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뮤지컬 <기발한 자살여행> 포스터
(주) 쇼팩, (주) 트라이프로
사업 실패로 모든 걸 잃은 남자는 목을 매려 하고, 휘하 부대도 임무도 없어져 버린 육군 장교는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쏘려고 한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하필 같은 시간, 같은 장소를 골랐다. 그러니 서로 모른 체하고 각자 죽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서로를 죽일 수도 없다.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급기야 자살하려는 사람들을 모아 함께 죽기로 하고, 세 규합에 나선다. 그러고는 모인 사람들 모두 버스 한 대에 올라타 '자살여행'을 떠난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사망하는 사람 671명 가운데 자살로 사망하는 사람은 33명, 즉 사망자 100명 중 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통계 숫자를 굳이 가져오지 않아도, 자살 소식이 끊이지 않고 들려온다.
최근 죽음 이후의 여러 뒷이야기들 때문에 죽음 자체가 오히려 묻혀버린 듯한 신인 탤런트의 자살에서부터 지난해 가을 우리 모두를 충격에 빠뜨린 최고 여배우의 자살까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만 꼽아도 세기 어려울 정도다.
죽고 싶어하는, 그래서 자살하려고 마음먹은 사람들의 사연은 그야말로 가지각색이다. 실연한 여자, 외로운 기러기 아빠, 정치적인 이유로 쫓기고 있는 공산당 간부, 가정폭력 피해 주부, 은퇴 여배우, 직업병에 걸렸지만 보상 받지 못한 계약직 노동자 등등.
이들은 소리친다. 결코 외로워서가 아니라고, 낭만으로 생각해서도 아니라고, 책임을 회피하는 게 아니라고. 다만, 내가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리고, 무엇이 소중한 것인지 가르쳐주고, 결코 무책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고.
뮤지컬은 원작의 무대인 핀란드를 통일 한국으로 가져왔고, 사람들의 사연 또한 통일 이후에 있음직한 우리식의 이야기로 완전히 바꾸었다. 핀란드와 주변 지역을 여행하는 것 역시 백두산을 거쳐 중국으로, 또 실크로드로 가는 여정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이들의 '자살여행'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한 마디로 모진 마음먹고 떠난 여행이지만 인생에 끼어드는 수많은 변수와 마찬가지로 이들의 여행 역시 파란만장이다. 그러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사람들, 혼자가 아니라 단체로 죽음의 길을 나섰다가 결국 사람 사이에서 온기를 느끼는 사람들. 거기다가 남녀 간의 사랑까지.
최근에 계속되는 자살 뉴스를 염두에 두고 발 빠르게 만들어낸 뮤지컬이 아닌가 의심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뮤지컬은 벌써 2006년도 말에 원작 소설을 뮤지컬로 만들기로 계약을 맺고 준비에 들어갔다고 한다. 음악이며, 무대며 공들인 흔적이 여기저기서 묻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