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정동 철거민촌동네이름도 ‘철거민촌’인 이곳 인천 부평구 십정1동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철거민’이 된 채, 푸진 고향도 살가운 동네도 없이 헤매어야 할는지요. 이곳 골목사람은 ‘인천시민’도 ‘한국사람’도 아닌지 궁금합니다.
최종규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사진을 찍다가 시계를 보니 열두 시가 다 되어 갑니다. 집에서 홀로 아기를 보는 옆지기는 밥도 못 먹고 힘들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집으로 전화를 걸어 본 뒤, 부리나케 자전거를 몰아 간석동과 주안동을 거쳐 도화동으로 접어듭니다. 도화동 골목길에서 몇 장 담고 숭의동으로 건너고 금곡동으로 접어들어 비로소 집에 닿습니다.
집에 닿자마자 입은 옷을 모두 벗어 빨래통에 담그고 밥을 안칩니다. 그사이 쌓인 기저귀를 빱니다. 기저귀를 널고 나서 찌개를 끓입니다. 다 된 밥과 찌개를 밥상에 올려 늦은아침을 듭니다. 이러는 동안 오늘 찍은 디지털사진을 셈틀로 옮깁니다. raw 큰크기로 찍은 사진을 jpg 작은크기로 바꾸어 줍니다. 오늘 하루 186장을 찍었습니다. 필름으로 치면 다섯 통. 문득, 제가 필름사진기로 골목길을 찍었어도 다섯 통을 찍었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글쎄, 어쩌면, 다섯 통이 아닌 열 통쯤 찍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꼭 이만큼 다섯 통만 찍었을는지 모릅니다. 저는 디지털사진기로 찍을 때라 하여 더 신나게 찍어대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꼭 한 가지 모습에 한 장씩만 담습니다. 흔들리거나 빛이 안 맞으면 곧바로 지우고 새로 찍습니다.
그래서 186장을 찍었다면 186가지 다 다른 모습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필름과 함께 디지털을 쓰는데, 지난 세 해 사이 골목길 모습을 여러 만 장 찍는 동안 디지털로만 찍으면서, 이만큼을 필름으로 찍었다면 아주 어마어마한 돈이 들었으리라 봅니다. 디지털사진기는 주머니가 가난한 사진쟁이가 자기 주제를 오래도록 꾸준히 많이 찍어야 할 때 참으로 좋은 장비가 아니랴 싶습니다. 아직까지는 필름사진 질감을 따르기 어렵고, 여느 필름사진기 화각만큼 담을 디지털사진기는 대단히 비싸기는 하지만,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슬기롭게 머리를 짜내고 손놀림을 익히면, 값싼 디지털사진기로도 얼마든지 자기 눈썰미대로 사진으로 자기 생각을 담아낼 수 있어요. 가장 뛰어난 장비가 있어야 가장 뛰어난 사진을 담아낼 수 있지는 않으니까요. 가장 비싸고 값진 장비를 써야만 훌륭한 사진쟁이가 될 수 있지는 않으니까요.
문득, 그제 서울 나들이를 하던 날이 떠오릅니다. 책마을에서 일하는 분들이 모인 자리에 부랴부랴 찾아갔는데, 마침 이 자리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려 하다 보니 사진기 있는 분이 없다 하여 저보고 사진 몇 장 찍어 달라고 여쭈십니다. 모두들 모르는 분들이라 낯설어 저으기 쭈뼛쭈뼛 있을밖에 없었는데, 제 사진기를 가리키며 ‘크고 좋은’ 사진기라고 말씀하시는 바람에 빙긋 웃으면서 찍을 수 있었습니다. 이분들은 ‘크고 좋은’ 사진기라고 부추겨 주었지만, 사진일을 하는 분들은 제 기계를 보고는 ‘작고 싸구려’ 사진기라고 이야기들을 하거든요. 사진을 좀 ‘안다’는 분들은 ‘입문용’이나 ‘초보자용’이라고도 말합니다. 사진을 좀 ‘모른다’는 분들한테는 입문용이든 초보자용이든 꽤 비싸고 좋은 녀석 아니냐고 생각을 합니다.
보는 이에 따라 다 다른 제 사진기인데, 저는 제 사진기를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녀석’으로 여깁니다. 그저 제 몸과 하나라고 느낍니다. 마음에 든다 안 든다 하는 생각은 없습니다. 그예 제 손처럼 움직이고 제 몸뚱이처럼 늘 붙어 다닐 뿐입니다. 빨래를 하고 밥을 하고 걸레질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책을 만지고 사진기를 쥐느라 손그림이 닳듯, 제 사진기도 닳아 갑니다. 열 번째 사진기를 잃어버리고 새로 장만한 지 이제 고작 반 해쯤 되었는데 사진기는 반들반들합니다. 찍건 안 찍건 언제나 어깨나 목에 걸려 있고, 찍을 때에는 손이 후들후들 떨리도록 붙잡고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