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언론사들이 앞 다투어 보도한 ‘아이 도저(I-Doser)'는 신종마약이라는 타이틀로 여론을 들끓게 만들었다. 마치 사이버 세상에 적신호가 켜진 것처럼. 문제는 이러한 보도들 이후 아이 도저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면서 단순한 가십으로 전락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사실 아이도저를 두고 마약이니 뭐니 하는 논란은 무의미하다. 이미 해외에서도 마약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아이도저는 단순한 음원을 다운받아 듣는 소프트웨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이버 마약이란 타이틀은 노이즈 마케팅의 성격까지 가지고 있다. 상용화되어 판매되는 아이 도저가 국내에 정식 시판될 경우 식약청이나 경찰청 마약 수사과는 별 대책이 없다. 아니. 아예 관련이 없다.
흔히들 알고 있는 마약이 인체에 작용하는 원리를 생각해 보자. 인간의 뇌에는 마약과 동일한 작용을 하는 물질이 존재한다. 때문에 마약의 분자구조가 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 도저는? 물질이 아닌 소프트웨어다. 여기에 대해서 반응을 할 수 있는 기관은 현실적으로 사이버 수사대 정도가 있다.
사실 아이 도저는 이미 작년에도 언론에 보도가 된 적이 있다. 항상 국내외 소식에 귀를 기울이는 경찰들이 몰랐겠나. 그러나 음란물도 아니고 반사회성 메시지를 전파하는 텍스트도 아닌 단순한 소리. 이것을 어떻게 무슨 근거로 규제하고 단속할 것인가. 관련 법규 자체가 없다. 다만 유일한 단속 기준은 저작권법이다. 그런데 이것은 정식 상용화를 보호하는 법규다. 따라서 현재 네티즌들이 호기심에 공유하는 파일들은 삭제되거나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정식으로 구매를 해야만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결국 논란 속에서 ‘어둠의 경로’를 통해 아이 도저를 체험한 네티즌들의 후기는 자발적인 상품 홍보를 대신한 셈이다. 그런데 아이 도저가 정말 문제라고 볼 수 있을까?
크게 두 가지 문제점
우선 정말로 효과가 있는지가 궁금한데 제작사측은 그렇다고 장담하고 있다. 본인들 스스로가 수많은 연구와 임상실험을 거쳐 시장에 내놨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외 사용후기들 상당수는 효과를 봤다고 말하고 있다. 유튜브 등지에는 체험 동영상들이 가득하고. 그러나 한편에서는 자기 최면효과, 즉 플라시보 효과가 아니냐는 이의도 제기한다. 본인들은 별 느낌이 없다는 후기들이 그렇다.
특히나 아이 도저를 사용해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필요조건이 충족 되어야 하는데 불을 끄고 침대에 편안히 누워 헤드폰으로 들어야만 성공 효과가 높다는 것이다. 그런데 파일 하나의 시간은 무려 30분에 달한다. 때문에 네티즌들 사이에선 일종의 명상이나 자기 암시일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마약이 아니라 과대광고 혹은 사기죄에 해당될 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이것은 제품의 ‘특성상’ 이라는 이유로 빠져나갈 구멍이 마련되어 있다. 제작사측은 실제로 사용자에 따라 개인차가 있음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마약과 관련되어 있다. 우리는 왜 마약을 반대할까? 아니, 정확히 말해서 왜 안좋다고 여길까? 이 점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마약의 원료는 식물에서 채취되는 유기 화합물이다. 알칼로이드의 일종으로서 커피에 들어있는 카페인이나 담배의 니코틴 또한 여기에 속한다.
그런데 19세기 중반에 양귀비와 코카 잎에서 마약 성분들(아편, 몰핀, 코카인)을 추출하면서부터 그 역사가 시작된다. 이후에는 다양한 원료들이 혼합되면서 수많은 마약 종류들이 생겨나게 됐고. 마치 기호식품처럼 새로운 신제품들이 계속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의약품에도 마약 성분은 있다. 영국의 락 그룹 <플라시보>가 노래한 ‘스페셜 K’ 같은 마약이 바로 동물용 약품과 혼합된 종류다.
락 음악이 언급됐으니 말인데 <비틀즈>의 노래 가운데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또한 약자로 하면 L.S.D.(Lysergic Acid Diethylamide)가 된다. 실제로 맴버인 폴 매카트니는 “마약이 비틀즈의 음악에 일부분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라고 밝힌 바 있고.
사실 마약문화 속에서 자라온 세대들이 락을 하게 되면서 음악적인 연관 또한 생겨났다고 보는 것이 옳다. <비틀즈> 뿐만 아니라 당시 히피들이 주구장창 달고 다니던 것이 뭔가. 영화 ‘이지 라이더’에서 우정을 나누고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던 담배 비슷한 물질은?
특히나 L.S.D는 락 음악의 굵직한 장르까지 탄생시키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사이키델락’이다. 음악을 들어보면 굉장히 몽환적이고 환각적인데 당연히 그럴 수밖에. 실제로 수많은 그룹들이 마약을 복용하고 영감을 얻어 음악을 만들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마약은 창조적 영감의 원천이자 의식 세계를 확대하는 도구이기도 했던 것이다. 오죽하면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였던 티모시 리어리는 LSD를 '정신의 비타민'이라고 했을까.
그렇다면 이러한 마약이 어째서 지탄받게 된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부작용. 삶이 피폐해지는 후유증. 미국 등지에서 한창 마약이 대중적으로 퍼졌던 당시, 즉 히피문화가 창궐하던 당시 세상의 문화는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억압과 보수성에 기반 하는 암울함의 총합이었다. 여기에 대한 반발 심리와 현실 도피를 통해 즐거움을 찾고자하던 청년들이 하나 둘씩 쓰러져 간 것이다. 특히나 80년대 보수적인 레이건 정권이 들어서면서 마약은 힘을 잃었다. 아니, 그런 것처럼 보였을 뿐 실상은 더욱 퍼져가고 있었다.
앞서 마약이 대중에게 인기를 끌었던 이유가 사회적인 반발심과 더불어 현실도피였음을 지적했다. 이것은 사회가 그만큼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는 행위에도 마찬가지의 이유가 존재 한다. 레이건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실현하기 전 뉴욕의 경우 빈곤과 실업의 심화로 유령도시나 다름없는 상황까지 간적이 있다. 이것을 극복하고자 레이건 행정부가 만들어낸 카피가 'I love NY' 이다. 티셔츠 따위에 흔히 적혀있는 바로 그 문구가 이때 생겨났다. 문화와 관광의 도시로 이미지를 바꾸겠다는 거였는데 근본적인 원인인 경제적 불평등은 전혀 해소되지 못했으며 사람들은 이미지에 취해갔다. 그리고 클럽 등지에서 마약은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된다.
오늘날에 이르자 미국의 학생들은 담배보다 마약을 더 많이 접하고 있다. 이것은 교육 현장에서 통계로 증명된 것이다. 911 테러 당시를 떠올려 보라. 한국에서 된장, 고추장을 가져갈 때도 이게 무슨 화학 무기가 아닌가하는 오해를 받아 공항에서 곤란을 겪었다는 사연이 상당히 많다. 그 정도로 철저한 나라에서 마약은 어떻게 소비될 수 있을까. 마약이란 미국 현지에서 생산되는 것이 아니다. 컬럼비아 등지에서 재배되고 정제되어 수입되는 것이다. 그런데 국가 방위를 위해 온갖 것들을 다 검사하는 와중에도 왜 유독 마약만은 걸러지지 않았을까?
마약과 관련된 검은 고리가 존재한다는 방증이다. 윤락도 마찬가지고. 그만큼 일상에 널리 퍼져있는 것이 마약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약의 기능을 가지되 중독성이 없다고 광고하는 아이 도저라는 제품이 등장한 것이다. 더군다나 아이 도저의 기능은 마약효과 뿐만 아니라 통증 치료, 명상, 집중력과 창조적 영감의 강화, 성적인 쾌감과 본능의 탐구 등 다양하다. 어쩌면 쌍수 들고 환영할 일인지도 모른다. 과연 그럴까?
아이도저에 담긴 문화코드
지금 아이 도저의 사용자들을 보면 주로 젊은 층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보에 빠르고 쉽게 찾아내 공유하는 IT 세대들이 주류다. 실제로 국내에 개설된 어느 아이 도저 관련 사이트의 게시판에는 주로 십대들이 쓰는 단어가 가득하다. 그 아이들은 아무리 검색을 차단하고 금지어를 만들어도 이것을 깨는 방법을 금방 발견한다. 나이든 세대와의 문화적 환경이 다른데서 오는 차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젊은 층들이 왜 ‘사이버 마약’으로 불리는 이런 소프트웨어에 열광할까? 지금 사회를 만들고 유지하는, 아니 그들이 가르치고 강요하는 기성세대들의 문화가 얼마나 낡아있고 보수적 억압으로 가득한지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아이 도저의 경우 30분의 시간을 10분으로 줄인 강력한 퀵 버전이 따로 출시됐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정신적인 탐구와 명상을 중심에 둔 것이 아니라 빠르게 소비될 수 있는 감각적 체험을 팔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이 도저의 카테고리 안에는 죽음의 순간을 경험하게 만드는 파일까지 존재한다. 돈만 낸다면 이제 죽는 것도 체험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경험이 과연 실제와 같다고 할 수 있을까? 마약은 모르겠지만 죽음까지도? 이 점에서 우리는 앞으로 사회를 형성해 나갈 세대들이 열광하는 새로운 문화가 얼마나 단순하고 피상적인지 알 수 있다. 제품에는 문화와 함께 사용자들의 의식 수준이 동시에 반영되는 것이다. 기호식품에 취향이 묻어나는 것처럼.
또한 이러한 현상은 이미 오래 전부터 경고 되어온 ‘문화의 위기’이기도 하다. 예전에도 다른 주제의 글들에서 ‘문화의 위기’를 몇 번 언급한 적이 있다. 이 글도 사실 그러한 문제의식에 기반 하는 내용 중 하나다(탐구할 수 있는 범위가 넓고 분량도 길어서 나누어 쓰고 있다). 인간의 사회는 문화를 만들어내고 또 그것에 영향을 받는다. 때문에 아이 도저의 출현은 특정 세대나 부류의 문제만이 아닌 사회적 문제이며 이것은 전체 구성원이 처한 위기를 반영한다.
왜? 생각해 보자. 사회란 사람들이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존재할 수 있는데 구성원들의 의식과 인식 수준은 피상적, 즉흥적, 파편화 되어간다면? 타인에 대한 배려도, 존중도 위협받고 있다고 봐야한다. 존중과 배려란 타인을 이해할 때만 진심이 묻어나오며 유지 가능한 것인데, 피상적인 인식과정을 거쳐 누군가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자기만의 독선적인 사고회로를 거쳐 결국엔 본질과는 다르게 오해할 뿐이다. 타인에 대해 손쉽고 빠르게 단정하며 편리하게 대상화 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관계가 아니라 단절에 가깝다. 웃기게도 지금 대통령과 관련해서 말해지고 있는 ‘오해’라는 단어지만, 정작 그 말을 하는 사람들도 이러한 사실을 깨달지 못한다면 문제는 그만큼 심각하다 할 수 있다.
아이 도저 열풍. 마약 논란 때문에 심각한 것이 아니다. 새로 나온 신제품 하나에 문화적 위기가 반영되어 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