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고대' 학사행정도 '이명박식 불도저'?

3년 전 출교생 재징계 추진... 변호사 "졸업자는 학칙으로 징계 못해"

등록 2009.04.03 00:08수정 2009.04.0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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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민족 고려대'의 우직한 끈기라 불러야 할까, 아니면 이명박 대통령이 졸업한 '글로벌 KU'의 불도저식 밀어붙이기 학사 행정이라고 해야 할까.

09년 입시 수시전형에서 특목고 우대 의혹과 최근 '김연아 광고'로 따가운 눈총을 받았던 고려대가 이번엔 이미 졸업한 학생들까지 학교 징계위원회에 출석시켜 무기정학 등의 징계를 추진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고려대가 수십 명의 기자들을 불러 놓고 김연아 선수의 첫 등교 행사를 화려하게 치른 2일. 세상의 많은 눈길은 고려대에 첫발을 내디딘 김연아 선수에게 쏠렸다. 고려대는 이기수 총장까지 나서며 김연아 선수를 극진히 대접했다.

하지만 바로 그 시간, 고려대의 다른 한쪽에서는 08년 촛불 정국에서 일명 '고대녀'로 알려진 김지윤(사회학과 03학번)씨가 학생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며 가슴을 치고 있었다. 김씨가 나눠준 유인물에는 이런 제목이 크게 박혀 있었다.

3년 전에 벌어진 그 '고대 출교생' 사태... 아직도 현재 진행중?

 김지윤 고려대 학생(자료사진).
김지윤 고려대 학생(자료사진).남소연
"출교, 퇴학... 이제는 졸업생까지 무기정학. 끝까지 학생들에게 낙인 찍으려 하십니까?"

출교? 그리고 퇴학? 거의 3년 전에 벌어진 그 '고대 출교생' 사태가 아직도 현재 진행중이란 말인가. '고대생' 김연아 선수의 등교로 눈길이 쏠린 고려대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고려대학교는 최근 지난 2006년 4월 이른바 '교수 감금 사태'로 출교 조치했던 김지윤씨를 비롯한 학생 7명에게 학교 징계위원회에 출석하라는 통지서를 보냈다. 이들은 지난 3월 27일 징계위원회에 출석했다.

또 징계라니. 학생들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은 법원 판결을 받아 이미 지난해에 복학했고, 이 중 세 명은 지난 2월 25일 졸업을 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복학은 2년 동안 학내에서 천막 농성을 벌인 "눈물겨운 지난한 싸움의 결과물"이었다.


법원도 "출교는 대학 교육의 포기이자, (출교생 7명이) 교육받을 권리 및 직업 선택의 가능성을 심히 제한하게 되어 현재 및 그 장래의 삶에 끼치는 불이익이 지나치게 가혹하다"며 출교 무효 판결을 내리는 등 학생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들 출교생들은 학교 복학에는 성공했지만, 이를 위해 소비한 2년은 그 누구에게도 보상받지 못했다. 이들의 학적부에는 출교 결정이 내려진 2006년 4월부터 복학한 2008년 2월까지의 기간이 '휴학'으로 기록돼 있다.

고대, '휴학'→'무기정학' 바꾸기 위해 다시 징계 절차 진행

하지만 현재 고려대 측은 이들의 학적부에 기록된 '휴학'을 '무기정학'으로 바꾸기 위해 다시 징계 절차를 밟고 있다.

'고대녀' 김지윤씨는 "학교 쪽의 잘못된 징계로 2년을 천막에서 보냈고, 법원도 학교의 징계가 부당하다고 판결을 내렸는데도 다시 우리를 징계를 하겠다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학적부에 기록된 '휴학'을 지우고 '무기정학'을 새겨 넣으려는 학교의 행태는 원칙과 균형을 잃은 정치적 판단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 "고려대에 다시 운동권 총학생회가 들어서고 등록금 투쟁에 수백 명의 학생이 몰리니 학교 쪽이 '운동권은 끝까지 응징한다'는 걸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 같다"며 "이런 고려대의 모습이 촛불 집회 참석자들을 끝까지 집요하게 처벌하는 정부와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고 학교를 비판했다.

출교생이었지만 이제는 학교를 졸업한 안형우(국어교육과 02학번)씨도 "이미 졸업해 학생도 아닌 나를 불러 학칙에 따라 징계를 하겠다는 학교의 합리적 기준이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며 "학교가 끝까지 나를 실망시키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김광덕 변호사 "졸업생은 징계 불가능, 재학생만 징계한다면 형평성 어긋"

 일명 '고대녀'로 유명해진 김지윤 고려대 학생이 지난해 6월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주성영 한나라당 의원이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하여 자신에 대한 허위사실유포, 명예훼손에 대해 재학증명서 사본을 들어보이며 공개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일명 '고대녀'로 유명해진 김지윤 고려대 학생이 지난해 6월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주성영 한나라당 의원이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하여 자신에 대한 허위사실유포, 명예훼손에 대해 재학증명서 사본을 들어보이며 공개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유성호

그러면 고려대의 생각은 도대체 무엇일까. 고려대 홍보실의 한 관계자는 "법원이 출교 무효 결정을 내렸다고 해서 학생들의 잘못이 사라진 게 아니기 때문에 학교는 얼마든지 다시 징계를 할 수 있다"며 "(징계 대상 학생들이) 뭔가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이 관계자는 ""학교 징계위원회는 이미 무기정학을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징계 절차는 각 단과대학장과 총장의 사인만을 남겨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학교 쪽의 주장과 달리 법원 쪽의 판단은 다르다.

법원은 지난 08년 판결문을 통해 "(학생들은) 2006년 4월 19일 출교처분을 받은 이래 근 2년 동안 학업을 중단했고, 그동안 이에 항의하는 뜻으로 고려대 본관 앞에 천막시설을 설치하여 그곳에서 생활해 왔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벌써 상당한 처벌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퇴학 무효 판결을 이끌어낸 김광덕 변호사 역시 "졸업생은 이미 학생이 아니기 때문에 징계가 불가능하며, 만약 재학생들만 징계한다면 그것도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어쨌든 이런 지적에도 고려대는 학생들에 대한 징계를 강행한다는 방침이다. 징계를 담당하고 있는 고려대 학생처 쪽은 2일 "담당자가 없다"며 온종일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이런 고려대의 '냉랭함'은 김연아 선수가 2일 도서관에서 무슨 책을 빌렸는지까지 알려준 '친절함'과는 무척 대비됐다.
#고려대학교 #출교 #김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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