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함께 병원문을 나서는 여성가장 김미선(가명)씨의 뒷모습.
윤평호
지난 4일 오후 천안시 도심의 한 아동상담센터. 막내인 호영(가명·11)군이 상담치료를 받는 동안 어머니 김미선(가명·36·천안시 목천읍)씨는 30분째 보호자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매주 수요일마다 아들과 함께 상담센터를 방문하는 미선씨는 다섯 가족의 생계를 실질적으로 책임지는 여성가장.
남편이 없는 것은 아니다. 김씨의 남편(39)은 냉동식품 납품, 자동차 경보기 영업 등 몇 년간 업종을 바꾸며 소규모 자영업을 계속했다. 그러나 사업은 매번 실패했다. 작년 봄부터는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건축용역일에 나섰다. 술이라면 입에 대지도 않던 남편이었지만 고된 건축일에 종사하며 동료들과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건축경기가 어려워지자 간헐적으로 이어지던 건축용역일은 뚝 끊겼다. 업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에게 뇌수종이 발병했다. 병으로 남편의 바깥 생활이 어려워지며 가족의 생계는 빈혈을 앓고 있는 미선씨 몫이 됐다.
"결혼 전 근무한 직장경력을 인정해 주는 것도 아니고, 여성이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있나요? 우연히 노동부에서 개설한 전산세무회계과정을 알게 되어 이수한 뒤 취업을 준비했죠. 성사까지는 1년이 걸렸습니다." 김미선씨는 현재 직장일에만 전력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김씨의 자녀 셋은 지난해 완치가 어려운 희귀병인 소아 류마티스 판정을 받았다.
여성가장, 자녀 교육문제 가장 큰 걱정 둘째딸 미진(가명·13)양은 5년전 소아 류마티스가 발병했다. 무릎과 발목이 아프다고 호소하는 딸을 데리고 찾아간 종합병원에서 소아 류마티스라는 걸 알게 됐다. 한동안 다리를 구부린 상태에서 통증 때문에 제대로 펴거나 걷지도 못하던 미진양은 항생제 치료를 받고 상태가 호전됐다.
다행이라 안심했지만 작년 봄 재발했다. 재발 뒤 한달여동안 치료를 받고 퇴원을 앞두고 있을 무렵 미진양의 언니인 유진(가명·14)이와 막내인 호영이에게서 소아 류마티스가 발병했다. 지난해 4월 자녀 셋 모두가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미선씨네 가족은 아이들의 희귀병 판정 뒤 의료보호 1종에 책정됐다. 병원비나 약값 부담은 덜었지만 문제는 생활비.
천안시 성남면에 소재한 소규모 도자기 제조공장에서 경리업무를 맡고 있는 미선씨의 한달 월급은 100만원 남짓. 회사 사정이 힘들어지며 월급은 6개월째 정상적으로 지급되지 않고 있다. 정부의 생계보조금으로 월 18만원이 지원되지만 방 2개 16평 임대아파트에서 거주하는 다섯 가족의 생활비로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 그러나 김씨의 걱정은 아이들에게 더 쏠려 있다.
"먹고 사는 것이야 이웃분들도 도와주시고 어떻게든 살겠죠. 아이들 교육이 가장 큰 걱정이에요. 학원 하나 보낼 수 없고, 병 때문에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며 왕따라도 되지 않을까 늘 근심이죠." 실제로 호영이는 얼마 전부터 틱 증세가 심해졌다. 미선씨는 일주일에 한 번 회사에 조퇴를 하고 아들과 함께 상담기관을 방문한다. 호영이와 동행해 병원문을 나서는 미선씨. 여성가장의 뒤로 어둠이 깊었다.
작년 12월말 기준해 이혼이나 배우자의 근로능력 상실 등으로 여성이 생계를 책임지는 천안지역 저소득 모자가정은 1058세대. 2007년 969세대 보다 증가했다.
#장면2. 여든살 할머니가 토로하는 여성가장의 고달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