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아, 힘내세요!"

[새해 덕담]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요

등록 2009.01.24 19:43수정 2009.01.24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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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담(德談)은 새해를 맞아 어른이나 친구, 아랫사람에게 해주는 인사말이다. 주로 한 해 동안의 일들이 잘 되기를 기원하는 것인데 상대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진다. 축하(생자(生子), 득관(得官), 치부(致富), 건강축원(祝願), 소원성취(成就) 등)를 미리 함으로써 새해는 그렇게 될 것이라 부추기는 인사다.

 

예전 같으면 이웃끼리는 눈인사를 하고 먼 곳은 전갈하거나 서신으로 연락했다. 그런 점에서 연하장이나 신년 인사카드도 일종의 덕담인 셈이다. 하지만 요즘은 덕담하는 방법도 많이 변했다. 손쉬운 전자메일이나 휴대폰 문자메일이 대신하고 있다. 편지라는 형식보다는 그러한 것으로 소통하는 게 편하기 때문이다. 편리함만을 쫓는 인간의 욕망은 급기야 차갑게 활자화된 글꼴이 우리의 마음을 전하는 도구가 된지 오래다.

 

새해 덕담 씨과실은 먹지 않습니다. 새로운 희망이고 시작입니다.
새해 덕담씨과실은 먹지 않습니다. 새로운 희망이고 시작입니다.신영복
▲ 새해 덕담 씨과실은 먹지 않습니다. 새로운 희망이고 시작입니다. ⓒ 신영복

 

그러다보니 세밑이나 새해를 맞는 인사치례도 자연 손쉬운 문자메일 보내기와 이메일이 대종을 이루고 있다. 직접 얼굴 대면하지 않아도 손으로 정성들여 또박또박 눌러쓴 편지를 읽으면 그 사람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그런데도 언젠가부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활자화된 매체로 인사를 주고받는 세태가 되어버렸다.

 

활자화된 매체로 인사를 주고받는 세태

 

이제 일상 속에서 직접 손으로 쓴 편지로 쓴 덕담을 만난다는 것은 어렵다. 그나마 반갑게 받아든 연하장도 겨우 몇 자 직접 적었거나, 인쇄된 인사말 꼬리에 서명 정도로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이런 연하장도 반갑지 않겠냐마는 어찌 손으로 쓴 편지에 비하겠는가?

 

어쩌면 전자메일을 통해 새해안부를 주고받는 게 바삐 사는 현대인들에게 더 맞는 일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요즘 젊은이들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한 줄을 통해서도 서로의 따뜻한 관계망이 형성된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그러나 편지는 개성이 없고 생명력이 죽은 자판을 두드리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님아, 힘내세요!

이 세상에 필요 없는 사람은 없어요.

지금 당신이 보잘것없이 보여도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요. “

 

그러나 꼭 문자메일만을 탓할 게재는 아니다. 최근에 1020세대들은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를 통해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위로문자나 따뜻한 소통을 하는 ‘훈문놀이’ 즐기고 있다. 이들은 날마다 인터넷 카페에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남겨둔다고 한다. ‘훈문’을 받기 위해서다.

 

다음 카페 '훈문 한 번 받아보자' 다음 카페 ‘훈문 한번 받아보자’의 경우 2008년 1월 2일 개설한 이후 현재까지 946명의 회원이 가입돼 있고, 하루에도 많은 사람들이 가입하고 있으며, 따뜻한 훈문이 넘쳐나고 있다.
다음 카페 '훈문 한 번 받아보자'다음 카페 ‘훈문 한번 받아보자’의 경우 2008년 1월 2일 개설한 이후 현재까지 946명의 회원이 가입돼 있고, 하루에도 많은 사람들이 가입하고 있으며, 따뜻한 훈문이 넘쳐나고 있다. 박종국
▲ 다음 카페 '훈문 한 번 받아보자' 다음 카페 ‘훈문 한번 받아보자’의 경우 2008년 1월 2일 개설한 이후 현재까지 946명의 회원이 가입돼 있고, 하루에도 많은 사람들이 가입하고 있으며, 따뜻한 훈문이 넘쳐나고 있다. ⓒ 박종국

 

훈문(‘훈훈한 문자메시지’)은 2006년 일부 네티즌 사이에서 시작돼 지금은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을 중심으로 한 놀이문화로 정착했다. 인터넷 온라인이 악성 대글로 뒤덮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온기가 퍼지고 있는 것이다. 다음 카페 ‘훈문 한번 받아보자’의 경우 2008년 1월 2일 개설한 이후 현재까지 946명의 회원이 가입돼 있고, 하루에도 많은 사람들이 가입하고 있으며, 따뜻한 훈문이 넘쳐나고 있다. 아이돌 스타 팬클럽이나 일반 친목카페에서도 훈문을 주고받는다.

 

요즘 같으면 ‘좋은 하루 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등 안부나 명절 인사문자가 많지만 ‘님아, 힘내세요! ‘이 세상에 필요 없는 사람은 없어요. 지금 당신이 보잘것없이 보여도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요. 라는 위로 문자도 인기다. 또한 카페에다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와 함께 좋아하는 연예인 이름을 남겨놓으면 그 이름으로 된 ‘역할성 훈문’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다음 카페 ‘훈문 한번 받아보자’

 

이렇듯 덕담이나 훈문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일례로 예전에는 친척이나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 주고받는 대표적인 덕담이 “과세(過歲) 안녕 하셨습니까?”였는데, 요즘은 대신에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라고 인사한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옛날 사람들은 설날에 나이 어린 사람을 만나면 “올해는 꼭 과거에 합격하시오” “생남(生男)하시오”같은 덕담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세태에 따라 어떤 인사말이 덕담이 될지 규정짓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편지도 문자메시지도 아닌 말로써 전하는 설날 덕담으로는 어떤 것이 좋을까. 설날, 모두 설빔을 입고 웃어른들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면 어른들은 손아래 사람에게 덕담을 한다. 이때 세배를 받은 쪽에서는 상대방의 형편에 따라

 

“새해에는 아이를 낳는다지.”

“새해에는 부자가 되었다지.”

“올해는 장가갔다지.”

“올해 꼭 합격했다지.”

“올해는 더 많이 벌었다지.”

 

등의 덕담을 하고 세찬상(歲饌床)이라 하여 떡국을 먹게 한다. 아이들에게는 세뱃돈을 준다. 덕담은 과거형의 말을 통해 일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일종의 언어 주술적 덕담인 셈이다.

 

그러나 덕담은 아무 때나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요즘처럼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는 걱정하고 위로하는 덕담은 피해야 한다. 괜히 구조조정으로 직장을 잃은 사람에게 위로한답시고 “많이 힘들지? 애들 생각해서라도 힘내야지” “어려워도 꿋꿋이 살면 좋은 날이 올 거야” 같은 말들은 겉보기엔 그럴듯해도 상대의 자존감에 크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말이다. 상대를 동정적으로 보거나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좀은 허풍스럽게 보여도 “올해는 돈 벼락 맞으세요!”라는 식의 긍정적인 덕담을 던지면 어떨까.

 

“애들 생각해 힘내야지”

“백수, 올해는 꼭 취업해야지”

“살 좀 빼서 시집가야지”

 

이는 꼭 해서는 안 될 덕담이다. 반드시 덕담을 해주어야 할 때라도 불황기를 걱정하고 위로하지 않아야 한다. 더구나 대학생의 취업처럼 민감한 사안은 상대가 먼저 얘기하기 전에는 서둘러 묻지 않는 게 불문율이다. 윗사람이라고 섣불리 평가나 훈계가 담긴 농담을 해서는 안 된다. “올해는 살 좀 빼서 시집가야 하지 않겠니?” “어이, 백수! 올해는 취업해서 이 삼촌도 내복 한 벌 얻어 입는 거냐?”라는 말은 너무나 경솔하지 않은가.

 

친척끼리 그런 말도 못하나 싶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우리가 얼마나 자주 봤다고 저렇게 자존심 상하는 말을 함부로 하나’ 생각하기 십상이다. 아무리 ”너를 특별히 아끼니까 하는 말이다“고 하여도 당사자는 고까워한다. 이를 경우 덕담으로 인해 관계만 더욱 서먹해진다. 감정을 상하게 하는 서툰 덕담은 차라리 아니함만 못하다. 판단이나 비난보다 그냥 공감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새해 편지 연초에 지인으로부터 받았던 새해 편지다.
새해 편지연초에 지인으로부터 받았던 새해 편지다. 박종국
▲ 새해 편지 연초에 지인으로부터 받았던 새해 편지다. ⓒ 박종국

 

서툰 덕담을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듣는 사람의 입장이 아니라, 자기 입장에서만 말한다는 점이다. 상대가 이런 말을 들으면 어떤 느낌을 가질까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힘든 상처를 입은 사람이라면 말 대신 몸짓으로 덕담을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를테면 손을 꼭 잡아주면서 신뢰의 눈빛을 주고받거나, 어깨를 한 번 두드려주면서 포근하게 안아주는 방법. 특히 몸이 아픈 사람에겐 이런 몸짓의 언어가 더 좋다.

 

“그 동안 몸 돌볼 겨를 없으셨지요? 이제부턴 모든 일 제쳐두고 몸만 챙기세요.”

 

라고 짧게 덕담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런데도 위로하고픈 마음이 넘쳐서 아픈 사람에게 “아니, 안색이 너무 창백하세요?” “살이 이렇게 빠져서 어떡해요?” 식의 호들갑은 상대에게 우울감만 더해준다. 성의 없고 생각 없는 덕담은 결국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할뿐으로 관계만 더 소원하게 만든다. 

 

해마다 명절이 가까워지면 ‘명절에 가장 듣기 싫은 말’에 대한 조사 결과들이 발표된다.

 

“몇 등 하나?”

“어느 대학 갈 거니?”

“어디 취직 할 거니?”

“더 늦기 전에 결혼해라”

“애 빨리 가져라”

“더 있다 가라”

 

부연 설명이 필요 없는 설날 아침 덕담이다. 연령층에 따라 해당 당사자들이 이러한 말들을 가장 싫다고 한 것은 명절이 그만큼 부담스럽다는 심리를 단적으로 나타낸 것이라 볼 수 있다. 화기애애해야 할 명절이 이런 말들 때문에 불쾌한 시간이 되어버린다면 얼마나 안타까울까. 어른들은 그래도 가족의 의무로 명절을 지키지만 아이들은 “나 학원 핑계로 안 갈래”라며 집안 설맞이 행사에 참가하기를 꺼리는 경우가 많아진다.

 

서로의 삶의 방식에 과도하게 개입하지 말아야

 

이런 경향이 심화될수록 가족의 결속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물론 대가족의 경우는 다르다. 대가족은 구성원간에 마찰이 있더라도 그동안 함께 살며 쌓아올린 친밀감이 있어 상처를 덜 받는데다 날마다 마주치기 때문에 풀기회가 많다. 그러나 흩어져 명절에만 모이는 가족(핵가족)의 경우 친밀도가 약한데다 서로의 사적영역 침범에는 여전히 무감각하다. 게다가 한번 생긴 상처는 풀 기회가 없어 모일 때마다 갈등만 쌓이게 된다.

 

덕담 새해 차례를 지낸 후 할아버지 할머니께 세배를 드리고 난 다음 덕담을 듣고 있는 손녀들
덕담새해 차례를 지낸 후 할아버지 할머니께 세배를 드리고 난 다음 덕담을 듣고 있는 손녀들조정숙
▲ 덕담 새해 차례를 지낸 후 할아버지 할머니께 세배를 드리고 난 다음 덕담을 듣고 있는 손녀들 ⓒ 조정숙

 

농담 삼아 툭 던진 덕담이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면 그보다 고약한 노릇은 없다. 나아가 이렇게 사소한 명절 갈등은 결국 부부사이 신뢰를 헤치고 자녀들의 가치관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이제 우리 사회전반에 걸쳐 생활 방식이 서구화 되었다. 그만큼 가족간에도 외국처럼 프라이버시를 존중하고, 또한 서로의 삶의 방식에 과도하게 개입하지 말아야한다.

 

그래서 이번 설날은 조상 대대로 내려온 덕담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보고, ‘명절에 모인 가족끼리는 반드시 덕 있는 말만 주고받고자’ 서로가 마음을 써야한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라는 자세가 필수다. 새해일수록 충고나 지적을 듣는 기분은 좋지 않다. 좋은 말만 하고 살아도 다 못 사는 세상이다. 좋은 덕담은 사람을 즐겁게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다음미디어 블로거뉴스에도 보냅니다.

2009.01.24 19:43ⓒ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다음미디어 블로거뉴스에도 보냅니다.
#새해덕담 #설날 #공감 #훈문 #1020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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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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