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결혼하고 손님 맞는 라오스 시골마을

[아내와 은둔의 나라 라오스로 떠난 배낭여행기 7]

등록 2009.01.28 18:18수정 2009.01.29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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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강 건너에 있는 시골 마을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이 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툭툭이를 타고 자동차가 다니는 다리를 통해 돌아갈 수 있지만, 강위에 놓여진 작은 나무다리를 통해서 걸어가기로 하였다. 이 나무다리를 지나려면 역시 요금(4000킵)을 내야 한다. 대나무와 나무를 이용해서 만든 다리인데 강을 건너기 위해 임시로 다리를 만들어 놓고 돈을 받는다.

a 나무다리 강을 건너 마을로 들어 가는 나무로 만든 다리

나무다리 강을 건너 마을로 들어 가는 나무로 만든 다리 ⓒ 임재만


강 건너 고수부지 채소밭에는 한 농부가 배추에 물을 주고 있다. 채소밭은 아침 햇살로 밝게 빛나고 있었는데, 멀리서 바라보는 풍경이 근사하다. 다리를 건너 언덕을 올라가자 마을이 나타난다. 마을 입구의 강변에는 작은 식당이 하나 있고, 곧 마을로 이어지는 큰 길이 뻗어 있다. 식당을 지나 마을로 들어서자 어느 집 마당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남자들은 전봇대에 올라가 전선을 늘이거나 전등을 달고 있고. 여자들은 마당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다. 마당에 들어가 자세히 보니 돼지고기도 볶고, 감자 껍질을 벗기는 등 아주머니들은 음식을 만드느라 분주하다. 무슨 일이 있는가 궁금하여 마당에 서 있는 젊은 여인에게 살짝 물어보았다. 오늘 저녁 일곱시 이곳에서 결혼식이 있다고 귀띔을 해준다. 보통 결혼식은 낮에 하는데 밤이라니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마 프랑스 지배를 받았던 서구의 파티 문화 영향이 아닐까 생각한다.

a 결혼식 준비 남자들이 길가에 전선을 늘이고 있따

결혼식 준비 남자들이 길가에 전선을 늘이고 있따 ⓒ 임재만


a 잔치집 마당 마당에서 동네아주머니들이 음식을 만들고 있다

잔치집 마당 마당에서 동네아주머니들이 음식을 만들고 있다 ⓒ 임재만


방안에는 이미 친척들이 와서 정담을 나누고 있고, 마당에선 동네 아주머니들의 음식준비가 한창이다. 큰 솥을 화덕에 걸어놓고 장작불을 지펴가며 음식을 만드는 모습을 보니 마치 우리나라의 어느 잔칫집에 와 있는 느낌이다. 더구나 솥뚜껑을 뒤집어서 부침개를 부치고 돼지를 잡아 갖가지 음식을 만드는 모습은 옛날 우리나라 시골의 잔칫집 풍경 그대로다

하지만 그 곳에서 사진을 찍으며 한참을 서 있어도 음식을  먹어보라 권하는 사람이 없다. 낯선 이방인에 대한 경계심일까 ? 아니면 이곳 사람들의 음식에 대한 인심이 인색한 걸까? 특이한 점은 이곳 사람들은 내가 먼저 물어보기 전에는 절대 먼저 말을 걸어오는 경우가 없다는 것이다.

저녁에 결혼식을 보러 다시 오기로 하고 마을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잔칫집 뒤로 나있는 큰 길을 따라 마을 깊숙이 들어갔다. 마을길은 모두 비포장도로이기 때문에 차라도 한 대 지나가면 금세 마을전체가 먼지를 뒤집어 쓴다. 시내와는 불과 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도시나 다름없는 마을이지만 길이 포장이 안 되어 있어 먼지가 풀풀 날린다.

허지만 집들은 도시 못지않게 현대식 건물로 잘 지어져 있으며, 마당도 제법 넓게 잘 가꾸어져 있다. 어느 집은 마당에 배드민턴 네트가 설치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잔디가 깔려져 있어 금방 부촌임을 짐작케 한다. 마치 우리나라의 전원주택마을 같다. 마을 곳곳에는 조그만 구멍가게가 있었는데 마을 규모에 비해 꽤 많아 보였다.


이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예전의 우리나라 보따리장수처럼 집집마다 물건을 팔러 다니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긴 대나무 양쪽에 나무로 만든 광주리를 매달고 마을의 골목골목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아주머니의 광주리에는 채소와 생선들이 주로 담겨 있었고, 자기 집을 드나들 듯 이집 저집을 편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아주머니는 열 일곱살 정도의 예쁜 딸과 함께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성격이 매우 쾌활하고 적극적이다. “사진을 찍어도 될까요”라고 물어보자, 가던 길을 멈추고 자신 있게 멋진 포즈까지 취해주며 활짝 웃어 준다. 비록 무거운 짐을 어깨에 메고 마을을  돌아다니지만 그녀의 모습은 당당하고 활기차 보였다. 마치 두 모녀는 즐거운 산책을 하고 있는 듯 했다.  


a 물건을 팔러다니는 모녀 집집마다 물건을 팔러 다니고 있다

물건을 팔러다니는 모녀 집집마다 물건을 팔러 다니고 있다 ⓒ 임재만


두 모녀를 따라 골목으로 들어가자, 조그만 집의 마당에서 베를 짜고 있는 젊은 여인이 언뜻 보인다. 눈을 의심하여 무심코 지난 길을 되돌아가 그 집 마당으로 들어가 보았다. 우리나라에서 베를 짜는 모습과 너무 똑같았다. 사실 내가 자랄 때에도 베 짜는 것을 본 일이 없다. 어느 지역의 축제마당에서나 가끔 볼 수 있었던 귀한 풍경을 지금 이 나라에서 실제 상황을 보고 있는 것이다.  어디를 가나 사람 사는 모습은 비슷한 모양이다.

젊은 아낙이 베를 짜고 있는 이 집에는 고양이 한마리가 한가롭게 마당 한 가운데서 졸고 있고, 닭들은 먹이를 찾아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다. 베를 짜는 모습은 약간 어설퍼 보였지만 주변에 쌓여 있는 재료나 베틀 기계의 상태를 볼 때 실제의 생활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이 드신 어머니께서 가끔 일러주는 것으로 보아 이 아낙은 지금 배워가고 있는 모양이다. 아직 라오스는 경제사정이 매우 열악하다보니 많은 생필품이 손으로 만들어 지고 있다. 그래서 시장에 가면 수공으로 만든 옷감을 많이 볼 수가 있다.

a 베를 짜는 여인 마당에서 베를 짜고 있다

베를 짜는 여인 마당에서 베를 짜고 있다 ⓒ 임재만


점심 때가 지나, 다라 마켓이라는 현대식 건물로 들어갔다. 이곳은 시내에서 볼 수 있는 큰 건물의 하나로 젊은 여자 점원들이 앉아 주로 옷을 팔고 있었다. 그 점원들은 우리나라 상인들이 음식을 시켜 먹듯이 배달한 음식으로 즐거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곳 점원들의 다른 점은 손님이 오기를 기다릴 뿐 호객행위를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긴바지를 하나 사 보려고 가격을 물으니 가격이 만만치가 않다. 방비엥의 물가와는 전혀 딴판이다. 그래서 인지 이곳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시장 안은 매우 한산했다. 우리나라로 보면 이 마켓은 백화점인 모양이다.

배가 고파 다라마켓 근처의 식당으로 갔다. 이 식당에는 비교적 외국인이 많이 있었다.  밖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주문하고 지도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식당 안에서 큰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돌아다보니 오전에 마을에서 만났던 보따리장수 아줌마가 딸과 함께  웃고 있었다. 순간 반가움이 일어 “싸바이디“라고 소리치자, 손뼉을 치며 반가워 한다. 마을 길에서 잠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인데, 이웃집 아주머니를 만난 것처럼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곳에도 물건을 파느냐고 묻자, 오후에는 이곳 식당에서 일을 한다고 한다. 그렇니까 식당이 한가한 오전에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고, 식당이 붐비는 오후에는 이곳에서 일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참으로 부지런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다. 엄지손가락을 세워 최고라고 하자. 두 모녀는 겸손한 미소를 지으며 식당 안으로 다시 들어간다.

해거름이 되어 푸시산을 다시 올라 갔다. 일몰을 보기 위함이다. 시내 야시장이 열리는 거리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일몰시간이 다 되어 올라갔다. 산 정상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올라와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해가 아래로 내려갈수록 루앙 푸라방의 하늘은 점점 붉게 물들어 가고, 태양은 더 둥글고 큰 모습으로 서산을 향해 떨어진다.

a 푸시산의 일몰 사람들이 일몰을 지켜보고 있다

푸시산의 일몰 사람들이 일몰을 지켜보고 있다 ⓒ 임재만


a 푸시산에서 바라본 풍경 일몰직후 푸시산에서 바라본 풍경

푸시산에서 바라본 풍경 일몰직후 푸시산에서 바라본 풍경 ⓒ 임재만


일몰사진 한 컷을 찍어 보려고 이리 저리 옮겨 다니며 무진 애를 써 보지만, 앞에서 자리를 잡고 서있는 사람들로 인해 쉽지가 않다. 잠시 후, 붉은 태양이 메콩강 너머의 서산에 딱 걸리자, 사람들은 끝내 탄성을 자아내고 만다. “와~…”, 잠시 함성이 이어진다. 산 정상이 비좁은 관계로 마음 놓고 일몰을 볼 수 없어 아쉽다. 그래서 해가 진 이후에도 미련이 남아 그곳에 한참을 서 있었다.

6시가 넘어 결혼식이 열리는 마을로 다시 갔다. 방안에서는 가족들이 모인가운데 예식이 열리고 있었는데, 신랑신부 앞에 촛불을 켜 놓고 경건한 분위기로 진행되고 있었다.

결혼할 때, 라오스는 신랑이 신부 어머니에게 결혼 지참금을 준다고 한다. 보통 현지인들은 천달러정도를 주며, 마을이장이 그날 신랑이 신부에게 어떤 선물을 주었는지, 신랑의 지참금은 얼마인지 그리고 신랑과 신부의 이름은 무엇인지를 문서로 만들어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고 서명을 받는다. 이렇게 하면 법적으로 문서화되고 정식 부부로서 인정을 받게 된다고 한다.

a 손님과 신랑신부 손님들에게 신랑신부가 술을 따라주고 있다

손님과 신랑신부 손님들에게 신랑신부가 술을 따라주고 있다 ⓒ 임재만


a 잔치집 마당 신부가 지인을 보고 반가워 하고 있다

잔치집 마당 신부가 지인을 보고 반가워 하고 있다 ⓒ 임재만


잠시 후, 신랑신부는 음식이 차려진 마당으로 나왔다. 곱게 차려 입은 신부와 검은 양복을 입은 신랑은 어깨에 멋진 띠를 두르고 있었는데, 멀리서 보아도 오늘의 주인공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저녁 7시가 넘자 이들을 축하해 주려는 손님들이 하나 둘 마당으로 들어온다. 그러자 신랑신부는 마당 입구에 서서 공손한 마음으로 그들에게 술한잔을 따라 올린다. 신랑신부가 따라주는 이 술은 이들 부부의 행복을 기원하는 뜻으로 누구나 꼭 마셔야 한다고 한다. 곧 잔칫집은 손님들로 북적되며 흥겨운 분위기가 살아난다.

밤이 깊어 간다. 내일은 무엇을 할까 ? 다시 산골마을이 그리워진다....

덧붙이는 글 | sbs유포터에도 송고합니다


덧붙이는 글 sbs유포터에도 송고합니다
#결혼식 #배낭여행 #라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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