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4 한 장으로 '변호사'가 될 수 있다고?

불법과외 사법연수생, 준법서약서 쓰고 변호사 등록

등록 2009.03.21 17:08수정 2009.03.22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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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도 되지 않았던 문제를 한 번 짚고 넘어가보겠습니다. 지난해 사법연수원사상 첫 만점 수료자가 2명이나 나왔다며 언론에서 대서특필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사람은 불법 선행과외를 하려다가 수료가 보류됐고, 또 한 사람은 성적표를 위조했다가 적발됐습니다.

모두 세 명의 연수원생들이 불법과외 즉, 선행학습을 하거나 시도했다가 적발되면서 당시에는 다소 신선하다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동안 연수생들의 외부 강의는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적발된 경우도 있었지만 징계는 솜방망이 처벌에 불과했으며, 실제로 지난 31기의 한 판사도 연수원 시절의 강의 전력이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임용에 이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사법부가 불법 과외를 한 연수원생들의 수료를 보류함으로써 대다수 국민들은 "이제야말로 사법부가 자기 살을 깎는 자정의 노력을 하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더욱이 이들은 수료식에 참석도 못 했고, 한 사람은 대형 로펌에 취업이 예정 됐었지만 이마저도 어렵게 됨으로써 일벌백계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의 기대를 한 순간에 무너뜨리는 결과가 최근에 나타났습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서울지방변호사회는 18일 준법을 다짐하는 서약서를 제출하는 조건으로 불법 강의를 한 사법연수원 38기 수료생 A씨 등 3명이 신청한 변호사 등록을 허용했다고 밝혔습니다.   

팔이 안으로 굽은 솜방망이 처벌의 전형, 굽어버린 법의 잣대

사실 징계위원회는 이들의 평소 성적이 수석에 가까울 정도로 뛰어났기 때문에 법조인으로서 활동을 중단시키기가 아까웠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문제는 공무원 신분으로 영리를 할 수 없다는 현행법을 위반했을 뿐 아니라, 정작 본인들이 사법부에서 이 같은 법의 판결을 해야 할 입장이라는 데 그 심각성이 있습니다. 조금 비약하자면 도둑에게 다른 도둑을 처벌하라는 꼴입니다. 

사실상 과거 1980년 7월30일부터 전면 중단되었던 불법과외가 20년이 지난 2002년부터 전면 허용됐습니다. 2002년 12월 27일 과외교육금지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났고, 이로 인해 효력이 상실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시 재판부는 단서조항을 달면서 "결정의 근본취지가 과외를 금지하는 자체가 위헌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지나치게 고액인 과외나 대학교수나 교사의 과외교습 등 사회적 폐단이 우려되는 과외교습을 제한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입법조치를 취하도록 권고한다"고 했습니다.


즉 국·공립, 사립학교의 현직 교사와 교수, 공무원은 국가공무원법 및 사립학교법상의 영리행위·겸직 금지 규정에 따라 과외교육이 계속 금지된 것입니다. 이에 대한 처벌 또한 무거웠습니다. 학원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조항은 중·고생 대상 학원과외, 교습소의 기술·예능 과외, 검정고시 수험생 대상 과외, 대학·대학원 재학생의 과외를 제외한 모든 과외교육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1년이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했습니다.

이 법대로라면 이번 불법 과외를 했던 사법연수원생은 변호사는커녕 '제명'을 당해야 마땅한 상황입니다. 


A4 준법 서약서 한 장 쓰고 면죄, 국민들은 그 방법 왜 몰랐을까?

신영철 대법관의 언행 때문에 법조계가 시끄럽습니다. 물론 인간은 언제나 본능과 욕구의 유혹에 약하기 때문에 사회 공익을 위해 자기 욕심을 억제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상호간 지켜야 할 '약속'을 만들었고, 오늘날 '법'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을 통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같은 행동에 대해서 어떤 '열외조건'에 따라 법의 적용이 달라질 수 있다면 우리는 누구나 보다 덜 적용받는 바로 그 '열외조건'을 갖추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잘못된 행동, 그리고 남에게 피해를 입혔을 때 '열외조건'을 갖추지 못한 남들과는 '다른' 대우를 원합니다.

민주주의가 발달하고 법이 엄중하게 적용된다는 '선진국'들의 경우에는 그 '열외조건'의 폭이 매우 좁거나 '열외조건'을 '감시'하는 또 다른 '힘'이 작용하는 구조 때문에 '열외조건'에 대해서 선호도가 낮거나 아예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그 '열외조건'의 폭이 매우 넓습니다. 가장 강력한 '열외조건'은 바로 '권력'과 '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그 '권력'이 바로 '법'을 집행하는 사법부라면 말할 것도 없습니다. 사소한 법도 벗어날 방법이 없는 일반 국민들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혜택'을 누리는 그들을 보면서 박탈감과 허탈감으로 자신을 원망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에 불법을 저지르고도 대형 로펌에 취업하게 된 그 신출내기 변호사는 준법 서약서를 썼다고 합니다. 뭐 "앞으로는 법을 어기지 않겠습니다"는 내용이었다는데, 그런 간단한 방법이 있었는지 국민들은 몰랐습니다.

4만원짜리 주차스티커를 끊고, 쓰레기 무단 투입을 하고, 음주 운전을 해도 "앞으로는 하지 않겠습니다"는 서약서 한 장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주차스티커에 대해서 반대의견을 제출하려면 공무원 눈치 보며 상황 설명을 몇 장 적어야 하고, 그나마 취하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쓰레기 무단투입으로 적발돼서 100만원의 과태료를 맞으면 두 번 다시 취하도 안 됩니다. 음주운전은 더 말 할 것도 없겠지요.

그런데 사법연수원생이 법을 어겼을 때는 A4한 장짜리 준법 서약서만 쓰면 되는지 며느리도 몰랐고 국민들도 아무도 몰랐습니다. 이제부터 우리 자녀들에게도 '서약서' 쓰는 연습을 시켜야겠습니다.
#사법연수생 #사법연수 과외 #불법과외 #로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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