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9.01.21 18:31수정 2009.01.22 08:51
<다크 나이트>의 조커 이후 웬만한 악역은 눈에 안 띈다
관객들이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를 볼 때 가장 살이 떨린다는 장면은 지킬이 '지금 이 순간(This is the Moment)'을 부르며 내면의 하이드를 영접하는 순간이다. 나는 홍광호 주연의 지킬앤하이드를 봤는데 무르게(?) 생긴 얼굴에서 터져 나오는 폭발적인 성량에 온몸이 화끈거렸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관객들도 '뜨악'하는 반응을 보였는데 홍광호가 노래를 워낙 잘했기도 하지만, 착한 사람이 화내면 더 무섭다는 말처럼 그의 선한 얼굴과 엇갈리는 잔혹 연기와의 극상승 효과도 한몫 했을 것이다.
악인 역할을 잘하기란 어렵다. 특히 캐릭터가 선악의 양면을 동시에 갖고 있어서 선과 악 사이를 널뛰기하는 경우가 그렇다. 전체적으로 홍광호의 연기는 준수했지만 악당치고는 좀 신사(?)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기야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본 조커의 연기에 하도 치를 떨었던 기억 때문인지 엔간한 악역은 시야에 잡히지 않게 되더라.
지킬앤하이드는 선악 캐릭터를 종횡무진하기에 조커 같은 한결같은 악인과 비교하는 것이 온당치 않음은 잘 알고 있다. 더구나 나쁜 캐릭터여도 관객들이 조커에게는 서늘함을, 지킬에게는 연민과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은 왜일까. 나는 그 차이가 사회성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었다.
둘 다 살인을 저지르지만 정체도 불명하고 자발적 무직자인 조커는 절대로 사회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즉 사람들이 뭔가 공감하거나 이해해줄만한 자락이 거의 없고 오히려 내 주변에 저런 인간이 있을까봐 몸서리치게 된다. 반면 지킬은 번듯한 직업에 신분도 좋고 유망한 청년인데 한순간 실수로 나락에 떨어졌기에 언젠가는 다시 사회로 귀환할 거라고 믿을 것이다(믿고 싶을 것이다). 또한 의사라는, 남들이 선망하는 지위에 있으면서 약자를 위해 자신의 평안함을 내던지는 이타심은 만고불변의 감동 스토리 아닌가. 하지만 사회성을 극단으로 가르는 근원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같은 사회에 살지만 그 사회 안에서 변혁을 꿈꾸는 지킬과 사회 자체를 조롱하며 파괴하는 하이드의 차이는 그토록 극명한 것일까? 단순히 그것을 선악의 상반된 모습이라고 하기엔 뭔가 허전하다. '선악'. 이것은 지킬앤하이드의 주제인데, 인간의 본성이 선하냐 악하냐 하는 이슈는 인류사의 오랜 토론거리였다. 동양의 성선설과 성악설은 아직도 샅바씨름 중이며 서양은 기독교가 생기면서 구원과 회개라는 종교 논리로 선악 문제를 다루었다. 답은 뭘까.
흔히 인간 본성에는 선악이 함께 존재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인간에게 본성이 있다는 가정을 기정사실화한 것에서 출발한다. 인간 본성이 무엇이냐고 따지기 전에 인간에게 본성이라는 게 있느냐고 먼저 자문해야 되지 않을까? 설령 인간에게 본성이 있다고 한들 우리는 인간본성에 선악이 있다는 개념을 너무 쉽게 승낙한 건 아닐까.
지킬의 변신이 과연 개인 의지만이었을까
나는 하이드에게 심히 유감(有感)스럽다. 그것은 지킬이 거악으로 물들어가는 이유가 개인의 의지나 선택에 따른 결과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2006년 지킬앤하이드를 봤을 때 나는 '악'의 근원이 사회구조 문제와 샴쌍둥이처럼 붙어있다는 메시지를 전달받았다. 그리고 '악은 평범하다' 고 했던 한나 아렌트처럼 일상에서 피식 웃고 넘어가는 사소함에서 악이 잉태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지킬앤하이드에 나오는 오만한 귀족들과 사회 지도층 인사들은 연일 파티와 진수성찬 퍼레이드를 벌이면서 주색잡기 무한경쟁을 벌인다. 가난한 사람들은 한 끼 식사를 위해 도둑질을 하는 현실을 보고 서민들을 불결하고 더럽다고 욕한다. 그러나 뒤에서는 돈으로 육체를 사는 그들의 이중성은 순간 쾌락 정도로 치부된다. 바로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이 너무나 평범하기에 우리는 그 뒤에 숨어있는 사회의 모순과 문제를 패스해버린다. 그래서 악은 평범하다는 문구가 다시 각인된다.
뮤지컬 원작인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쓴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태어나 19세기 후반까지 산 사람이다. 그가 살았던 시간은 영국이 대영제국이라 으스대며 세계패권을 잡았던 시대. 영국은 해가 질 틈이 없는 전 세계에 걸친 거대한 영토와 자원, 언제든 착취할 수 있는 식민지의 저렴한 노동력과 막강한 군사력이 있었으니 뭔들 두려웠을까. 그러나 독점자본주의가 팽창하면서 계층 문제는 종양 수준으로 곪아가고 있었다. 10대 초반 아이들이 하루 15시간 이상 중노동을 해야 간신히 먹고 살 수 있는 구조적 모순이 심화되면서 범죄율도 상승했고 돈이 없어 치료도 받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많아졌다.
스티븐슨이 목격한 영국의 현실은 암울함 그 자체였다. 순둥이 같은 사람도 하이드로 돌변시킬 만큼 영국의 사회악은 거대했기 때문이다. 스티븐슨은 지킬을 하이드로 변신시킨 원동력(?)이 바로 영국 사회의 모순, 즉 인류 공통의 문제임을 갈파했을 것이다. 그래서 지킬 내면에 있는 악은 사회문제와 떨어질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지킬앤하이드에서 악과 사회의 연결성이 2006년에 비해 느슨해진 느낌이다. 공연은 영화와 달리 새로 무대에 오를 때마다 변한다. 배우와 각색이 바뀔 수도 있고 스토리에 변화를 줄 수도 있다. 이것은 한번 만들면 '땡'인 영화와 달리 트렌드를 즉각 반영할 수 있는 공연의 장점이자 매력이다. 그렇다면 2년 사이에 우리 사회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계층 간 갈등이 불거지며 만들어진 지킬앤하이드, 한국에선...
나는 찬찬히 그간 한국사회의 변화를 되감아보았다. 신자유주의 바람이 이념이 아닌 정책으로 현실에서 각개전투로 다가왔다. 사회보장제도가 약화되고 개인채무가 급증하며 중산층이 엷어졌다. 실업율은 높고 성공신화가 찬양되며 너도나도 부자가 되려고 기를 쓴다. 삶의 불안 심리도 당연 커졌지만 국가의 처방전은 '성공하세요, 부자 되세요, 아껴 쓰세요' 정도랄까. 그래, 사회는 점점 개인 책임의 비중이 확대되는 방향으로 체질개선을 했구나.
어렴풋이 이해가 간다. 2006년 하이드가 살인을 할 때마다 그것이 사회모순에 대한 절규로 느꼈는데 2008년에는 개인의 복수심이라는 감정이 적잖은 중량감으로 다가왔다. 인간이 사회 영향으로 선해지거나 악해지는 것도 개인 선택이자 책임이라는 의미인가. 똑같은 현실을 목격했어도 다른 의사들은 무도회에 가지만 지킬이 연구실로 향한 것도 결국 개인 선택의 문제로 보라는 것일까. 행위에 책임을 지는 것은 결국 개인이고 사회의 책임은 무성한 입담과 소문으로 사그라지는 게 현실이라고 조롱한 건지도 모르겠다.
뮤지컬을 꽤나 심각하게 봤지만 작품성은 여전히 찬란하고 주연 배우들의 연기도 빼어나다. 에이스 오브 에이스인 류정한은 여전히 광채난다고 난리법석, 새로 진입한 홍광호는 황태자로 신분상승한 느낌이며, 김우형은 기존 껍질을 깨고 다시 태어났다는 말을 듣고 있다. 그래서 세 배우의 작품을 다 보고 싶은, 여전히 '강추'를 받을 만하고 공연이 끝나고 절로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치고 싶은 작품이다.
흠집을 좀 잡자면 스토리가 전체적으로 촘촘하지 않아 다소 지루했고, 특히 1막에서 루시의 카바레씬 비중은 과잉이었다. 연출자가 왜 저렇게 구성했을까 하는 속삭임이 들렸는데, 브레히트가 '나이를 먹을수록 간결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한 말이 떠올랐다.
사람은 연륜이 쌓이면 경험도 많아지고 세상사 다채로운 일에 노출된다. 웬만한 일은 다 겪어보고 들어봤기에 구구절절 그것을 설명하거나 이해할 필요가 없다. 공연도 마찬가지일까. 사람으로 치면 지킬앤하이드도 공연물로는 많이 성장한 편이다. 이제 관객들도 알만큼 아니까 스토리에서 곁가지라고 판단한 부분을 잘라내고 새롭거나 필요하다고 여긴 것을 접붙이기했다. 그게 오버가 아니었을까. 아직 우리에게는 이야기 점프보다는 세밀한 전개가 더 요원할지 모른다. 사람들이 그것을 다 안다고 해도 다시 한 번 짚어보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선악이라는 주제는 간명하다. 속 깊게 들어가면 머리 아프겠지만 원론 수준에서 지킬앤하이드처럼 멋진 작품으로 버무릴 수 있다. 그 압권은 2막에서 지킬과 하이드의 초 간격 변신 씬이다. 나는 홍광호의 변신연기를 몰입하며 보다 과연 현실에서 선과 악이 저렇게 분명히 나눠질까 의혹이 스쳐갔다. 현실에서 선악을 자로 정교하게 잴 수 있는 상황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그걸 잊게 만든 홍광호의 연기와 지킬앤하이드가 두려웠다. 또한 서로 다른 자아의 충돌 연기가 끝났을 때 박수경쟁에 동참한 나를 보며 떨리기도 했다.
선과 악처럼 내게 두려움과 열광이라는 상이한 감정을 공존하게 만든 것은 지킬앤하이드의 흡입력 때문일까. 아니면 나도 역시 선과 악 같은 이중자아가 내재해있는 탓인가. 그게 구별이 되지 않는다.
재미없는 세상을 재미있게*~
덧붙이는 글 |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LG아트센터. 11.14-2.22
2009.01.21 18:31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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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불황 지속... 내 안의 '하이드'가 꿈틀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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