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 책 읽을 권리를 위한 제언

등록 2009.03.01 09:31수정 2009.03.01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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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초였습니다. 학년 초면 학교에서는 보내는 통신문이 많습니다. 통신문은 대부분은 학부모 도우미를 모집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녹색어머니, 급식모니터 따위입니다. 그런데 지난해 학년 초는 학교 도서관 도우미를 모집하는 통신문이 있었습니다.

 

도서관을 새로 꾸미고, 책도 새로 구입했는데 재정 형편이 사서 선생님을 둘 형편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시간은 월-금요일 중 하루를 택하고 오전 3시간, 오후 3시간 중 좋은 시간을 택하면 되었습니다.

 

일주일에 3시간이라 시간도 적당했는지 아내가 선뜻하고 싶다는 말을 했습니다. 문제는 동생네 아이를 낮에 돌보기 때문에 3시간 동안 어쩔 수 없이 내가 돌 볼 수밖에 없어 선뜻 동의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랫만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니 어쩔 수 없이 동의했다.

 

도서관은 생각보다 깨끗했습니다. 공간도 교실 하나를 리모델링하여 공간도 넓었고, 햇볕이 잘 들어와 따뜻했습니다. 책은 약 1200권 정도되어 새로 만든 도서관 치고 적은 권수는 아니었습니다.

 

새로 만든 도서관인지 아이들도 책을 많이 빌렸습니다. 아내가 책 빌리는 아이들 모습을 보면서 조금은 놀랐습니다. 쉬는 시간만 책을 빌릴 수 있기 때문에 갑자기 몰려 힘들 정도였습니다.

 

어른들이 생각하기에 아이들은 만화책만 보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4-6학년들은 수준 높은 책들을 스스로 골라 읽고, 동무들끼리 같은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모습도 있었습니다. 우리 아이들 책 읽는 습관이 결코 나쁘지만 않았습니다.

 

옛날에는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요즘은 신간은 많이 들어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일주일 동안 13명 도서 도우미 어머니들 모두가 전문 사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아이들이 책을 깨끗하게 본다는 것은 기대하기 힘듭니다. 일반 도서관보다 책이 빨리 파본됩니다.

 

파본된 책을 빨리 교체해야 하지만 도우미 어머니들은 아이들에게 책을 빌려주고, 돌려 받는 일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도서관을 담당하는 선생님이 계셨지만 그 분도 담임을 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수업이 끝나고 짧은 시간만 도서관을 돌아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들 책이라고 해도 모든 책이 다 좋은 내용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좋은 책을 선별하고, 선별한 책을 아이들에게 추천해주어야 하는데 도우미 어머니들 손길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책을 빌려주고, 돌려받는 시간이 빠듯하니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아내가 1년 동안 도서 도우미로 봉사하면서 내린 결론은 학부모 도우미가 아니라 사서 선생님 한 분을 두는 것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학부모 도우미는 일주일에 3시간입니다. 열심히 봉사는 하지만 아이들뿐만 아니라 도우미 자신에게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도서관을 어떻게 운영하고, 책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것입니다.

 

사서 선생님 한 명을 두는 데 재정이 얼마쯤 들어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라면 사서 선생님 한 분만 계셔도 도서관 관리를 충분하다고 봅니다. 엄청난 재정은 들지 않을 것입니다.

 

일제고사와 영어몰입교육, 일류대학 가는 일에는 엄청난 재정을 쏟아부어면서 진짜 교육인 책 읽는 곳에는 재정을 투입하지 않습니다. 인색합니다. 아이들에게 책 읽으라는 말만 하지 말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과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책 읽을 공간과 환경이 주어지만 그들 스스로 책을 읽었습니다.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읽고나서 자기 생각을 동무들과 토론했습니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아이들이 아니었습니다. 공부를 위한 책 읽기가 아니라 읽고 싶어 읽고, 동무들과 나누고 싶어 책을 읽는 아이들은 멋진 아이들이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는 의무가 아니라 책 읽을 권리를 준다면 아이들이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갈 것입니다. 요즘 일자리 운운하는데 삽질로 일자리 만들지 말고, 도서관 사서를 모든 초등학교에 두는 것만으로도 젊은이들 일자리 몇 천개(2008년 12월 현재 초등학교 수는 약 5700개)는 쉽게 만들어집니다.

 

아이들 미래를 걱정하십니까? 그럼 초등학교 도서관부터 제대로 된 도서관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2009.03.01 09:31ⓒ 2009 OhmyNews
#학교 도서관 #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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