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인천국제공항은 많은 출국자들로 분주했다.
선대식
사실 이날 만난 여행객 중 이씨처럼 "환율 상승이 부담되지 않는다"고 말한 사람은 소수였다. 많은 이들이 환율 상승에 대한 부담과 불만을 토로했다.
특히 해외에 자주 나가는 사람들은 "예전과 비교하면 환율이 많이 올라 부담이 크다"고 밝혔다.
이날 가족과 함께 유학을 떠난다는 이진영(가명·37)씨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앞으로 4년간 캐나다에서 박사과정을 밟는다"면서 "2000년 캐나다에 체류할 땐 1캐나다달러 당 700원이었는데, 지금은 1100~1200원"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씨는 덧붙여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부담이 많이 된다, 안 쓰는 수밖에 없다. 정부에서 수출을 위해서 환율 정책을 썼는데, 뚜렷한 결과가 없지 않느냐. 많은 사람, 특히 서민들의 사정을 고려해주었으면 좋겠다."고향인 중국 랴오닝성 안산에서 설을 쇠려는 중국동포 박진용(51)씨는 환율부담 때문에 싼 여행사를 선택했다가 낭패를 당했다.
"중국 교포 대상으로 하는 한 여행사에서 1달 전 왕복 비행기 표를 끊었다. 38만원인데 10만원 깎아준다고 했다. 입금하고선 오늘 오전 6시에 나와 봤더니, 표가 없단다. 알고 보니 여행사에서 표를 못 구한 상태였다. 여행사에서는 밤 9시 30분까지 기다려보라는데, 표가 있을지 모르겠다."중국 동포·이주노동자 "일자리 없어 떠납니다"그래도 강원도 원주에서 불도저 운전을 하고 있다는 박씨의 사정은 다른 중국 동포나 이주노동자에 비하면 나은 편이다. 이날 인천공항출입국관리사무소 출입국민원실에는 기약 없는 출국을 선택한 이들로 분주했다.
한국 땅을 밟은 지 10년 만에 방글라데시로 떠나는 사자한 알리 바드사(30)씨도 그들 중 하나다. 그는 유창한 한국말로 "5년간 불법체류했는데, 문제가 없다는 확인을 받았다"면서 "1시간 뒤에 떠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그는 "떠나는 기분이 좋지 않다"며 속내를 털어놓았다.
"경기도 광주 침대공장에서 일했다. 예전에는 오전 8시부터 밤 9시까지 주6일 일하면서 170만원을 벌었다. 80만원씩 고향에 보냈다. 하지만 이젠 낮 12시까지 일할 때도 많다, 많아야 한 달에 100만원 번다. 환율도 올라 고향의 부모님이 받는 돈은 훨씬 더 적어졌다. 일이 많다면 떠나지 않는데…."랴오닝성 선양이 고향인 중국 동포 백종학(가명·39)씨도 일이 없어 한국을 떠난다. 그는 "몇 년 전까진 공사판에서 한 달에 27~28일 일해 일당 12만원씩 300만원 넘게 벌었다"며 "요샌 한 달에 보름 나가는 날도 적고, 나가도 일당 7만원짜리 자리만 있다"고 말했다.
백씨는 이어 "어떻게든 한국에서 버텨보려고 했지만, 너무 힘들다"며 "다시 한국 경제가 좋아지는 날 돌아오겠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비행기 시각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서둘러 민원실을 떠났다.
그 시각에도 민원실엔 중국 동포와 이주노동자들이 끊임없이 몰렸다. 필리핀항공·베트남항공 등 동남아시아 항공사 발권 카운터 관계자는 "여행객들보다는 부인과 함께 처가를 찾는 국제결혼자, 고향에서 설을 쇠려는 중국 동포, 귀국하는 이주노동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날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행 비행기에는 여행객들의 설렘보다는 경기 불황으로 한국을 떠나는 사람들의 한숨이 더 많이 실렸다. 분주했던 설날 연휴의 인천공항은 불황 속 나홀로 호황의 모습이 아니라, 경기 불황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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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연휴 분주한 인천공항? "일자리 없어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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