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연 사건을 통해 본 승자 독식의 한국 사회

등록 2009.04.08 18:19수정 2009.04.08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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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연 사건은 지금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들의 종합세트처럼 보인다. 우선 지적되어야 할 것은 대한민국의 상층부, 그 중에서도 남성 권력 집단이 가진 오래 된 부도덕함이다. 사실 권력자들이 연예계의 젊은 여인들을 성적 노리개로 삼는 일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수십 년 전 저 유명한 정인숙 사건까지 가지 않더라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독재자가 젊은 여성 연예인들의 시중을 받던 자리에서 최후를 맞았던 역사를 우리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하긴 그 사이 접대를 받는 주체가 정치권력에서 자본 권력과 언론 권력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충분히 의미심장하다.

 

장자연 사건은 지금 한국 사회에서 연예계, 혹은 연예산업이 엄청나게 경쟁이 치열한 레드 오션이 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매체가 늘고 연예 시장의 규모가 커졌다고 하지만 그 바닥에서 스타로 뜨는 것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연예계에 진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아진 까닭이다. 왜 그런가. 연예인의 사회적 지위와 연예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뀐 것을 포함해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나는 한국 사회의 계급 구조가 고착화하면서 신분 상승의 통로가 좁아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한국 사회는 매우 급격한 성장과 변화를 겪었고 그 와중에 사회적 유동성이 비교적 높았던 사회였다. 이를테면 시골의 가난한 수재가 이른바 일류 대학에 진학하고 고시에 패스해 팔자를 고치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런 일들을 보기 힘들게 되어버렸다. 한동안 신분 상승의 지렛대 역할을 하던 교육 체계가 철저히 돈 놓고 돈 먹는 머니 게임으로 변질되면서 개천에서 용 나는 일은 더 이상 흔하게 생기지 않는다. 부르주아의 자식이 부르주아가 되고 노동자의 자식은 노동자가 되는 사회에서 연예계는 몇 남지 않은, 아직은 개천에서 용이 날 수도 있는, 신분 상승의 공간이다. 점점 더 많은 젊은이들이 연예인을 꿈꾸며 그 바닥에 몰려드는 데에는 이런 구조적 요인이 적지 않게 작용하고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관문은 좁고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은 많을 때 관문을 쥔 수문장들의 권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 연예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수문장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 방송제작자, 연예제작자, 언론사 관계자, 대형 기획사 등의 힘은 커진다. 게다가 어찌어찌하여 용케 연예계에 입문한다 해도 치열한 경쟁과 승자 독식의 세계에서 살아남기란 하늘의 별따기이니 그 바닥 권력자들이 가진 힘은 엄청날 수밖에 없다. 연예계 노비문서니 PR비니, 성접대니 하는 사건들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고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그러그러한 직업의 사람들인 것도 그러하다.

 

이 사건의 진상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져야 함은 물론이고 자신이 가진 권력의 우산 아래 여배우의 인권을 유린한 부도덕한 자들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려지고 단죄되어야 한다는데 이론이 있을 수 없다. 또 이참에 연예계의 불합리한 관행과 부조리가 고쳐져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이 사건을 단지 연예계의 좁은 울타리에서 벌어지는 문제 정도로 보거나 일부 부도덕한 개인들의 문제로만 보면 안 된다. 그와 함께 이 사건 뒤에 깔려 있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도 함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경쟁 만능주의, 승리 지상주의, 게다가 승자 독식의 구조는 비단 연예계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김창남씨는 현재 성공회대학교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9.04.08 18:19ⓒ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김창남씨는 현재 성공회대학교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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