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희야, 아빠가 원망스럽니?

등록 2009.02.12 15:23수정 2009.02.12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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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항 속 물고기 구경에 정신이 없다.
어항 속 물고기 구경에 정신이 없다.임정혁
어항 속 물고기 구경에 정신이 없다. ⓒ 임정혁

오랜만에 주중에 집에 가게 되었다. 아내와 아이가 많이 보고 싶었던 까닭이다. 편도 약 60킬로의 퇴근길은 정체의 연속이지만 내 마음을 막을 수 없다. 나는 하이패스와 그 동안 파악해둔 최적화된 코스를 통해 집을 향해 차를 몰았다.

 

집에 도착하니 딸아이가 책상 의자에 앉아 '마00' 라는 캬라멜을 먹고 있었다. 내가 문을 열자 녀석은 '오오오~' 라며 반겨준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모든 짐을 집어 던지며 "건희야!!" 라고 소리쳤고, 우리 부녀는 감격스런 상봉을 하였다.

 

아내가 차려주는 정성스런 저녁 식사 후 우린 마트에 가게 되었다. 딸아이 몸에 바를 로션과 먹거리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주말부부이다 보니 늦은 밤이지만 이렇게 한번 갈 때 마다 장을 봐야 한다. 물론 피곤하기도 하나 이러면서 데이트도 하고, 차비도 아껴나간다.

 

마트에서 구입 계획했던 모든 품목을 사고 마지막 커브를 돌던 그 곳에는 애완코너가 있었다. 사실 나는 애완동물에 관심이 없어 있는 줄도 몰랐다. 그런데 카트에 앉아 있던 딸아이가 연방 '아빠'를 외쳐대며 저리로 가자 애원을 했던 것이다.

 

이 녀석은 참 특이하게 물고기 코너를 좋아한다. 아마도 환한 조명과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는 물고기가 신기했나 보다. 특히, 요즘은 입을 벌려대는 재밌는 기포발생기가 많이 있어 더욱 그런 것 같았다. 정신 없이 물고기 구경을 한다. 3층으로 구성된 마트 어항을 모두 구경하고 싶어서 나에게 끊임 없이 안아달라 한다.

 

집에 가자하니 대단히 실망한 딸아이

 

그렇게 얼마나 구경하고 있었을까. 시간을 보니 벌써 11시가 다 되어간다. '아뿔싸!!' 너무 시간이 늦은 시간이 되어버렸다. 직장 생활을 하는 아내와 딸아이 모두에게 말이다. 속히 집에 돌아가야만 했다. 그래야 짐 정리를 하고 이부자리를 편 후 11시를 전 후 하여 잠자리에 들 수 있다. 나는 건희에게 말했다.

 

"건희야, 이제 집에 가야해. 물고기한테 빠이 빠이 하자~"

 

순간 녀석의 표정이 흐려진다. 실망의 눈빛이 가득하다.

 

"건희, 물고기랑 더 놀고 싶어요?"

 

"네~!!"

 

"음, 안 돼 건희야. 이제 물고기도 코~해야해. 건희도 코~해야 내일 어린이집 가지~"

 

"으음으으~~응~~응!!"

 

어라, 이거 녀석 표정이 완전 울기 직전이다. 오랜만에 물고기를 보며 놀고 있었는 데, 아빠가 훼방을 놓는다 생각했는 지, 물고기 친구와 정말 헤어지기 싫었는지. 아무튼 이 녀석은 뭐든지 한번 하면 헤어나오지를 못한다.

 

"건희야, 그래 그럼 마지막으로 한번 더 물고기 보고 오자응~알았지? 그리고 물고기 빠이빠이 하고 낮에 다시 와서 노는 거야~알겠지? 물고기도 이제 코~해야해"

 

라며 다시 물고기를 향했다. 녀석은 좋다 했다. 잠시라도 물고기를 더 보는 게 그리도 좋았나보다. 어항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나와 함께 전부 인사를 한다.

 

"물고기야 안녕~건희는 낮에 또 올게~그 때까지 잘 있어라~빠이빠이~~"

 

이제 인사를 마치고, 발길을 돌리는 순간 녀석이 잠시 투정을 부린다. 이 때, 저 쪽에서 다른 것을 구경하던 아내가 등을 내밀며 "건희야 엄마하고 업자~"라고 하니 그제서야 등에 안겨 투정을 멈췄다.

 

기왕에 물고기를 좋아하는 녀석이기에 앞으로도 계속 될 이런 시간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배울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그리고 "생명 나눔의 삶" 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점점 물질보다 생명이 경시되는 이 풍조를 거스르는 건 이 아이의 인생에 큰 피로로 다가올 수 있으나, 적어도 나와 내 아내는 이것이 사람답게 사는 길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또한 대화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비록 아직은 어리지만 끊임없이 녀석과 대화를 시도하며 차분히 설명해주고, 내가 원하는 것을 얘기하는 습관을 들이는 중이다. 그러니 이제는 아빠 엄마의 설명을 듣고, 납득하면 설득이 되기도 한다. 어린이 집에서도 그런다하는 통신문이 오는 것을 보니 인내를 하며 진행한 교육이 조금씩 싹을 틔우는 것 같다.

 

물론 그 전에 내 자신이 사람 냄새 나는 삶을 살아가야함을 다짐하게 된다.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삶이란 논리 그 자체만이 아니라 사람에게만 있는 그 무엇이 통하여 깊은 감동을 주고, 공명을 일으킬 수 있는 그런 게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필자의 블로그 [라이프]하늘바람몰이(http://kkuks81.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9.02.12 15:23ⓒ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필자의 블로그 [라이프]하늘바람몰이(http://kkuks81.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물고기 #생명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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