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단어 자동암기학습시스템 '보카마스터'(일명 깜빡이학습기)를 개발한 원샷보카 임형택 사장.
권우성
대학에서 신문방송을 전공했지만, 이보다 부전공 과목인 전산학에 더 관심이 컸다. 3년 넘게 각종 컴퓨터 프로그램을 끼고 살았다. 다시 그의 말이다.
"3학년 2학기때, 졸업 후 무엇을 할지 막막하더군요. 한 선배가 갑자기 두꺼운 영어책을 주면서 공부를 하라고 했는데, 하루 3시간 동안 50개 외웠는데도, 다음날 되니까 기억이 안나더라구요."
- 그런 경험은 누구나 한번쯤은 있죠."그래요. 공부가 잘 안되니까 마음이 급해지고, 불안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일단 무조건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다시 보고... 그렇게 하자고 했죠."
- 그것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만들게 된 것이 언제죠? "대학 3학년 말, 92년 겨울일 거예요. '인지과학'이라는 분야에 관심이 많았는데, 계속 보다 보면, 친숙해지고, 어느 순간 알게 되는 원리였는데, 이것을 적용시켜보자고 했죠. '클리핑'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로, 화면에 영어 단어와 뜻이 반복해서 보여주도록 프로그램을 만들었죠."
- '깜빡이'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군요."(고개를 끄덕이며)그렇죠. 처음에 500단어로 시작했는데, 3초 동안 이 단어를 보는데, 25분밖에 안 걸리는 거예요. (웃으면서) 3시간 동안 50개 외우려고, 노트에 수십번 써가며 공부한 것에 비하면..."
이듬해인 93년에 그는 토플용 영어단어 7000개가 수록된 '깜빡이' 학습기의 원조 모델을 완성하게 된다. 물론 이 모델이 사업으로 접목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전국을 20바퀴나 돌면서 서러운 장돌뱅이 생활 미국 유학의 꿈을 접고, 97년 임 사장은 갤럽코리아에 들어갔다. 회사에 다니면서도, 깜빡이 사업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해 7월 그는 깜빡이 소프트웨어를 들고, 문자 삐삐를 만드는 회사를 찾아갔다. 혼수비용으로 모아둔 2000만원이 영단어 학습기 개발에 들어갔다.
"그때 휴대용 학습기를 만든다는 것은 어림도 없었고, 당시 삐삐가 유행이던 시절이어서 거기에 접목했죠. 하지만 오래 가지 못했죠. 200대 정도 팔았는데... 참, 힘들었죠."그는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이 기계를 이해시키는 것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임 사장은 "사람들이 이 기계를 보면서, '이 물건이 뭐냐', '그냥 보여준다고 외워지냐'는 반응이 처음이었다"면서 "당장 효과를 눈으로 보길 원했지만,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본격적인 사업은 2001년 하반기에 두번째 깜빡이가 나왔을 때부터다. 회사 동료와 함께 다시 돈을 모아 이번엔 1000대를 만들었다. 그는 전국의 학원가를 돌기 시작했다. 임 사장의 회고다.
"차를 직접 몰면서 전국 대도시 학원가는 다 돌았죠. 매주 1만킬로미터씩 다녔으니... 얼추 (전국을) 20바퀴 돌았나요. 학교, 학원에 들어가서 물건을 내놓기 무섭게, 선생님들의 반응은 "됐어요", "이건 또 뭐야"라는 식이었죠. '깜빡이'라는 이름도 너무 촌스럽다고 하고..."그는 스스로 장돌뱅이 같은 생활을 7년 동안 해왔다고 말했다. 그 사이 임 사장의 깜빡이는 특허 등록도 마쳤다.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지난 2006년 10월께 세번째 깜빡이가 나왔다. 게임기를 만드는 회사와 손을 잡았다. 원어민이 단어를 직접 읽어주는 기능도 보강됐다. 2007년엔 한국지식정보화센터로부터 중소기업청장상까지 받았다. 전보다 판매량은 늘었지만, 적자는 계속됐다.
폭발적인 성장 속에 "1인기업 한계 절감... 올해 안 새 회사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