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새벽 5시를 기해 전면 총파업에 돌입한 YTN 조합원들이 아침 7시 1층 로비에서 파업 출정식을 열고 있다.
오마이뉴스 전관석
낙하산이 낙하산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정당한 절차를 밟아서는 결코 그 자리에 앉을 수 없는 깜냥의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자칭 사장 구본홍씨는 자기가 경영에 아무런 재주도 없고 돈을 아껴 쓸 생각도 없다는 걸 불과 지난 200여 일 동안에 증명해 보였습니다.
자기 수행 보디가드 고용비에 9600여 만원, 임직원 회의·식사 비용에 3300여 만 원, 비밀 집무실 비용에 3000여 만 원, 심지어 '구본홍 와이셔츠' 등 임원들의 물품 구입비용 1300여 만 원….
이뿐만 아니라 '비상 경영'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수천 만원에서 억대 연봉에 이르는 간부 자리를 10여 개나 늘렸고 그 임원 자리에 고등학교 동문을 낙하산으로 두 명이나 앉혔습니다.
자리 늘린 뒤 그 사람들 앉아있을 사무실 만드느라 공사비로 또 6000여 만원, 그것도 모자라 출신 대학 동문회보에 실을 광고비와 복지단체에 내는 성금까지 자기 돈을 안 쓰고 회삿돈을 지출했더군요.
다른 회사들이 벌써 두 번 세 번 장비 바꿀 때 저희 YTN은 창사 이래 쓰던 장비 꿋꿋하게 버티며 쓰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 오디오맨도 없어서 취재기자가 삼각대를 들고 뛰었고, 녹화 테이프도 너무 재활용을 많이 해서 화면에 비가 죽죽 내려도 또 재활용합니다. 편집 기계가 너무 오래되어서 버튼이 눌러지지 않아도 어려운 시절 생각하면서 참아왔습니다.
물론 일차적인 이유는 회사에서 장비 바꿔줄 생각을 안 했기 때문이기도 하죠. 그동안 회사가 어렵다고 하면 우리는 모두 그렇다고 생각하고 묵묵히 함께 고통 분담 열심히 해 왔었습니다.
호텔에서 밥 먹고, 회삿돈으로 와이셔츠 사면서 고통분담 하자?'고통 분담'을 요구하려면, 먼저 자신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모습을 보여주고 함께 동참해 달라고 설득해야 합니다. 밥은 반드시 호텔에서 먹어야만 하고, 기부를 해도 회삿돈으로 생색을 내며, 와이셔츠 한 장을 사 입어도 회삿돈이 곧 내 돈이고, 아무리 경제가 어려워도 자신에게 충성할 임원 자리는 늘리고 억대 연봉도 챙겨줘야 하는 이런 낙하산이 '경제가 어려우니 너희가 허리를 졸라매라'라고 말하면 여러분은 동의할 수 있겠습니까?
솔직히 말해 '임금 백 원이라도 안 올려주면 죽었다 깨어나도 일 못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우리 노조원 중에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자신들의 방만한 경영은 책임지지 않고 우리에게만 고통을 감내하라 요구하는 그들의 태도입니다.
사측에서는 '임원진이 자진해서 상여를 300% 삭감하는' 노력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보너스를 깎아도 새로 생긴 임원들에게 들어가는 연봉과 판공비 등을 합하면 아직도 한참 모자라는 데다 어이없는 저 지출내역까지 계산하면 여전히 마이너스 통장입니다. 임금 삭감이 아니라 동결한 기업들도, 임원들은 '상여'가 아니라 '임금'을 삭감하거나 반납하고 있습니다.
진정 회사측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모습을 보이고, 감히 '고통 분담'을 입에 올리기 전에 고통받고 있는 해고자· 정직자 문제를 풀어가겠다는 의지를 조금이라도 내비쳤다면, 이런 파국은 빚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아는 YTN 사람들은 그동안도 묵묵히 어려운 길을 걸어 왔고, 지금도 해고자· 정직자들에게 '희망 펀드'를 만들어 우리 월급을 나누며 피 흘리는 동료들을 부축하며 함께 걸어가고 있습니다. 대체 누가 누구에게 고통 분담을 요구한단 말입니까 ?
경찰 배후에 권력자 있다는 것, 스스로 증명여기까지였다면, 물론 우리 모두 저 낙하산이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우리의 싸움이 반드시 정부에 대한 싸움이어야만 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YTN 노조와 경영진 사이의 일로 끝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권력이 경찰을 앞세워서 직접 우리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습니다. 파업을 하루 앞두고 노조 집행부를 체포해가는 행위는 분명 파업을 방해하겠다는 의도를 보여주는 겁니다. 그동안 숱한 고소에 경찰서에 불려다니면서도 저희는 충실히 조사를 받았습니다.
조사를 피하기는커녕 조사 일정이 잡히면 노조원들이 함께 경찰서 앞까지 가서 출두하는 동료들을 격려하고 응원했습니다. 이번 주에 함께 조사 일정을 논의해서 잡았던 경찰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이번 체포가 말도 안 된다는 것을. 공권력 배후에 권력자가 있다는 걸 자기들 스스로 증명해 보이는군요.
저희 파업은 모 차관도 '합법'으로 인정해준 파업입니다. 모 차관은 며칠 전에 YTN 노조가 원하는 걸 말하지 못하고 '합법 파업' 한다며 '비굴하다'는 표현을 했더군요. 노조에 불법 파업을 할 것을 은근히 독려하시는 건지 모르겠으나, 이 정권의 비굴함이야말로 여기에 있습니다. 끝끝내 굴복 안 하는YTN 노조를 어떻게 손을 봐주기는 해야겠는데 불법 파업도 아니니 결국 얼토당토않은 잣대로 '출석 일정 조정한 적 없다'고 경찰에 거짓말까지 시켜가며 과거 업무방해 고소 건을 빙자해 고무줄 잣대로 체포까지 해간 겁니다.
여기서 합법과 불법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자는 YTN 노조가 아니라 공권력이며 그 뒤에 숨어있는 권력자의 입김입니다.
이제 우리는 생명줄과도 같은 마이크를, 카메라를 내려놓음으로써 무능한 낙하산과 그에 아첨하고 부역하는 무리들과 입을 틀어막으려는 권력의 횡포에 맞서 동료를 지키고 방송을 지키려 합니다. 우리가 투사가 되기를 원해서도 아니며, 우리가 깃발이 되기를 원해서도 아니며, 그저 우리의 동료를 사랑하고 상식을 사랑하고 방송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파업을 앞둔 새벽, 세상 모르고 잠든 내 아기의 얼굴을 봅니다. 또한 유치장에 갇혀 있는 남편을 생각하며 잠 못 이루고 있을 체포된 동료들의 부인들과 어린 자식들을 생각합니다. 그들의 가족들이 받을 고통을 생각합니다.
이번 우리의 파업은 사랑하는 동료들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분노의 표출입니다. 우리의 자식들, 미래 세대가 고양이를 고양이라고, 개를 개라고, 낙하산을 낙하산이라고 부를 수 있는 상식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한 작은 몸부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