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학업성취도 평가를 전수평가로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주장의 근거가 되는 기초적인 사실 관계가 허위라면 그 주장은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 더구나 그 주장의 타당성을 주장하기 위하여 고의적으로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제시하는 것은 타당성도 없을 뿐 아니라 그 주장을 하는 사람의 인격이나 목적까지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청와대의 "학업성취도 평가를 해야 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라는 홍보 책자가 바로 이짝이다. 학업성취도 평가의 필요성을 주장하기 위하여 소위 선진국이라는 외국의 학업성취도 평가 사례를 표로 작성하여 친절하게 설명까지 덧붙여서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 표에 예로 제시되어 있는 나라들에 대한 설명이 대부분 거짓이거나 확대 해석이다.
먼저, 미국의 국가단위(nationwide) 학업성취도 평가의 이름은 NCLB가 아니라 NAEP이다. NCLB는 미국 학업성취도 평가인 NAEP(National Assessment of Educational Progress)의 근거가 되는 소위 아동낙제방지법(No Child Left Behind)이라는 법률 이름의 약자이다.
청와대 자료는 미국이 국가단위 학업성취도 평가를 3~8학년의 모든 학교 모든 학생들이, 같은 문제로 매년 전수 평가로 그 결과를 학교별로, 학부모에게 개별 통지하는 것처럼 설명하고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국가단위 학업성취도 평가(이하 NAEP)의 법률적 근거인 아동낙제방지법인 NCLB의 조항들을 찾아보면 청와대의 거짓말을 쉽게 알 수 있다.
NCLB법 제441조(sec. 441)가 국가단위 학업성취도 평가인 NAEP에 관한 것을 규정하고 있는데 (2)의 (A)항에 명백하게 무작위 샘플링을 통하여 선택된 학생들만 시험을 본다는 것을 규정하고 있다.
NCLB법 (3)Personally identifiable infomation(개인 인식가능 정보) 조항에 의하여 미국 NAEP 평가에 의한 학생 성적과 학교별 성적은 비공개 자료(confidential)이다. 바로 다음 조항인 Prohibition(금지)에서는 이를 누출하는 것은 벌금 또는 감옥형까지 처할 수 있는 벌칙까지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d)Participation(참가)에서는 미국 NAEP는 학생과 학교, 지역교육청 모두에게 시험 응시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자발적(voluntary) 시험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특히, NAEP에 표집으로 선택된 학생의 부모에게 어떤 이유로든 시험을 면제(exempted)받을 수 있다는 것을 반드시 알려야 하며, 시험을 끝까지 치지 않아도 된다는 점과 시험 문제에 모두 답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알려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우리 식으로 하면 일부만 답을 하거나 백지답안을 내도 된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4)Prohibited Activities(금지된 활동) 조항은 개별 학생과 교사를 순위를 매거기나 비교하거나 평가하는 것을 금지하며, 나아가 시험 결과에 대해서 개별 학생이나 교사, 학교, 지역교육청을 보상하거나 제재하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교육과정평가원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NCES(National Center for Educational Statistic) 홈페이지에도 학부모 질의 응답을 통하여 NAEP는 표집이며, 시험응시여부를 선택할 수 있으며, 학교별 학생별 성적 공개는 하지 않는다는 내용 등을 자세히 밝히고 있다.
부시가 추진한 NCLB에 근거한 경쟁적인 NAEP 정책에 대해서, 오바마 신임 대통령은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대대적인 개혁을 약속했다. 그나마 청와대가 설명하는 부시의 일제고사 정책마저도 이제 과거의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인데 청와대는 말이 없다.
영국의 학업성취도 평가 사례도 철지난 옛날 이야기
청와대 홍보실은 자료를 통하여 영국에서도 NCA를 통하여 매년 초중등생을 대상으로 일제고사를 치고 있으며 그 결과를 정부와 학교 홈페이지에 올리고 있다는 것을 선전하고 있다. 영국의 자료 역시 일부는 사실이지만 일부는 사실이 아니며 시간적으로 따지면 거의 모두 사실이 아니다.
영국에도 대처 정부 이래 국가수준의 학업성취도 평가(NCA : National Curriculum Assessment)를 초중등 과정에서 해마다 실시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강영혜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원이 영국 교육부와 QCA(우리의 교육과정평가원) 등의 자료를 정리한 바에 따르면 2000년부터 웨일즈와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에서는 일제고사와 학교 순위표(League Table)을 폐지하고 잉글랜드에만 남아 있었다.
그나마 일제고사가 남아 있던 잉글랜드에서도 St. Paul과 Eton 등 명문사립학교와 교장들, 영국교원노조 등을 중심으로 일제고사와 학교순위표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비등해졌다. 여기에 잉글랜드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변화 추이가 미약하고, 심지어 이를 폐지한 웨일즈와 잉글랜드 사이의 학업성취도 결과와 차이가 없다는 보고서가 의회에 제출되면서 결국 영국 교육부는 올해부터 중학교 과정의 일제고사와 학교순위표를 폐지하기에 이른다. 이를 직접 교육부 장관이 언론에 나와서 국민에게 발표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게 된 잉글랜드 초등학교의 국가수준 일제고사에 대해서도 최근 권위 있는 케임브리지 대학 초등교육 보고서(CPR)에서 창의력과 사고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교육을 획일화시킨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존폐의 기로에 놓인 상황이다.
즉, 과거 영국에서 초중등 과정에서 학업성취도 평가를 전수 평가로 실시하고, 그 결과를 학교 순위표로 만들어 홈페이지 등에 공개한 적이 있지만 지금도 그렇다는 청와대의 선전은 거짓말이다. 지금 영국의 웨일즈,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모두에서는 모든 단위에서 강제적인 일제고사가 없어졌고, 잉글랜드에서도 고등학교와 중학교 수준에는 이미 일제고사와 학교별 순위표에 의한 성적공개가 없으며 초등학교 단계에만 남았는데 이마저도 비판적 여론이 많아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진실이다.
호주의 사례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알 수가 없음
청와대의 자료는 호주에서도 국가 수준에서 국가언어수리평가(LANNA)라는 이름으로 전수 평가 방식의 학업성취도 평가를 실시하고 있다고 하면서, 도달 미도달 여부만 파악하던 방식을 2008년부터는 다양한 성취수준을 공개하고 있다고 하는데 구체적인 내용이 전혀 없어 파악하기가 힘들다.
정말로 호주에서도 우리나라처럼 모든 학교에, 모든 학생이, 같은 날, 같은 문제를 가지고 시험을 치고 학생과 학교에 개별 성적을 통지하는 방식으로 학업성취도 평가를 실시하고 있는지, 공개하고 있다면 어떻게 다양하게 공개하고 있는지 반드시 출처와 근거를 밝혀야 할 것이다.
일본의 사례 역시 진실 호도이다
일본에서 2007년 전국 단위 일제고사가 전국학력학습상황조사평가라는 이름으로 43년 만에 부활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를 국가, 도, 지역별로 공개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피사(PISA) 등의 국제적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아 충격에 빠진 일본이 이의 원인을 유도리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초중등교육 과정에서 찾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최근 2년 동안 도입한 정책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공립학교 중에서도 시교육위원회 차원에서 교육철학이 맞지 않다는 이유로 집단적으로 시험을 치지 않으며, 사립학교의 50% 정도도 사립학교의 건학이념과 자율성 침해 등의 이유로 아예 시험 참가를 하지 않는다.
거의 모든 국공립학교가 이 시험에 참가하였으나 2007년에 이어 2008년에도 아이치현 이누야마 교육위원회는 '스스로 배우는 힘'을 강조하는 시의 교육 철학과 맞지 않다는 이유로 교육위원회 산하 모든 학교에서 일제고사에 불참하고 정규 수업을 실시하였다. 그리고 2007년에는 전국 사립학교의 40%도, 2008년에는 거의 절반에 가까운 47%가 일제고사에 불참하고 정규 수업을 진행하였지만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왜 청와대는 세계 최고 교육경쟁력 자랑하는 핀란드 사례는 소개하지 않나?
최근 2년마다 실시되는 OECD의 학생 학업성취도 평가인 피사(PISA)에서 세차례 연속으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는 핀란드이다. 이는 청와대뿐 아니라 교과부,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이면 거의 모두가 알고 있다. 그 비결이 평등과 협동을 강조하고, 교사와 학교의 자율성을 중시하는 정책 등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이런 핀란드에 우리나라와 같은 일제고사 방식의 학업성취도 평가가 없다는 것은 명확하다. 핀란드는 학업성취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을 뿐 아니라 학생들간의 성적 차이도 가장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 정부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학업성취도평가를 전수평가로 실시해야 하는 이유가 학업성취도가 낮은 학생들에 대한 지원이라면 성적도 가장 높고, 상하위권 학생들의 성취도 차이가 가장 작은 핀란드를 모델로 삼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초중등교육의 경우 우리나라보다 학업성취도도 낮고, 상위권 학생과 하위권 학생의 성취도 차이도 많이 나는 미국과 영국, 일본의 일제고사를 모델로 삼는다는 것은 앞뒤가 전도된 것이다. 그나마 사실도 아닌 것을 근거로 제시하며 내세운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청와대는 왜 세계 최고의 학업 성취도와 가장 낮은 학력 격차를 가진 핀란드의 모델은 예로 제시하지 않는가?
청와대가 주장하는 내용의 출처와 근거를 정확히 밝히는 것이 순서
청와대가 일제고사 강행의 이유를 설득하기 위하여 제시한 미국, 영국, 일본, 호주의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사례는 사실이 아닌 것이 대부분이다.
정부는 이 책의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이 책은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받는 저작물이므로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인용하려면 출처를 명기하여야 합니다."
사실도 아니고, 설득력도 없는 이 책의 내용을 누가 인용할 것 같지도 않으니 걱정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대신 청와대가 이런 자료를 만드는 데 인용한 출처와 근거부터 정확하게 밝히는 것이 순서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공유하기
미국이 전수평가? 청와대까지 나서서 일제고사 거짓선전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