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랭이 봉에서 잡은 아직 어둠이 덜 걷힌 억불봉
이승철
꽁무니를 따르던 후미 길잡이는 갑작스레 병이 난 여성등산객 한 사람 때문에 더욱 뒤쳐진 상태였다. 결국 병이 난 여성은 동행 네 명과 함께 버스로 뒤돌아 내려가고 그들을 내려 보낸 후 헐레벌떡 뒤쫓아 온 후미 길잡이는 숨소리가 거칠었다.
어둠을 뚫고 오르는 산길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몇 번인가 길을 잘 못 들어 30여 분 이상 우왕좌왕 하는 동안, 산행 길잡이는 성질 급한 등산객으로부터 심한 지청구를 듣고서야 올바른 길을 찾았다. 길을 찾아 한참 올라가노라니 희부옇게 동쪽 하늘이 밝아온다.
"깊은 산길에서 새벽을 맞는 기분이 매우 상쾌하구먼."
일행들이 산길을 오르다가 멈춰 서서 심호흡을 한다. 어두운 밤길을 걷다가 날이 밝아오자 몸도 마음도 가뿐해지는 느낌이었다.
"삐리리~ 삣삣."
길가 나뭇가지에 앉아 지저귀는 산새 몇 마리가 새벽을 깨운다. 산자락을 타고 오르는 길이어서인지 바람도 불지 않고 포근하여 금방 이마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혔다. 날은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했다. 주변의 산세며 풍경들이 어슴푸레하게 드러난다.
산자락은 온통 잡목 숲이다. 소나무 잣나무 같은 푸른 침엽수는 극히 드물었다. 크고 작은 돌과 바윗덩이가 깔려있는 산길을 허위허위 한 시간 정도 오르자 노랭이 봉이다. 앞쪽으로 솟아 있는 우람한 봉우리는 억불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