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금선정과 금선계곡
김수종
요즘이야 비로사와 비로봉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삼가동 가는 길이 새롭게 생겨서 금선정으로 갈 일이 줄었지만, 삼가동저수지가 생기기 전인 불과 30년 전까지만 해도 반드시 비로봉 가는 길에 금선정을 둘러보고 가야했다.
풍기읍 금계2리 장선(長善)마을. 장선마을은 옛날엔 지형이 긴 배모양 같다고 하여 장선(長船)마을로 불리다가, 착한 사람이 많이 나고 번성하라는 의미에서 장선(長善)마을 혹은 효자가 많이 나서 효(孝)마을이라고도 불린다.
마을을 안고 약 1.5㎞에 걸쳐 형성된 금선계곡은 소백산 비로봉과 연화봉에서 발원한 정안동(靜安洞)계곡과 욱금동천(郁錦洞天)이 만나는 곳으로 500년 넘는 수령의 소나무와 기암괴석, 맑은 물이 속세의 찌든 때를 씻어주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계곡 중간 지점의 물가 절벽인 금선대(錦仙臺) 위에 금선정이 위치하고 있다. 금선대라는 이름은 조선 인조 때의 인물로 풍기를 대표하는 유학자인 금계(錦溪) 황준량(黃俊良) 선생이 정한 이름이다. 공조좌랑, 호조좌랑 겸 춘추관 기사관, 단양군수, 성주목사 등을 지낸 청빈한 학자이며, 청백리 목민관이었던 그는 젊은 시절 이곳을 자주 찾아 쉬기도 하고 공부를 하기도 했다.
이후 황준량의 후손들이 정자를 지어 금선정이라 칭하였다. 이 계곡을 금선계곡이라 부르는 것도 여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금선정 서쪽 산 중턱에는 황준량이 학문을 연마하면서 만년의 장수처로 삼고자 짓던 금양정사(錦陽精舍)이 있지만, 그는 생전에 집의 완성을 보지는 못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먹고 자는 것도 잊은 채 공부하는 것이 다반사였고, 책상에 앉아 밤을 새우는 일도 많았다. 하여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은 그가 피로를 얻어 병이 날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금계는 대학자 농암 이현보 선생의 손자사위로, 처가에서 퇴계를 처음만나 스승과 수제자 혹은 학문적 동지로 오랜 세월을 보냈다.
퇴계보다 17살이나 어렸던 금계는 병을 얻어 낙향하던 중, 퇴계보다 앞서 47세에 예천에서 임종했다는 소식은 들은 퇴계는 '실성하게 길게 부르짓으며 물을 짜내듯이 늙은이는 눈물을 흘렸다오. 하늘이 이 사람을 빼앗음이 어찌 이다지도 빠른가. 참인가. 꿈인가. 놀랍고 아득하여 목이 메는 구나. 그대가 물러나서 돌아오면 실로 오가면서 옛 우의를 다시 회복하자는 언약이 있었는데, 그대 늘 내가 늙고 병들어 견디기 어려울 것을 근심하더니 어찌 짐작인들 했으랴, 오늘 늙고 병든 내가 살아 있어 도리어 한창 나이인 그대를 곡하게 될 줄이야.'라며 그의 죽음을 애통해 했다.
금계 황준량이 금선계곡을 유독 사랑한 이유는 그의 자연회귀적인 심성과 은둔의 여유와 즐거움을 익히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대자연 속에서 도(道)가 생성, 존재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금선계곡을 사랑했다. 저서로는 <금계집(錦溪集)>이 있다. 후세 사람들은 풍기에는 금계 선생이 있고, 영주에는 소고 박승임 선생이 있다고 말을 할 정도로 금계 선생을 기리고 있다.
금계는 금선계곡에 대해 이런 시를 남겼다.
흥망은 하늘에 달려 있는 것 부질없이 헛되이 꾀할 수 없고한번 꾼 한단지몽(邯鄲之夢)엔 아직 머리가 세지 않았다네성품을 온전히 보전하려면 차라리 욕심을 조금 조릴 것이요마음이 고요하니 다시 무엇을 구하리요원헌(原憲)은 가난이 병이 아니라 스스로 믿었고범희문(范希文)은 물러나서도 근심을 했네거문고와 책을 물리쳐 버리면 다른 일이 없으니하늘에 노는 만물의 조종은 참으로 아름답네.*한단지몽(邯鄲之夢): 노생(盧生)이 한단의 장터에서 도사 여옹(呂翁)의 베개를 베고 잠들어 있는 동안 일생의 경력을 모두 꿈꾼 고사에서 나온 말로, 인간 일생의 영화는 한바탕 꿈에 지나지 않음을 비유한 말
*원헌(原憲) : 공자의 제자. 청빈의 대명사적인 인물
*범희문(范希文)은 <악양루기>에 나라를 생각하는 지사(志士)는 반드시 '천하의 걱정을 먼저 앞서 걱정하고 천하의 즐거움은 맨 마지막에 즐기라'라는 뜻으로 '선우후락(先憂後樂)'이란 말을 남겼다.
이황 선생도 금계 생전에 이곳을 즐겨 찾으며 시를 한 편 남겼다.
신선 될 재주 없어 삼신산을 못 찾고구름 경치 찾아 시냇물을 마셔보네얼시구 풍류 찾아 떠도는 손(客)들아여기 자주 와서 세상 시름 씻어 보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