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복원 현장매일 출퇴근길에 바라보게 되는 숭례문 복원현장. 사이사이 내부를 조망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지만 과거의 화려하고 웅장한 숭례문의 모습은 찾을 길 없다.
이재승
숭례문 화재 발생한 지 1년이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1년 전 퇴근길에 숭례문 화재를 처음으로 목격해 신고했고, 방화용의자인 채모씨를 검거하는 현장까지 동행했었기에 그 의미가 남다릅니다. 물론 당시에는 숭례문 화재를 막지는 못했지만 용의자를 검거하는 데 일조했다는 데 나름 자부심도 가진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런 제 자신이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숭례문 화재, 그 이면의 진실에 대해 너무나 무지했기 때문입니다.
1년 전, 숭례문 화재가 발생하고 방화용의자 채모씨를 검거하기 위해 형사들과 동행하면서 문제가 된 일산의 '알박기' 땅을 찾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고층 아파트 사이에 자리 잡은 20여 평 남짓한 공간이 채모씨의 땅이라고 했습니다.
고백하건대 당시에는 '그깟 돈 몇 푼 더 받겠다고 이런 일을 벌인 사람이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돈이 무엇이기에 국보를 태워가며 받아내려고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와 돌이켜 생각하면 채모씨의 극단적 행동도 폭압적인 재개발과 대기업 편들어주기 행정이 빗어낸 참혹한 결과였습니다.
채모씨는 검찰에서 "내 땅, 내 집에서 살 수 없다는 것이 억울하다"고 수차례 밝혔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물론 국보를 불태우고 국민들의 가슴에 큰 상처를 준 죄, 벌 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나이 일흔의 백발노인이 이처럼 참담하고 무모한 범행을 저지르기까지 그의 하소연에 귀 기울이지 못한 우리 자신부터 반성해야하는 것은 아닌지, 1년이 지나서야 생각하게 됩니다.
탐욕이 부른 용산 참사, 숭례문 화재의 복제판용산 철거민 참사가 발생한 지 어느덧 3주가 지나갑니다. 이번 비극은 서울시와 용산구 그리고 재개발조합측이 법적으로 규정된 휴업보상비 3개월분과 주거이전비(집세) 4개월분을 세입자들에게 지급키로 하자 세입자들은 생계와 주거문제를 해결하는 데 턱없이 부족한 비현실적인 액수라며 반발하고 나서면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특히 상가 세입자들은 대체 상가를 마련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서울시는 이러한 요구에는 관심도 갖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신들이 문화재청을 무시하고 신청사 짓기에 급급했듯, 용산에서도 그런 재개발을 꿈꿨나 봅니다. 결국 서울시의 일방주의는 여섯 사람의 꿈과 희망을 한 번에 앗아 갔습니다.
용산 참사 소식을 접하며 어릴 적 읽었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떠올랐습니다. 30년 전 쓰인 이 책의 이야기가 왜 2010년을 바라보는 우리 앞에서 현실이 되는 것일까요. 재개발이라는 이름의 폭식공룡이 이제 30살 나이를 통해 뉴타운이라는 이름으로 거듭나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삶을 이어가는 이들을 잡아먹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 공룡 앞에서 새파랗게 질린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카드는 결국 무엇이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