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구멍가게도 이렇게 안 하는데 유감"
신세계 "상도의? 최초 협상자는 우리였다"

아울렛 입지 놓고 '파주 땅 싸움'... 초반 롯데 우세, 막판에는 신세계 유리

등록 2009.03.27 16:42수정 2009.03.27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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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신세계가 지난 3일 부산 해운대구 센텀시티 내에 유통업체 맞수인 롯데백화점과 불과 5~6미터 거리를 두고 '신세계센텀시티점'을 개장해 눈길을 끌었다.

신세계가 지난 3일 부산 해운대구 센텀시티 내에 유통업체 맞수인 롯데백화점과 불과 5~6미터 거리를 두고 '신세계센텀시티점'을 개장해 눈길을 끌었다. ⓒ 최경준


경기도 파주 아울렛 부지를 둘러싼 신세계와 롯데의 '땅 싸움'은 신세계의 승리로 끝날 공산이 커졌다.

신세계가 지난 23일 아울렛 부지를 매입하는 약정 계약을 체결하자, 롯데가 "우리가 먼저 20년 장기임차 계약을 맺었다"고 주장하면서 소유권 분쟁이 일었다. 그러나 신세계는 지난 26일 파주시로부터 아울렛 부지에 대한 토지거래허가를 받아 본격 매매계약을 진행하게 됐다. 이미 부지 소유권자인 부동산 개발업체 ㈜CIT랜드에 총 매입대금 326억 원의 10%인 32억 원을 계약금으로 지급한 상태다.

롯데는 여전히 신세계와 CIT랜드의 매매계약을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다. 롯데 측은 "우리와 CIT랜드가 매매 협상을 벌이고 있는 과정 중에 신세계가 이런 행동을 한 것은 상도의에 맞지 않는다"고 맹비난했다.

그러나 정작 CIT랜드 측은 "롯데와의 모든 협상은 이미 종결됐다"며 신세계의 손을 들어줬다. 그렇다고 해서 유통업계 최대 맞수 간에 벌어진 '영역 싸움'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업계에서는 "이제 시작"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이미 양측이 칼을 빼들고 자존심을 건 싸움에 나선 만큼, 향후 아울렛 사업을 둘러싼 신세계와 롯데의 대혈투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신세계, 아울렛 시장 첫 진출... 1라운드는 롯데 '우세'?

그동안 롯데는 백화점을 비롯해 다양한 유통 포토폴리오로 시장을 선도한 반면, 신세계는 대형마트(이마트)를 앞세워 시장 지배력을 강화해 왔다. 그러나 '아울렛'이라는 새로운 업태가 등장하면서 양측 간에 '유통지존'을 건 자존심 싸움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아울렛은 유명 브랜드의 이월상품이나 경미한 하자제품을 할인가격에 2차적으로 유통시키는 업태로 지난해부터 유통산업의 신성장동력으로 떠올랐다.


먼저 칼을 빼든 곳은 신세계. 지난해 6월 미국 첼시그룹과 경기 여주에 국내 첫 교외형 프리미엄아울렛을 개장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뒤질세라 롯데백화점도 지난해 10월 광주 풍암동 광주월드컵경기장에 '도심형 아웃렛', 11월에는 경상남도 김해에 '교외형 프리미엄아웃렛'을 각각 오픈하면서 아울렛 시장 진출에 신호탄을 올렸다.

신세계는 가장 먼저 명품 아울렛 시장 선점을 시도했지만 오히려 후발 주자인 롯데의 대대적인 공세로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 2006년 말 경기도 파주에 제2 아울렛 건설을 추진해 온 신세계가 파주시와 부지 선정을 두고 끝내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무산된 것이 화근이 됐다.


롯데는 이 틈새를 노려 지난해 1월 파주시 탄현면 통일동산 내에 대형 위락시설 건립을 추진하던 CIT랜드와 20년 장기임차 약정을 맺었다. 롯데는 이어 내년 상반기 중 파주아울렛 오픈을 목표로 프로젝트팀을 출범시키고, 기본설계 및 매장 구성, 교통영향평가 및 각종 인허가 추진 등 사업 진행에 박차를 가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울렛 시장 경쟁의 '제1라운드'는 롯데의 우세가 되는 듯 싶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암초가 나타났다. CIT랜드는 부지 소유권을 갖고 있지만 시공사인 대림산업의 신탁보증을 받은 상태이기 때문에 매매 및 임차 계약을 하기 위해선 대림산업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특히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은" CIT랜드가 롯데 측에 부지에 대한 임차 계약이 아니라 매매 계약으로 변경해 줄 것을 요구했다. 롯데는 곧바로 매매 협상에 응했지만 가격 조율이 안 돼 번번이 결렬됐다. 높은 값을 받으려는 CIT랜드와 싼값으로 사려는 롯데 간에 줄다리기가 이어진 것이다.

결국 CIT랜드는 롯데에 협상 종결을 통보하고, 이전에 파주 아울렛을 추진했던 신세계에 손을 내밀었다.

이에 따라 신세계는 지난 23일 CIT랜드와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통일동산 내 53만4000여㎡ 중 7만6000여㎡ 부지를 약 326억 원에 매입하는 양해각서(MOU)를 맺었고, 26일에는 파주시로부터 토지거래허가를 받아 본격적인 소유권 이전절차를 밟고 있다. 롯데 쪽으로 기울던 파주 아울렛이 순식간에 신세계로 넘어온 것이다.

개발 시행사 CIT랜드, '롯데' 잡았던 손 놓고 '신세계'로

롯데 측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롯데 측은 "파주에 아울렛 사업추진이 확정돼 진행 중인데도 불구, 유통업계 경쟁사가 개발 시행사측과 파주 아울렛 부지 매입 약정을 체결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유통업체간 경쟁 질서를 저해하려 한다는 점에는 심히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밝혔다.

롯데백화점의 한 관계자는 지난 26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우리가 파주 아울렛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라며 "장기임대차 계약이 된 상태이고, 부지 매입까지 논의하고 있는 과정에서 신세계가 이면적으로 매입 약정을 체결했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성토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언론에선) '진흙탕 싸움'이라고 하는데, 그게 아니고 (신세계의) 사업방해 행위가 명백하지 않느냐"며 "아무리 무한경쟁 시대라고 하지만 이번엔 (신세계가) 선을 넘어섰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이런 일에 대해서 동종업계에서 비난하는 것 자체가 우습게 됐다. 상도의에 맞지 않기 때문에 안타까움과 유감을 금치 못하고 있다"면서 "구멍가게라도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는데, 구멍가게도 아닌 곳이 그렇게 하겠다니 납득이 안 된다"고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그러나 신세계측 태도도 단호하다. "CIT랜드가 롯데와의 협상 종결을 선언한 뒤, 신세계와 계약이 적법하게 이뤄졌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신세계백화점의 한 관계자는 "롯데는 CIT랜드 측과 장기 임차계약을 맺었다고 하지만 개발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는 대림산업의 동의가 없어 법적 효력이 없다"며 "롯데 측은 계약금도 지불하지 않은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동종업체로서 상도의에 어긋난다"는 롯데측 주장에 대해서도 "최초 협상자는 신세계였다. 2006년 말 파주시와 협상했지만 가격이 맞지 않아서 중단된 것"이라며 "만약 이번에 우리가 먼저 액션을 취했다면 '상도의' 얘기가 나올 수 있지만, CIT랜드 측이 먼저 우리에게 적절한 가격으로 제안을 해와서 계약을 했는데, 뭐가 문제냐"고 강조했다.

"롯데가 욕심 부리다 기회 놓친 것"

실제 CIT랜드는 롯데 측에 임대 계약 해지를 통보했고, 롯데 역시 통보를 받았다는 사실은 인정하고 있다. 롯데는 최근 CIT랜드를 방문, (신세계보다) 땅 값을 높여 제시하는 등 막판 협상을 시도했지만 CIT랜드는 이를 거절했다.

CIT랜드의 한 관계자는 롯데 측의 반발에 대해 "(롯데가 얘기하는) 법적 소송 등은 성립이 될 수 없다"며 "다 끝난 일을 가지고 도대체 롯데가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워했다. 파주시의 한 관계자도 "롯데가 땅 값을 깎는 등 유리한 조건을 가져가려고 욕심을 부리다가 (신세계 때문에) 기회를 놓친 것 같다"고 귀띔했다.

승부의 세계는 냉혹하다. 유통업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사실상 상황이 종료가 됐다"며 '배짱'을 부리는 신세계에 맞서 "아직 끝난 게 아니"라며 마지막 끈을 놓지 못하고 있는 롯데. 여기서 밀리면 당분간 '유통지존'의 자리를 신세계에 내줘야 할 지 모른다는 우려가 높다.

부산 해운대 신세계센텀시티점에 이어 또 한 번 자존심에 적지 않은 상처를 입은 롯데의 다음 공세가 주목된다.
#파주 아울렛 #신세계백화점 #롯데백화점 #유통업체 #땅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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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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