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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언니가 내일 모레에 온다고 한다. 60세가 다 되어가는 나이에 일본에서 공부를 처음 시작할 때, 누군가는 그 나이에 왜 그렇게 어려운 공부를 할까? 왜 고생을 사서 할까 의아해 하기도 했다.
정말 힘들고 어려웠던지 1년 다니고 대상포진이 생겨 한 학기 휴학하고 다시 다니고 했다. 아무리 머리가 좋은 언니라도 나이는 어쩔 수 없는지, 전처럼 집중력과 순발력, 이해력, 기억력 등 모든 것이 차이가 나서 살이 쏙 빠졌던 저번 겨울방학 때의 모습이 생각이 난다. 지금은 또 어떻게 변했을까 참 궁금하다.
언니는 원래 이 곳에서 고물상도 운영하고, 영등포시장에서 과일장사도 했다. 그리고 한 때는 제주도에서 온갖 동물들을 키우는 농장도 해보고, 어느 점장이가 말한 역마살이 끝난다는 불혹이 되어서 비로소 서울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나왔다.
그럼에도 다시 일본의 대학원으로 간 것은 어느 날 갑자기 밥을 먹다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형부가 하던 번역일을 이어 가겠다고 작심해서이다. 말이 언니이지 내게는 세 오빠를 합친 것과도 같고 때로는 엄마 대신이기도 하다.
어릴 때 동네서나 학교에서 괴롭히는 사람이 나타나면 보통 사람들은 엄마를 찾지만, 막내오빠와 나는 언니를 찾았다. 키는 아주 조그마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세상을 당당하게 상대하는 성실과 노련함이 항상 있던 언니였다.
차가 10 년이 되어 부품수명이 다 되어 계속 수리를 받거나, 차가 이상신호를 미리 보내도 못 듣는 나는 그대로 주행하다가 여러 번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방학이라고 잠시 한국에 온 언니는 차에 관한 이야기를 듣더니, 다시 일본에 가기까지 도저히 마음을 놓을 수 없다고 당장 차를 교체하라고 채근했다.
그래서 언니가 아니었으면 그대로 완전히 폐차가 될 때까지, 혹은 무슨 일이 터졌을때까지 몇 년을 더 탔을 사방에 상처투성이 차를 처분하고 연리 2-3%의 5년 상환의 차량지원융자금을 받아 할부로 구입했다. 말이 그렇지, 차를 중고차시장에 내놓거나 폐차시키거나, 그런 뒤에 새 차를 받는 과정까지 얼마나 많은 언어소통이 이루어지는지 알만한 사람은 알 것이다.
더구나 나는 10년 전에 차를 이런 저런 사람들에게 많이 빌려주었다. 차는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는 세상의 통념을 전혀 모르기 때문이었기도 하고, 단체창립초기라서 회원이동에는 내 차가 유일한 수단이기도 했다. 그런데 속도위반 등 관련 벌금도 참 많이 내었다고 생각했는데, 차를 처분할 때 나도 모르는 주차과태료가 100만원이 넘어서 황당했다.
내가 동생이라서 차량관계일을 도와준 것이 아니라, 언니는 주변의 누군가에게 그런 비슷한 일이 생기면, 만사 제치고 일상의 생활로 공부를 하면서 도와준다.
일본의 언니가 이 곳에 오기를 아침 저녁으로 사진틀에 언니의 모습을 보고 인사를 하면서 손가락을 꼽으면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시장보는 것과 혼자 음식을 만들어 먹는것을 아주 좋아하는 45세의 여성장애인이다.
내가 한때 부설기관으로 관여하던 장애인폭력쉼터에 잠시 입소한 여성장애인이었는데,
오랫동안 부산의 어느 종교시설에서 외면적으로는 보호였지만, 내면적으로는 장시간 부림과 학대를 당한 것을 알고 몇 번이나 부산을 왔다 갔다하면서, 상담소,경찰, 법원, 변호사 등 관계기관도 연계하면서 그 사람의 인권을 찾아주느라 노심초사하였다. 마치 지금의 솔루션의 역할을 한 셈이다.
마침내 오랜 투쟁끝에 그 사람의 오래 밀린 인건비도 되찾아 주고, 같이 가족처럼 생활하면서 스스로 돈 쓰고 관리해서 노트에 적어나가는 가계부를 쓰는 기초산수와 목욕탕 가는 법, 시장에서 물건사는 것을 가르치고, 기초수급자가 되어 임대아파트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자립의 기반을 만들어 주고 일본으로 떠난 것이다.
나는 언니만큼 여성장애인을 활동적으로, 같이 하루 세 끼를 먹고 잠을 자면서 끈질기게 잘 돌봐주지 못한다. 몸이 허약한 탓과 서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탓도 있지만, 나란 인간의 그릇은 사람과 사람사이 오래 부대끼면 뿌리가 곧 잘 흔들려서 신음한다.
마치 돌아가신 엄마는 팔팔하여 사람과 사람사이를 활기있게 즐겼지만, 아버지는 골골한 책상물림 샌님처럼 못 하나 제대로 못 박았던 것과 비슷하다.
팔팔한 열정의 우리 언니가 존경스럽다. 나를 도와주는 사람으로서, 혈연으로서 존경스럽기보다, 내가 하지 못하는 여러가지 일들을 하기에 존경스러운 것이다. 그것은 언니가 아니라도 마찬가지다.
내가 하지 못하는 일들을 하는 사람들은 주변에 참 많다. 학교를 전혀 다니지 않았고, 두 팔, 두 다리가 불편해도 친절한 말씨로 늘 어려운 사람들에게 전화로 마음에 도움이 되는 동료상담을 하는 사람도 존경스럽고, 성격이 거칠고 싸움을 잘한다 하더라도 그 성격을 성폭력을 당한 누군가의 인권을 되찾아주는데 앞장서는데 활용하면 존경스럽다.
키가 큰 나무는 키가 커서 하늘의 맑은 햇빛을 먼저 받지만, 외롭고 키가 작은 나무는 키가 작아서 먼지를 많이 받는 대신 옹기종기 모여 살게 되어있다. 그래서 서로 다른 나무들이 울울창창한 것처럼, 서로 다른 성격과 다른 활동들을 하는 언니와 나와, 언니가 도움 준 많은 사람들이 사이좋은 숲처럼 숨 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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