시작되는 것도 싫고 내일이 오는 것도 싫지만 지금으로써는 싸우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방해자>, 오쿠다 히데오의 새로운 매력을 느낄 수 있다.

2009.01.03 11:53ⓒ 2009 OhmyNews

방해자 - 하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북스토리, 2016


방해자 - 상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북스토리, 2016


#오쿠다 히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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