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전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범 강모씨가 부녀자 살해현장검증을 위해 수사본부가 차려진 경기도 안산 상록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권우성
연쇄살인범 피의자 강모씨의 이름과 얼굴이 일부 언론을 통해 공개되었다.
<중앙일보>는 강모씨의 신상을 공개하면서 '공익 위해' 공개 한 것이며 "인륜을 저버린 흉악범의 인권보다는 사회적 안전망이 우선이라고 판단했다"고 했다. <조선일보> 역시 "범죄 증거가 명백하고 범죄 방지의 공익이 크다면 얼굴을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세우며 얼굴을 공개했다. <KBS>는 "국민 알권리와 여죄 제보를 기대하는 차원에서" 공개했다고 한다.
신상 공개 찬성하기 전 생각해 볼 네 가지강모씨의 신상을 공개한 언론들의 논리를 정리해 보면 '범죄 증거가 명백'하고, '공익에 부합'하며, '국민의 알권리'와 '여죄 제보'를 위해 범죄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강모씨의 신상을 공개하는 문제에 대한 논의를 여기서 시작해 보자.
첫째, 범죄 증거는 과연 명백한가? 현재 강모씨가 연쇄살인범이라는 건 그의 진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여러 가지 정황 증거를 두고 봤을 때 그가 범인일 가능성이 상당하지만, 발굴 되는 사체 모두가 그로 인해 죽임을 당한 것인가 하는 것은 좀 더 세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또한 그가 단독범인지, 공범이 있는 지도 모르는 상태다. '명백'이라는 단어는 모든 것이 '의심할 바 없이 아주 뚜렷' 할 때 쓰는 단어로, 최종 수사 결과가 나오고 법원의 판결이 내려지고 난 이후에나 쓸 수 있다. 언론이 재판관 행세를 하는 것 보다 더 위험한 일은 없다.
둘째, 범죄 피의자의 신상공개가 과연 공익에 부합하는 일인가? 정부가 서민들에게 고통을 분담시키면서 국익을 내세울 때, 그 국익이 진정 국가의 이익이기 보다는 권력을 쥔 이들만의 이익이 되는 경우를 우린 자주 봐 왔다.
언론사들이 주장하는 공익 역시, 공공의 이익이라기 보다는 신문 한 부 더 팔고, 시청률 조금 더 올려 보려는 얄팍한 수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범죄 피의자 신상공개는 이 사회 전반의 인권의식을 떨어뜨림으로써 궁극적으로 공공의 이익을 훼손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셋째, 신상공개가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는가? 범죄 피의자의 신상공개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을까' 하는 단편적인 호기심을 채워줄 수는 있다. 하지만 그 호기심을 '알권리'라는 이름으로 치장하여, 당연히 지켜져야 할 '인권'을 훼손하는 도구로 삼을 수는 없다.
범죄자들의 얼굴을 모두 익혀서 그들을 격리하거나 피해 다닌다고 해서 새로운 범죄가 생기지 않는다면 신상공개가 필요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범죄는 특정인의 인성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사회 구조적 모순에 기인하는 경우가 더 많다. 국민들이 알아야 할 것은 범죄인의 신상이 아니라, 이런 범죄가 일어 날 수밖에 없었던 사회 구조적 문제이다.
넷째, 여죄 제보의 목적이 신상공개를 합리화 할 수 있는가? 범죄 피의자의 신상공개가 여죄 제보를 통해 추가 범죄 사실 발굴에 도움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게 따진다면 범죄를 막기 위해 집집마다 CCTV를 설치해서 경찰이 감시를 하고, 범죄를 막기 위해 개인의 통화를 도청하고, 범죄를 막기 위해 북한의 5호 담당제를 도입하는 것도 거부할 수 없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하지 못할 뿐더러,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국가와 미디어가 국민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사회가 되고 말 것이다.
내가 신상공개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