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인지에 실린 김정조 시인의 시를 책 그대로 찍은 사진이다. 시의 내용엔 그녀의 일상이 고스란히 묻어나 있다.
송상호
그들은 마치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하듯 말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걸 들은 그녀 자신이 오히려 인생관이 달라졌다. 자신의 삶이 최고 고단한 줄로만 알았던 미용실 하기 전의 생각을 벗어 버리고 자신 보다 고단한 인생이 훨씬 많음을 깨닫게 된 것은 크나큰 인생의 힘이 되었다. 미용실에서의 14년은 좀 더 넓은 혜안으로 삶을 만나고 시를 만나게 했던 것이다.
그녀가 굳이 시를 자신의 업보라고 말하는 데는 더 질긴 사연이 있다. 바로 그녀의 아버지가 시인이 되는 게 꿈이었던 것. 하지만 가장으로서 삶의 치열한 전선에서 부대끼다보니 아버지의 꿈은 이상이었을 뿐. 못다 이룬 꿈을 자녀들에게 물려주려고 어렸을 적부터 자녀들에게 책을 읽히려 부지런히 책을 사다 나른 아버지 덕분에 책은 원 없이 읽었다는 그녀.
그런 어린 시절 탓에 초중고 시절은 모두 문예부에서 문학소녀로 꿈을 키웠다. 가정 형편 상 비록 시 쓰는 대학은 못 갔지만, 돌고 돌아 이제 육순 가까운 나이에 평생교육원에서 '시 쓰기'를 공부하고 있다. 사실 아버지의 바람은 헛되지 않아 여동생은 소설가, 언니는 희곡작가, 자신은 시인으로 살아가고 있기도 하다.
뿌리치려해도 뿌리 칠 수 없었던 '시의 유혹'은 오늘도 그녀가 4평 남짓 되는 미용실에서 '파마해주는 시인'으로 그렇게 살아가게 하고 있다. 미용사는 현실, 시인은 이상. 하지만 그 둘은 이제 그녀의 시에서 착하게 만나 하모니를 이루고 있다. 그녀는 겪을 만큼 겪었기에 이제는 알고 있다. 파마해주며 나오는 시가 진짜 자신만의 시임을, 그래서 '시는 나의 업보, 시는 내 삶의 경전'이라고 고백하고 있음을.
오늘도 그녀의 미용실에는 14년 째 단골인 '안성댁 할머니'가 파마를 하러 왔다.
겨울나무 김정조비추어 다오. 따사로운 해!공장 창밖으로 보이는 은행나무 한 그루.빛을 받아 은회색으로 빛나고 있다.비추어 다오. 따사로운 해!등 뒤로 비추어 다오.나의 노동은 그늘진 곳.기계소리에 묻혀젊은 피의 들끓음도 곧 잠잠해지리라.거기서 있었던가잎을 떨군 나무한줌의 햇살도 온몸으로 받으며누구 시련에 방황하는 자, 있는가혹독한 찬바람에 인고하는,나의 헐벗은 몸뚱이를 기억해주오."기도하며 수행 중이오니잠시 침묵 하시오" 덧붙이는 글 | 이 인터뷰는 지난 12일 안성시민회관 앞 예인 미용실(031-675-6535 )에서 이루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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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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