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간 후배들에게 장학금 건넨 강헌씨 강헌씨는 원주 봉대초교 16회 졸업생이다. 그는 누가 있든 없든 늘 그렇게 계면쩍은 듯 엷은 미소를 흘린다. 그의 미소는 바라보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면서도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하는 묘한 구석이 있다.
배형범
원주시 단계초등학교 옆 골목에서 구멍가게를 하는 강헌(55)씨. 그는 지금까지 차를 산 적이 없다. 휴대전화도 없다. 20여년전 그때 그는 자전거 우유배달원이었다. 보릿고개 넘기기가 죽기보다 고통스러웠던 지난 60년대 그는 6.25사변통에 월남한 부모님 밑에서 2남3녀의 남매들과 함께 굶기를 밥 먹듯하면서 이 학교를 다녔다.
아버지가 집을 나간 뒤 강씨 가족은 길거리로 내몰렸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누구보다도 더 든든한 이웃이 있었다. 살 터를 내놓고 허름하지만 살 집을 지어주고 끼니를 때울 쌀과 찬거리를 갖다줬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사해서 눈물이 났어요. 어른이 되면 꼭 갚겠다고 생각했구요. 그냥 그때 생각하면서 은혜를 갚고 있을 뿐인데 ..."
66년 이 학교를 졸업하고 원주중학교에 입학했지만 가난한 집안 사정은 나아지지 않자 강씨는 결국 1학년을 마친 뒤 학교를 그만두고 서울로 가게 된다. 15세의 어린 나이에 닥치는 대로 일을 하던 그는 쌀가게 점원으로 취직해 악착같이 일해 돈을 모았다.
그로부터 군대를 갈 때까지 8년 동안 강씨는 종잣돈 60만원을 들고 고향인 원주로 내려와 자신이 다니던 봉대학교 근처에 자그마한 산을 하나 사고, 지금 사는 단계동 골목에 집을 장만해 석유가게를 냈다.
그러나 주유소가 많이 생겨나면서 생각만큼 장사가 잘 안 되자 석유가게를 접고 우유대리점 배달원으로 취직을 해 새벽에는 배달하고 낮에는 판매활동하며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이렇게 살다간 돈 벌어 은혜갚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 그는 무작정 공책 200권을 사가지고 학교로 갔고, 그 날을 시작으로 매년 10만원 20만원 70만원씩 장학금을 늘려가던 그는 지난해에는 120만원을 내놓았다. 학교측에서 감사하다며 졸업식에 초청해 참석한 적도 있지만 생색내는 것 같기도 하고 쑥스러워 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