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등학교 정치 교과서
한성용
우리나라, 아니 전세계 그 어느 곳에서나 화두인 정치사상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가장 먼저 손에 꼽는 것 중의 하나가 민주주의일 것이다. 민주주의. 그 단어를 단순히 다수결의 원리로 작동하는 정치체제의 한 형태를 지칭하는 말로 여겨 왔던 나에게 'p 23의 더알아보기'는 섬뜩하기까지 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천재교육 고등학교 정치 교과서 23쪽 '더 알아보기'의 제목은 다음과 같았다.
'
민주 정치를 가리는 기준'.그 글에서 인용된 매키버(R.M. Maclver, 1882~1970)는 민주주의의 참과 거짓을 가리는 기준을 다섯 가지로 나누고, 그 민주주의의 기준에 대한 문항들 중 단 하나라도 '아니오'라는 대답이 나오면 그 국가의 정치 체제는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무심코 그 문항들을 잠깐 읽어 내려가던 나는 정말 충격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 질문들에 대해, 내가 정치 수업은 내팽개친 채로 끊임없이 생각한 답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사람들이 정부 시책에 대해 반대해도 이전과 다름없이 심신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가? 첫 질문부터 '아니오'라는 대답이 나왔다. 재벌들의 이익을 꾀하는 재개발을 위해 서민을 짓밟은 이명박 정부에 저항하던 서울 용산의 철거민들은 심신의 안전 보장 없이 그저 싸늘한 주검이 되어야만 했기 때문이다.둘째, 정부의 시책에 반대되는 정책을 표방하는 단체를 자유롭게 조직할 수 있는가?
물론 얼핏 보기에는 '네'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무려 1842개의 촛불 집회 참가 단체를 불법 단체로 규정하여, 그들 단체는 앞으로 보조금마저 중단될 위기에 처해 있다. (인터넷 신문 <레디앙> 보도:
경찰, 1842개 촛불단체 불법단체 규정) 따라서 이 질문 역시 '아니오'라고 대답할 수 있겠다.
셋째, 집권당에 대해서 자유롭게 반대 투표를 할 수 있는가?'아니다'. 대통령 탄핵은 국민이 직접할 수 없고 그 대신 국회의원이 하기 때문에, 국회의 과반수인 한나라당이 여당으로 존재하는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에서 집권당과 집권자에 대한 탄핵은 불가능하다. 이미 국민들이 집권당의 탄핵을 결정하는 투표를 자유롭게 임의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셋째 문항의 답은 단연코 '아니오'다.
넷째, 집권당에 반대하는 투표가 다수일 경우 정부를 권력에서 물러나게 할 수 있는가?역시 대답은 '아니오'이다. 집권당 신임-불신임 투표조차 불가능한데, 어찌 투표를 통한 정권 퇴진의 실현이 가능하겠는가.
다섯째, 이와 같은 문제를 결정하는 선거가 일정 기간 또는 일정 조건하에서 실시될 수 있는 입헌적인 조치가 되어 있는가?'네'. 우리에게 그나마 희망의 빛줄기를 던져준 단 하나의 질문이었다. 그렇다. 우리는 이번 4월의 재보선을 시작으로 하여 우리의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 물론 그 한 표는 정부 여당에게 갈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