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우포에 봄이 오면, 늪 주변에서는 매섭고도 지루한 추위를 이겨낸 왕버들이 파릇한 생명의 움을 틔우고, 겨울 철새들이 떠난 자리에는 어느 샌가 물닭과 쇠물닭 등의 텃새들이 분주하게 늪을 휘휘 돌고 있다. 두어 달 동안 철새손님들에게 자리를 양보했던 터줏대감들이 봄기운을 맞은 것이다. 머지않아 늪 속에서는 개구리 알이 부화를 시작하고, 좀개구리밥과 개구리밥의 겨울눈도 물위로 올라 초록융단을 깔기 위해 기지개를 켠다.
사실 겨울철새가 떠난 우포의 봄은 조금 나른하기까지 하다. 여름철새가 오려면 아직 멀었고, 수풀이 푸르게 우거지기에도 조금은 이른 시기. 왜가리가 가끔 '왝왝' 시끄러운 울음을 울 뿐, 마른 갈대숲 주변은 여전히 황량한 느낌이다.
우포늪의 봄 : 파릇한 생명이 움트는 시기
우포늪의 사계 중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것은 무엇일까. 자운영이다. 봄이면 우포늪은 곳곳에 자운영 꽃이 핀다. 가장 아름다운 군락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우포늪 입구 토평천 일대다. 자운영은 4월에서 5월 중순에 꽃을 피워 그 무렵엔 보라색 자운영이 만발해 낭만적인 호수 분위기를 연출해 낸다. 또한 이 즈음 사지포에서는 버들 군락을 볼 수 있다. 사지포는 물이 깊지 않아 도요새 같이 작은 여름철새를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날씨가 점점 더워지면 우포늪은 그동안 자취를 감추었던 수생식물들이 맘껏 자태를 뽐내기 시작한다. 우포늪의 여름이다. 늪 전체를 뒤덮는 마름, 자라풀, 생이가래, 개구리밥으로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초록 융단을 깔아놓은 것 같다. 여름의 우포늪은 물 속 곤충들과 어류들, 그리고 물풀들이 번성해서 '어머니의 품 속' 같은 정감을 안겨준다.
여름철 목포와 사지포에서는 가시연이 군락을 이룬다. 가시연꽃은 마치 물에 가죽 껍질이 붙은 것처럼 늪 전체를 뒤덮는 모습은 신기에 가까워 찾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잦아내게 한다. 이때 우포늪에 있는 새들 중에서 가장 쿤 왜가리, 백로가 유유히 늪 한가운데를 날아다니며 늪의 고요를 깨뜨린다. 쪽지벌 또한 한층 늪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가장 규모가 작지만 늪으로서의 역할이 가장 뛰어나고, 작은 만큼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곳이라 새들이 쉬기에 적합한 공간이다
왕버들이 우거진 물가에는 일찍 잠에서 깬 흰뺨검둥오리와 청둥오리들이 생이가래와 마름, 개구리밥 등 물풀을 헤치며 부지런히 먹이를 잡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우아하게 날갯짓을 하는 왜가리의 모습도 보인다. 제방 밑으로 좀처럼 만나기 힘든 습지의 풍경이 펼쳐진다. 물속에 뿌리를 내린 키 작은 나무들, 물 위에 떠 있는 둥근 노랑어리연꽃 잎, 평화로운 새들의 휴식이 그곳에 있다.
우포늪의 여름 : 수생식물들이 맘껏 자태를 뽐내는 시기
늪 주변의 땅은 물기를 머금어 푹신하고 부드럽다. 몸을 낮추어 살펴보면 작은 생물들의 세계가 펼쳐진다. 자운영 꽃들 사이에서 사랑을 나누는 빨간 무당벌레들, 가느다란 다리로 헤엄을 치는 소금쟁이, 수초에 붙어있는 논우렁이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늪 주변에 피어난 갈대와 물억새들의 꽃술이 이곳저곳으로 날리면 우포늪에도 가을이 시작된다. 온통 눈을 시리게 하였던 초록 융단도 끝나지 않을 것 같지만, 푸르렀던 들판이 황금물감을 뒤집어 쓸 때쯤이면 우포늪도 황금빛으로 변한다. 물에 잠긴 갈대는 철새들의 좋은 먹을거리가 된다. 때문에 긴긴 겨울을 우포늪에서 보내려는 겨울철새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가을이 무르익으면 겨울철새가 본격적으로 우포늪에 찾아든다. 덩치 큰 큰기러기가 거대한 날개로 우아하게 하늘을 나는 모습은 장관이다. 또한 늪 한 가운데 멋쟁이 신사처럼 휴식을 취하고 있는 고니 무리도 볼 수 있는 시기로 철새 탐방에 최적기다. 이즈음에는 늪 안쪽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작은 갯벌에는 자그마한 물떼새들이 모여들어 먹이를 찾느라 여기저기를 날아다니며 분주하다.
우포늪의 가울 : 겨울철새가 본격적으로 찾아드는 시기
우포늪의 겨울은 늪 전체가 물이 차올라 커다란 호수 같다. 하지만 물이 차 오른 우포늪도 최고 수심이 2미터를 넘지 않아 물 한가운데서 먹이를 찾는 백로의 다리가 수면위로 드러나 보인다. 겨울 우포늪을 생기 있게 만들어주는 철새들은 쇠기러기, 큰기러기, 고방오리, 흰비오리, 댕기물떼새, 그리고 세계적으로 희귀종이라 해서 보호를 받고 있는 가창오리 등이다. 특히 큰고니는 우포늪에서 겨울을 나는 진객이다. 그래서 겨울날 우포늪을 찾으면 새 봄과 새 날을 기다리는 희망의 속삭임을 한 줄기 억새에서, 청둥오리의 날갯짓에서 느끼게 된다.
본격적으로 겨울이 깊어지면 시베리아 등 북극 지방에서 황새와 노랑부리저어새, 고니 등이 날아들며, 가창오리의 화려한 군무가 펼쳐진다. 모든 것을 다 떠나보내는 계절에도 우포늪은 또 다른 생명을 품는다.
우포늪의 겨울 : 철새들의 화려한 군무가 펼쳐지는 시기
우포늪의 사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자연늪인 우포 늪지대는 수생식물뿐만 아니라 다양한 철새, 곤충, 물고기가 어우러진 습지 생태계의 보고다. 우포늪은 지금부터 약 1억4천만 년 전 한반도에 사람이 살기 훨씬 이전에 낙동강 하류 일대에는 지반이 내려앉으면서 곳곳에 자연 호수가 생겼다. 경남 창녕군 유어면, 이방면 일대에 걸쳐 있는 우포늪은 이 부근에 인간 활동이 시작된 이래 수천 년 동안 파괴되지 않고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자연 늪으로 한반도의 역사를 간직한 자연유산이기도 하다.
야트막한 언덕으로 둘러싸인 국내 최대의 자연 늪인 우포는 그 면적이 약 51만 평(수면 면적 약 7만 평)인 우포·목포·사지포․쪽지벌과 몇 개의 작은 소택지로 구성돼 있다. 최근 주남저수지가 생활 오수 등으로 오염 되면서 그곳에 살던 철새들마저 때 묻지 않은 우포늪으로 대거 이동하기 시작했다, 고 한다. 이곳 수질은 1급수와 2급수의 중간이다. 겨울철새를 제대로 구경하려면 창녕 우포늪이 최고다.
우포늪에는 총 345종류 38목 109과 288속 375종 1 아종 62변종 7품종(정우규 박사 1993-1997 조사)의 식물이 살고 있다. 이중 수생식물은 11목 22과 32속 47종 12변종 59종류이고 습생식물은 51종류, 습지식물은 110종류가 서식해 면적당 종의 다양성이 매우 높다. 이와 함께 우포늪은 곤충들과 물고기, 새들의 낙원이기도 하다.
겨울철새 탐조의 최적지 창녕 우포늪
우포늪의 바닥은 부식층이 깊고 수초가 무성해 수서곤충류의 먹이가 풍부해 밀도가 높고 종류가 많다. 7목 28과 55속 55종이 관찰되고 있다. 물고기는 각시붕어 등 28여종이 살고 있으나 80년대 이전 낙동강과 우포늪이 주변의 실개천과 하천 등으로 연결돼 있을 무렵에는 이 보다 훨씬 많은 어류가 살았으나, 개발과 하천제방 등이 축조되면서부터 하천의 물고기가 더 이상 우포늪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특히 외래어종인 배스 등이 나타나면서부터 고유어종이 위기를 맞고 있는 실정이다.
여름과 겨울 철새들의 안식처인 우포늪에는 천연기념물 201호인 큰고니를 비롯 1만여 마리의 철새들이 즐겨 찾는다. 텃새인 논병아리와 오목눈이 등 20여종의 조류가 둥지를 틀고 있다. 여름철새는 파랑새와 뻐꾸기 쇠물닭 등 17종이, 겨울철새는 개구리매와 흑부리오리 등 25종이 매년 우포늪을 찾아 장관을 이룬다.
늪은 호수처럼 맑은 물빛을 뽐내며 반짝이지 않는다. 탁한 녹황빛 물을 품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물은, 생명을 불러들인다. 우포, 사지포, 목포, 쪽지벌, 총 4개의 늪으로 이루어진 우포늪의 전체 면적은 70만평. 이곳에 1천여 종이 넘는 동·식물이 살고 있다. 우포늪을 거대한 자연사 박물관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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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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