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뿔나팔과 북.(왼쪽)무용총벽화에서 나오는 뿔나팔, (오른쪽)덕흥리벽화분에서 보이는 북
전호태 저 『고분벽화로 본 고구려 이야기』
낙랑공주에게 호동왕자가 부탁한 것은 자명고와 자명각을 부숴버리는 것이었다. 자명고와 자명각은 한자를 풀어서 보면 '스스로 소리 내는 북'과 '스스로 소리 내는 뿔나팔'이다. 여기에서 흔히들 자명고와 자명각을 북과 피리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명각은 피리라고 보기보다 나팔에 가깝다. 『삼국사기』에서도 뿔나팔(角)이라고 하여 피리(笛)와는 구분하고 있다.
고대 전쟁에서는 악기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였다. 전투가 시작될 때는 서로간의 함성소리와 먼지들, 그리고 정신없는 분위기에 군대를 지휘하기가 지휘관들로서는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이럴 때 이용되는 것이 악기와 깃발로서 보통 전투에서는 나팔, 북, 징 등을 가지고 가서 이를 가지고 진군과 퇴각을 알렸다. 이 외에 더 세부적으로 정하여서 전투 시에 어떠한 명령을 내리는 표시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고구려에서는 고분벽화를 통하여 이들의 존재가 보인다. 덕흥리벽화분과 안악3호분, 수산리벽화분 등에서는 행렬에 북이 등장하여 당시에도 널리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무용총의 벽화에서는 뿔나팔을 불고 있는 사람이 그려져 있으며, 이는 삼실총과 안악3호분, 수산리벽화분 등에서도 볼 수 있다.
군사적인 용도에서 자명고와 자명각의 위치는 매우 중요했다. 『삼국사기』에 보면 낙랑의 자명고와 자명각은 적들이 쳐들어오면 스스로 운다고 전한다. 그렇기에 자명고와 자명각이 울리면 대번에 전투태세를 갖추고 적과 교전할 수 있게 되는 것인데, 고구려가 원한 것은 그러한 자명고와 자명각을 없애버려 낙랑의 방어에 심대한 타격을 주고자 한 것이었다.
그럼 실제로 자명고와 자명각은 존재했을까? 역사적인 사실로서 본다면 이에 대해서는 당연히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다. 하지만 이 존재에 대한 해석은 많은 논란이 되어왔다. 왕실 무기고로 보기도 하며 당시 전투에 쓰인 여러 악기들을 지칭한다는 설, 혹은 어느 정도 의미를 부여한 보물이라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대로 실제로 전투에서 활용된 면을 본다면 방어체계의 일환이라고 보거나 그에 수반되는 도구 등이 해당되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낙랑공주는 결국 사랑을 선택하였고 이를 파괴하였다. 그리고 이 소식을 들은 고구려군은 군대를 이끌고 낙랑을 공격하였고, 결국 낙랑은 멸망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최리는 자신의 딸에 크나큰 배신감을 지녔고, 결국 스스로 딸의 목숨을 빼앗아 버리게 된다.
낙랑공주는 호동왕자에게 이용당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