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줄처럼 얽힌 민생문제
상담소는 2006년 9월 21일에 처음 문을 열었다. 어떤 계기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부터 물어보았다.
"예전에 한국빈민문제연구소가 결성한 전국빈민상담네트워크에서 상담일을 한 적이 있어요. 그러면서 빈곤문제에는 채무문제, 노동문제, 기초생활보장문제, 그리고 먹고 사는 문제가 동시에 얽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그래서 이러한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상담할 수 있는 곳을 열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창문틀의 거미줄로 자연스레 시선이 옮겨갔다.
가난한 사람들에겐 다양한 문제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그 거미줄에 한번 걸리면 쉽게 빠져 나올 수 없다. 함께 고민하고 바꿔 나간다면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거라는 그의 이야기가 장대비처럼 마음 속을 파고든다.
상담소를 찾는 사람들
상담은 주로 빈곤, 기초생활보장, 채무 그리고 노동에 관한 문제들에 대해 이루어진다. 최근에는 특히 카드빚과 관련한 채무문제로 개인파산을 상담해 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1997년 IMF 구제금융사태 이후 시작된 비정규직의 증가와 임금의 감소가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더 가난하게 만들었고, 2002년 이후 시작된 신용카드 남발정책이 많은 이들을 신용불량자로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비록 2005년 4월28일 이후 신용불량자라는 말이 사라지고 금융채무불이행자로 불리게 되었지만 그들의 삶까지 바뀌지는 않았다. 그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언제나 냉담했다.
금융채무자에 대한 사회인식의 개선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금융채무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연석회의>라는 전국적인 연대모임이 결성되었다. 모임은 '금융채무 불이행자'를 '금융피해자'라고 바꿔 부를 것을 즉각 제안하고 나섰다. 금융채무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문제점과 더불어 살펴보자는 생각에서이다.
그들에게 마음의 치유를
상담소 역시 이러한 금융피해자들이 스스로 법원에 개인파산면책을 청원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하지만 개인파산면책에 관한 법률이 버젓이 있음에도 금융피해자들이 여기에 접근하기란 쉽지 않았다. 청원절차에 필요한 서류작성이 까다로울뿐더러 '빚진 죄인이라는 죄의식'이 그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변호사를 선임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한 내담자는 자영업을 하다가 규모를 키우려는 생각에 대출을 받게 되었어요. 결국에는 사업이 실패해서 빚을 지게 되었지요. 나중에는 진 빚을 갚지 못한다는 죄의식이 그를 옭아 매기 시작했어요. 빚쟁이들의 극심한 독촉에까지 시달리다 급기야 정신장애를 갖게 되었죠.
그 이후 부인이 직접 생계전선에 뛰어들어 옷가게를 시작했어요. 하지만 여전히 줄어들지 않는 빚을 극복하지 못하다 보니, 결국 부인까지 정신장애를 앓게 되었지 뭡니까."
그는 '금융채무 문제를 비롯한 노동, 기타 생활문제의 책임은 개인에게만 있는 것이아니라 이를 방치하는 사회구조에도 분명한 책임이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러한 사실을 내담자에게 인식시켜줌으로써 그들 스스로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상담소의 중요한 역할중 하나라는 것도. 민생상담은 단순한 문제해결만이 아닌 한 사람의 마음을 치료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전화가 올 때마다 항상 하는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여러분은 신용불량자가 아니라 금융피해자입니다"가 바로 그것. 지칠대로 지치고 절망할 만큼 절망한 그들에게 죄인이 아닌 피해자임을 인식시켜주는 것이다.
또한 매월 셋째주에 열리는 토요민생상담학교를 통해 서로의 민생문제를 나누고 함께 고민하며 문제해결방법을 찾는 시간도 마련하고 있다고 한다.
삶의 공동체를 향한 오랜 꿈
그는 상담소를 찾는 사람들끼리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끼리 모여 희망을 다시 되찾을 수 있는 공동체 말이다. 사실 삶의 공동체는 오래전부터 이루고 싶은 꿈이었다.
"1990년 청주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도시일용직 노동자들의 자활공동체를 만들었어요. 가슴 아프게도 IMF이후 모임을 해체했지만 함께 벌고 공평하게 수익을 나누는 삶의 공동체였어요. 현재 운영하고 있는 강아지똥어린이도서관도 마을교육공동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한 것이고요. 저는 언제나 여럿이 함께 모여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어요."
강아지똥어린이도서관은 이곳 상담소와 오누이처럼 정답게 붙어 있다. 마을 어린이들이 무료로 책을 읽을 수 있게 평일과 토요일에 항상 문을 열어놓고 있다.
오는 9월 27일에는 도서관 주최로 가을잔치를 연다. 그동안 자금이 여의치 않아 정말 오랜만에 치르는 행사라고 했다. 가족에게 편지쓰기, 천연염색, 천연비누 만들기, 맛있는 책읽어주기, 사랑의 벼룩시장과 같은 다양한 행사가 마련되어 있단다.
상담전화가 걸려오지 않는 행복한 세상을 꿈꾼다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짓궂은 질문을 던져 보았다.
"상담소로 한 통의 전화도 걸려오지 않는 행복한 세상이 올까요?"
소장님은 그러한 질문을 여태껏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며 멋쩍게 웃으셨다.
"그러한 세상은 이미 오고 있고, 또 시작되고 있어요. 궁극적인 모습은 알 수 없지만 그러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믿음을 가지고 끊임없이 행동에 옮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서야 상담소를 나섰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집집마다 한두개 씩은 나 있는 창문들에 눈이 갔다. 모두 다양한 삶의 문제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을 터이다.
이제는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고, 거미줄을 걷어 젖힐 때이다.
대전새길민생상담소
주소 : 대전광역시 동구 대성동 30번지 상가 1동 201-2호
전화 : 042-285-9413
홈페이지 : http://cafe.daum.net/musa0980
E-mail : musa0980@hanmail.net
후원계좌: 453015-56-178867 농협(예금주 김철호-새길민생상담소장)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행복발전소(www.makehappy.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해피리포터'는 전국의 다양한 비영리단체들을 직접 방문취재해, 시민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하는 희망제작소의 시민기자단입니다.
2009.04.01 17:39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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