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에 걸러지는 기름.
한미숙
방앗간 아주머니는 들락날락 하며 일을 보는데 할머니들이 마치 주인처럼 내 들깨를 보고 이것저것 묻는다.
두 할머니도 참깨를 갖고 와서 기름을 짜는 중이었다. 한 분은 벌써 기름을 다 내려 병에 담아 놓고 친구할머니 기름을 짜는 동안 얘기를 하고 있었다. 할머니들은 구즉동 새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 묵마을로 유명했던 곳에 터를 잡고 살았던 주민이었다. 묵마을에 살던 사람들은 보상을 받고 마을을 떠나거나 새로 짓는 아파트 분양을 받았을 것이다.
묵마을 얘기는 계속됐다. 그러면서 한 할머니가 ‘늙으면 돈 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할머니가 잘 알고 지내던 이웃 노친네라는 분이 보상으로 나온 돈을 모두 큰 자식에게 줬단다. 그 후에 사이좋던 5남매가 뿔뿔이 흩어지고, 큰자식에게 의지하고 홀가분하게 살 줄 알았던 노친네는 큰자식에게 대접받기는커녕, 다른 자식들도 자기 어머니를 소홀히 여긴다는 것이다. 그 얘기를 하는 할머니가 나를 바라보며 확신하듯 말씀하셨다.
“그러게 돈은 자식한테 다 주는 게 아녀. 다 맡기고 나니까 맘이 싹 달라졌지 뭐. 노인네가 그거 도로 달라고 할겨? 주지도 않어. 안 줄 핑계가 을매나 많것어. 젊은 사람들 머리 돌아가는 거 노친네가 어뜨케 따라가? 노친네만 불쌍혀. 그래서 나는 죽을 때, 그때 내놓을 거여. 내 꺼, 내가 갖구 있어야 혀. 그래야 애들도 무시하지 않어.”
올여름에 입주할 묵마을 터에 올라선 고층아파트는 현재 내부공사중이다. 두 할머니는 같은 동네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는데, 거의 보상금으로 얽힌 얘기들이었다. 할머니는 다행히(?) 보상금 때문에 그리 속상해 할 일은 없어 보였다.
나중에 기름을 짠 할머니가 핸드폰을 눌렀다. 기름을 다 짰으니 차를 갖고 오란다. 잠시 후, 죽을 때까지 ‘돈’은 갖고 있어야 된다고 했던 할머니의 며느리가 왔다. 두 할머니가 나가자 방앗간이 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