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헤어지면서 보내는 이와 떠나는 사람이 서로 환하게 손을 흔드는 것은 참 아름다운 광경이다. 어제 그 주인공들이 우리가족이었다.
나와 딸, 군에서 외출 나온 아들과 함께 광주종합버스터미널에 갔다. 목포행 버스를 타고 M해양대학교로 출발하는 딸을 배웅하러 간 것이다. 딸은 2박3일의 꿀맛 같은 상륙(해양대학교에서는 집에 가는 것을 말함)을 마치고 다시 학교로 갔다. 지난달 25일 입교하여 힘든 적응훈련을 무사히 끝내고 학교생활에 적응을 하는 것 같았다.
딸은 입교하기 전에 어깨까지 찰랑거리는 머리를 귀가 보이는 단발머리로 자르고 나름대로 준비를 했었다. 그런데 그 정도 다짐 가지고는 많이 부족했다고 한다.
3월 2일 입학식 때 만난 딸은 5일 전의 딸이 아니었다. 제복에 모자를 쓰고 눈은 정면에서 아래쪽을 보았고 목소리는 쉰 채 긴장한 모습은 마치 아들 녀석이 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고 자대배치를 받을 때 모습과 흡사했다.
처음으로 5일간 떨어져 있어서 만나면 와락 껴 안아주고 싶었는데 분위기(?)가 아니었다. 승선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신입생에게 강한 적응 훈련이 필요하다고 한다. 적응하지 못한 학생은 빨리 자퇴를 하는 것이 본인과 학교, 국가를 위해서 필요하기 때문이란다.
입학식이 끝나고 방이 있는 식당을 찾았다. '오픈된 곳에서 식사를 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이 딸의 설명이다. 마치 딸과 같이 1학년 신입생이 된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치고 기숙사에서 사용할 물건들을 내려주고 광주로 오는데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
고교시절, 특히 고3에서 해방되어 맘껏 멋도 부리고 캠퍼스를 폼 내고 걸을, 새내기 꿈 많은 신입생일 텐데 아직 딸에게는 그런 여유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고3 때, 가슴속 깊이 파고드는 찬바람에 더욱 가슴 시렸을 딸, 그 어려움을 잘 견뎌냈는데 아직 힘들어 하는 것이 짠하고 안타까웠다.
그런데 입학 후 11일 만에 가게서 다시 만난 딸은 씩씩한 모습으로 아빠에게 첫 인사를 힘차게 거수경례를 했다. 나도 엉겁결에 거수경례를 했다. 그래도 손은 내가 먼저 내렸다. 엄마의 빈자리가 많이 커 보였을 딸. 그러나 더 열심히, 더 씩씩하게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딸이 자랑스럽고 가슴 뭉클한 행복을 줬다. 그리고 어제 우리는 헤어짐 뒤에 뿌듯함과 희망이 있어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가슴 떨리는 봄이 왔다. 봄 빛깔이 기지개를 펴며 이곳저곳 색칠하느라 바쁘다. 여리고 싱싱한 연두색 잎도 봄의 향연을 준비하느라 한창이다.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하는 봄. 자연은 자연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봄을 준비하고 있다.
신입사원, 신입생들 모두가 봄이다. 새로운 곳에서 힘차게 발을 내 딛는 딸에게 아빠가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2009.03.16 18:26 | ⓒ 2009 OhmyNews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저는 광주 첨단지구에서 첨단정보라인을 발행하는 발행인입니다.
첨단정보라인은 월간지(광주 라88)로 정보화 시대에 신속하고 알찬 보도논평, 여론 및 정보 등 주민생활의 편익을 제공하며 첨단지역 상가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만큼 생생한 소식을 전할 수는 없지만 이 지역의 관심 현안을 취재하고 대안을 제시해
주민들과 늘 함께 하려고 합니다.
공유하기
고3보다 힘든 대학생활, 참고 견뎌내는 딸이 자랑스럽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