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잘 못 쓰신 거 아니에요?"

여수시 현천노인복지센터의 점심식사

등록 2009.03.18 10:15수정 2009.03.18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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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용순 간호사가 할머니 손을 씻어드리고 있습니다.
전용순 간호사가 할머니 손을 씻어드리고 있습니다.임현철
전용순 간호사가 할머니 손을 씻어드리고 있습니다. ⓒ 임현철

 

"간호사님, 저도 손 씻어 줍니까?"

"사모님 계시는데, 왜 제게 그러세요."

 

"당신도 우리 간호사님 같이, 밥 다 먹으면 나 손도 좀 씻겨주소. 하하하~"

"나는 간호사님처럼 자격증이 없어 못 씻겨요. 자격증 따면 그때 씻어 줄게요."

 

한바탕 웃음이 작렬했습니다. 점심식사를 마친 할머니 손 씻겨주는 걸 보시던, 한 장로님 장난과 그 부부의 말 때문이었습니다.

 

"할머니, 이거 씻어서 다시 갖다 드릴게요."

"뭐라고?"

"씻어서 다시 갖다 드린다고요."

 

그랬습니다. 할머니는 치매로 인해 밥도 손으로 먹고, 밥상 치우려면 가만 놔두라며 트집 잡곤 했답니다. 그래서 손을 씻겼던 것입니다. 아침에 센터에 오면 씻고, 식사 전후에 씻겨 준다 합니다.

 

"할머니 드실 쌀도 안 들고 왔는데 밥 주실라요?"

 

지난 17일, 여수시 소라면 현천노인복지센터 할머니들의 점심식사 모습을 보기 위해 무작정 들렀습니다. 센터에 들어서니, 한 분이 거동 불편한 할머니 식사 수발을 하고 있었습니다. 건강하신 할머니들은 함께 모여 식사를 하고 계셨습니다. 지난주에 한번 봤다고 아는 척을 하시네요.

 

 할머니들의 점심식사.
할머니들의 점심식사.임현철
할머니들의 점심식사. ⓒ 임현철

 여수시 소라면 현천노인복지센터 할머니들의 점심식사.
여수시 소라면 현천노인복지센터 할머니들의 점심식사.임현철
여수시 소라면 현천노인복지센터 할머니들의 점심식사. ⓒ 임현철
 

"할머니, 밥 맛 좋으세요?"

"봄이라 풋 잎사귀가 다 맛있어. 초봄에는 어떤 것도 다 맛날 때야. 밥은 밥대로, 나물은 나물대로, 김치는 김치대로 맛나지."

 

상 위에는 밥, 두부 북어국, 도라지나물, 오징어 회무침, 돼지 주물럭, 상추쌈이 올랐습니다. 무턱대고 온 것치고 날을 잘 잡은 것 같습니다. 돼지고기에 상추쌈을 생각하니 군침이 꼴딱 넘어갑니다. 밥 얻어먹으려면 넉살이 좋아야 하지요.

 

"할머니, 저도 밥 좀 주실래요?"

"이리와, 여기 앉아. 아이, 여기 밥 한 그릇 줘."

"할머니 드실 쌀도 안 들고 왔는데 밥 주실라요? 그냥 많이 드세요."

 

현천중앙교회 김성기(36) 협동 목사님은 "센터는 시골 동네 사랑방이라 동네 어른들이 모인다"며 "날씨에 따라 들쑥날쑥 하지만 대체로 흐리거나 비오는 날은 밭에 나가 일을 못하니까 어르신 대부분이 오셔서 함께 점심을 먹는다"고 합니다. 30여 명이 드실 때도 있다 하네요.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가 죽을 받아 먹은 후, 음료수 먹고 있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가 죽을 받아 먹은 후, 음료수 먹고 있습니다.임현철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가 죽을 받아 먹은 후, 음료수 먹고 있습니다. ⓒ 임현철

 

뜨끔한 소리, "기사를 잘못 쓰신 거 아니에요?"

 

김성기 목사님은 노인복지센터 일에 대해 "할머니들을 잠시라도 섬길 수 있어 감사할 따름이다"며 "할머니들이 앉는 것 가지고 '내가 앞에 앉겠다, 내가 여기 앉겠다'고 사소한 말다툼을 벌이는 걸 보면 아이 같고 순수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치매 걸린 할머니께선 센터가 비좁아 증축하는 걸 보시고, '밖에 남정네들이 와서 집을 부수는데, 왜 이리 가만 앉아서 아무 소리도 않고 있냐'며 나무라기도 한다"고 하네요. 김 목사님은 이곳에서 알콩달콩 사는 재미를 톡톡히 보는 것 같습니다.

 

할머니들 먹을거리를 담당하는 나인순(45) 씨는 "어른들이 잘 드시게 즐거운 마음으로 어른들 입맛에 맞게 만든다"며 "최선을 다해 한다고 하지만 요리 때마다 좀 더 맛있게 만들고 싶은 욕심이 난다"면서 수줍어합니다.

 

회계를 담당하는 왕은하씨는 "저번에 쌀과 김치 지원을 좀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통 연락이 없어요. 기사를 잘 못 쓰신 거 아니에요?"라고 뜨끔한 소릴 합니다. 이럴 땐 숨겨둔 넉살까지 꺼내야 하죠.

 

"그러게요. 제가 실력이 없나 봐요. 그러나 걱정 마세요. 쌀과 김치 후원 들어올 때까지 끝까지 쓸 테니까요. 실력이 없으면 끈기라도 있어야죠."

 

식사를 마친 할머니들, 가벼운 산책 후 거실에 몸을 뉘여 낮잠을 청하고 있습니다.

 

'쌀'과 '김치' 지원이 필요하답니다!

 

 식사 후 휴식 중인 할머니.
식사 후 휴식 중인 할머니.임현철
식사 후 휴식 중인 할머니. ⓒ 임현철

덧붙이는 글 | 다음과 U포터에도 송고합니다.

2009.03.18 10:15ⓒ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다음과 U포터에도 송고합니다.
#노인복지센터 #점심식사 #쌀 #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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