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세 노모와 결혼 앞둔 아들·딸을 놔두고…"

[빈소 현장] 오열하는 '판교 건설현장 붕괴사고' 희생자 유족들

등록 2009.02.16 02:26수정 2009.02.16 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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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15일 밤 '판교 건설현장 붕괴사고'에서 희생된 사망자 3명의 빈소가 차려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제생병원에서는 유족들의 애끓는 울음소리로 가득했다.

15일 밤 '판교 건설현장 붕괴사고'에서 희생된 사망자 3명의 빈소가 차려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제생병원에서는 유족들의 애끓는 울음소리로 가득했다. ⓒ 선대식

15일 밤 '판교 건설현장 붕괴사고'에서 희생된 사망자 3명의 빈소가 차려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제생병원에서는 유족들의 애끓는 울음소리로 가득했다. ⓒ 선대식

"난 오전 8시 40분에 도착하려 했는데, 고속도로에서 '사고 났다'는 소리를 듣고, 손이 떨려서…."

 

눈가가 붉어진 김아무개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읊조렸다. 그는 '판교 건설현장 붕괴사고'로 숨진 전기기술자 고 이태희(36)씨의 동료다. 토사가 무너진 시각이 오전 8시 25분이었으니, 불과 15분 차이로 이씨는 죽고 김씨는 살아남은 것이다.

 

15일 밤 고인의 빈소가 마련돼 있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 제생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김씨는 계속해서 "안타깝다"라는 말만 내뱉었다. 눈물을 계속 쏟았다는 그는 "초등학교 5학년인 딸이 공부한다고 자랑했는데…"라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옆에 있던 직장 동료 이아무개씨는 "현장에 젊은 사람이 없어 (고인이) 현장에서 제일 막내였는데, 일을 참 열심히 했다"며 "죽은 사람도, 앞으로 일이 끊기게 되는 현장 노동자도 모두 불쌍하다, 건설현장은 이런 곳"이라고 쓴 웃음을 지었다.

 

책임 공방 벌이는 시공사 SK건설... 유족들 "부실공사 아니냐"

 

 15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동판교 택지개발지구 SK케미칼연구소 터파기 공사현장에서 붕괴사고가 발생, 소방관계자들이 매몰된 인부 구조작업에 나서고 있다.

15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동판교 택지개발지구 SK케미칼연구소 터파기 공사현장에서 붕괴사고가 발생, 소방관계자들이 매몰된 인부 구조작업에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신영근

15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동판교 택지개발지구 SK케미칼연구소 터파기 공사현장에서 붕괴사고가 발생, 소방관계자들이 매몰된 인부 구조작업에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신영근

 

이날 분당 제생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사망자 3명의 유족들은 휴일도 반납하고 공사 현장에 나선 남편·아버지·아들의 죽음에 넋을 잃고 흐느꼈다. 빈소는 "허망한 죽음"이라며 애끓는 울음소리로 가득했다.

 

특히 시공사인 SK건설이 보상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는 모습에 유족들은 "누가 잘못했던 죽은 사람이 먼저 아니냐"며 서럽게 울었다.

 

이날 사고는 판교신도시 내 테크노파크 SK케미칼연구소 신축부지의 터파기 공사 현장에서 토류판(흙이 흘러내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한 나무판)이 23m 아래 바닥으로 무너져 내리면서 일어났다. 공사현장 인근 도로에 있던 컨테이너 사무실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희생을 키웠다.

 

SK건설은 "사고 현장 근처에서 진행됐던 도로공사 중 상수도가 파열된 상태에서 날씨 변화로 인해 지반이 악화돼 사고가 났을 가능성이 있다"며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대해 삼성건설은 "도로 공사와 붕괴사고는 관련이 없다"고 맞섰다.

 

이에 대해 사망자의 한 유족은 "비가 와서 사고가 난 것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그 적은 비에도 사고가 난 건 부실공사가 아니냐"며 책임 공방을 벌이고 있는 SK건설을 비판하고 나섰다.

 

정년퇴임 후 재취업 해 참변당한 희생자들... "허망한 죽음"

 

 15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동판교 택지개발지구 SK케미칼연구소 터파기 공사현장에서 붕괴사고가 발생, 소방관계자들이 매몰된 인부 구조작업에 나서고 있다.

15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동판교 택지개발지구 SK케미칼연구소 터파기 공사현장에서 붕괴사고가 발생, 소방관계자들이 매몰된 인부 구조작업에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신영근

15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동판교 택지개발지구 SK케미칼연구소 터파기 공사현장에서 붕괴사고가 발생, 소방관계자들이 매몰된 인부 구조작업에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신영근

 

3명의 사망자 중 유일하게 SK건설 소속인 고 유광상(58)씨 유족은 SK건설에 대해 아쉬운 감정을 드러냈다. 유족들은 "(고인이) SK건설에 청춘을 다 바쳤는데, 비정규직이라고 큰 관심을 안 보이는 것 아니냐"고 전했다.

 

고인은 33년 전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 서울로 올라와 공사판을 전전했다. 이후 30여 년을 SK건설의 현장에서만 보냈다. 이 회사 소속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5년을 근무하고, 현장 반장까지 올랐다. 2002년 정년퇴임 후 다시 계약직으로 재입사했다.

 

고인의 동서(처제의 남편)인 김아무개(59)씨는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이제 살만해졌는데, 애들 결혼자금 모으려고 일하러 나갔다가 돌아가셨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고인에겐 33세의 딸과 30세의 아들이 있다.

 

고 유광상씨의 형은 "(고인이) 막내아들이었다, 어렸을 때 어머님이 많이 귀여워했다"며 "시골에 96세의 어머님이 살아계신데, 충격을 받을까봐 죽었다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했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어 그는 "솔직히 난 보수적인 사람으로 '용산 참사'에서도 보상 문제가 나오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면서 "이제는 이해한다, 너무나도 억울한 죽음이다, SK건설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 노동규(66)씨 역시 정년퇴임 후 공사현장 경비원으로 재취업해 일을 하다가 사고를 당했다. 그의 한 유족은 "현장에서 어린 사람들한테 '이XX', '저XX' 소리들으며 일했는데 너무 억울하다"며 안타까워했다.

#판교 붕괴사고 #판교 건설현장 붕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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