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에 답하시는 법륜스님
권영숙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과 미움을 풀려면 '그 때의 아버지'를 이해해야 한다 명상 수련을 하다 보면 자기의 내면세계로 깊이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명상을 하다가 갑자기 울고 소리 지르면서 광분하기도 하고 갑자기 떨거나 무서워지거나 몸이 공중에 뜨거나 하는 여러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런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마음속에 쌓여 있던 것들이 분출되는 것에 불과하지요.
이 질문을 하신 분은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 미움이 아주 깊이 맺혀 있습니다. 일차적으로 이것을 풀려면 아버지가 나한테 와서 과거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빌거나 그렇지 않으면 내가 성질껏 아버지한테 분풀이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어느 정도는 도움은 되겠지만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도 아니고 가능하다 해도 무의식 속에 쌓인 것들이 말끔히 지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그 영상이 지워지려면 아버지에게 깊이 참회해야 합니다. '아버지가 나한테 참회해야지, 내가 왜 아버지한테 참회하나?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요.
그러나 잘 생각해 보세요. 아버지의 그런 행위가 나에게 깊이 상처를 주었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것은 나의 문제입니다. 아버지의 행위에 대해서 이 세상 수많은 사람 중에 하필 왜 내가 상처를 받았을까요? 지금 내 상처입니다. 그러므로 그건 나의 문제입니다.
아버지의 그 시절, 그 나이, 그 생활 형편으로 돌아가서 내가 아버지가 한번 되어 보세요. 사업은 안 되지, 빌려준 돈은 떼였지, 세상 온갖 것들이 다 자기 뜻대로 안 되어 화가 나는데 아내까지 그런 자기를 얕잡아보는 것 같단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버지는 아버지 나름대로 저항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밖에서는 말도 못 하면서 집에 와서는 아내를 때리거나 욕을 하고 고함을 지르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지요. 이런 아버지의 입장을 살펴볼 수 있으면 '아, 그 때 아버지가 참 힘들었겠구나.' 하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어린 마음에 내 생각에 빠져서 아버지의 답답한 그 아픔을 제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깊이 참회하면 이 영상이 사라집니다. 이것은 내 기억 속에 있는 것이거든요. 밖의 아버지가 아니라 내 속의 아버지가 이런 영상으로 남아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 나쁜 기억의 영상을 지우려면 내가 아버지에게 참회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고 그런 아버지의 아픔을 함께하고 그것마저도 사랑할 수 있게 되면, 내 속에 있는 이 영상이 점점 희미해지고 결국에는 지워집니다. 그렇게 해야 나의 정신도 건강해집니다. 그러니 우선 내가 스스로 깊이 참회를 해서 내 마음속에 있는 미움이나 저항감을 없애야 합니다.
정말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면 무서운 영상들이 사라지게 된다. 그런데 기도를 할 때는 조금 풀어지는 듯하다가도 실제로 아버지에게 가서 얘기를 나누면 과거의 두려움과 공포가 또 작동하기 쉽습니다. 그렇더라도 아버지께 저녁도 대접하고 술도 대접하고 가까이 가서 대화도 나누고 옛날이야기도 나누어 봐야 합니다. 제가 어려서 아버님의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아버지를 위로도 하면서, 참으로 이해하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눠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내가 정말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면 내 마음속의 무서운 영상들은 사라지게 됩니다.
이런 미움과 증오의 감정이 내 속에 쌓여 있으면 내가 그것을 싫어하면서도 나중에는 나도 모르게 그 싫어하는 모습과 똑같이 행동하게 됩니다. 아버지가 술주정꾼이면 아들이 그런 아버지를 싫어하여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하지만, 그 아들이 결혼하면 똑같은 일이 반복되기가 쉽습니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나지 팥이 나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지요. 그래서 닮아 가는 것입니다. 닮지 않으려면 그것이 씨앗이 되어 있으니까 이 씨앗을 제거하자는 것입니다. 생물로 말하면 유전인자를 바꾸는 것이지요. 유전인자와 같은 것이 바로 '업식'입니다. '업장을 소멸 한다' 하는 것은 이것을 고치는 것입니다. 자기 운명을, 인생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러나 잘 안 바꿔지지요. 그래서 매우 깊은 정진을 하고 매우 깊은 참회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욕하고 싫어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똑같은 행동을 하게 됩니다. 이생에서 이런 내 업식을 소멸시키는 것은 자식에게는 이런 업이 이어지지 않도록 그 흐름을 끝내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정진하는 방향을 제대로 잡아야 합니다. 이것을 내버려두고 참선한다고 염불한다고 기도한다고 해도 해결이 안 됩니다. 그러니까 기도는 아버지에게 깊이 참회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혼자 하기 어려우면 우선 자기한테 맺힌 것을 자꾸 상담자에게 드러내어야 합니다. 이러한 것은 누구나 인생을 살 때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에게는 큰 충격이지만 사실 인생사를 보면,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하나의 현상일 뿐이지요. 이렇게 지금 드러내어 질문한 것 자체가 어느 정도 마음공부를 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요. 사실은 꺼내기도 어렵잖아요. 드러내어 질문하면 담담하게 자신을 지켜볼 수도 있게 됩니다. 더 나아가서 상처를 치유하려면 아버지를 깊이 이해해야 합니다.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면 내 상처도 아물게 됩니다.
어떻게 들으셨나요?
저는 왜 가해자 아버지가 나한테 참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아버지한테 참회하라는 스님 말씀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업도 안되고, 돈도 떼이고, 자식은 많고 먹고 살 길이 막막한데 마누라도 바가지 긁고' 이런 아버지의 입장이라면 얼마나 괴로웠겠나, 싶은게 이해가 됩니다. 물론 그렇다고 완전히 숙여지는 것은 아닙니다.
김현경의 '천개의 공감'이라는 책에서 이 비슷한 경우의 예를 보았습니다. 거기서는 가해자에게 충분히 사과를 받아야 피해받은 사람의 마음이 풀린다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그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스님 말씀처럼 내가 아무리 상대를 이해하고 싶어도 내 관점에 사로잡혀 있고, 내가 당한 폭력이 너무 억울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거든요.
그런데 요즘 들어 다시 드는 생각이 가해자가 충분히 사과하는 것은 좋은 해결책이긴 한데 그렇게 될 가능성은 적어 보입니다. 만약 폭력을 가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없다면 사과받을 길이 없고, 또 살아계시다 해도 인정 안하시면 더 원수질테니까요. 그러면 영원히 나는 아버지를 미워할 수밖에 없고, 그런 환경에서 산 자기 자신까지 학대할 수밖에 없으니 가장 좋은 해결책은 아니죠.
그래서 스님께서 말씀하신 상대를 이해하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왜냐면 내 마음만 바꾸면 되니까, 내가 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것에서 벗어나면 모든 문제를 풀 수 있으니까. 문제를 푸는 열쇠는 폭력을 한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자신이 쥐고 있는 것이지요. 정말 내가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이 자리에서 바로 벗어날 수 있는 거에요. 대신 우리가 자녀를 키울 때는 충분히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서 부모라 해도 사과해야 할 일이 있으면 아이 마음이 풀릴 때까지 사과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겪었듯이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 아니까요.
참 지혜롭네요. 도저히 상대가 먼저 풀지 않으면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문제가 쉽게 풀리네요. 스님이 지혜로우신건지, 부처님 법을 받아들이는 제가 지혜로운건지^^(ㅎㅎ 제가 좀 잘난 척 합니다~)
그냥 못들은 척 넘어가시죠^^. 여러분들은 스님 법문을 들으시고 어떠셨나요?
그리고 글로만 읽는 스님 법문이 아니라 바로 내일이죠. 3월 25일(수), 오전 10시. 양천 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법륜스님의 <행복강좌 즉문즉설>이 있습니다. 김여진씨의 사회로 진행된다고 하네요.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이 끝나고, 봉사와 수행을 함께 하고 있는 김여진씨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제가 김여진씨 취재하면서 느낀 건데 진짜 향기가 납니다. 노희경작가님만 향기나는 줄 알았더니 김여진씨 향기도 보통이 아닙니다. 여러분도 오셔서 한번 같이 느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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