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에서 절골로 내려가는 계단입니다. 햇볕을 많이 받아서인지 주변에 벚꽃이 활짝 피어있었습니다.
조종안
비둘기 집에서 수시탑을 지나 장계산 방향으로 걷다가 채만식 문학비가 있는 조각전시장에서 발길을 돌려 군산여고 쪽으로 내려오면, 골목 사이에 크고 작은 집들이 얽히고설켜 있는데요. 개 짖는 소리가 정겨운 '절골'이라는 산동네입니다.
군산에 살면서도 신흥동은 알아도 절골은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공원에 자주 갔던 저도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산동네, 점쟁이들이 많이 사는 산동네 정도로만 알았습니다. 어렸을 때는 신흥동이니까 동명(洞名)을 부르면 됐지 구태여 절골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몰라 궁금해하기도 했지요.
밤나무가 많아 밤나무골로 불리기도 했고, 난민촌이기도 했던 절골은 시대의 변화를 따라 주택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올해 77세가 되는 큰 누님이 세상 물정 모르는 열다섯 살에 결혼해서 신혼살림을 시작한 동네라서 달리 느껴지더군요.
어린 나이에 가난한 동네로 시집가서 시어머니 시중을 들던 얘기, 시누이의 질투로 속상했던 얘기, 한국전쟁을 겪었던 얘기 등을 해주던 누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노인성 치매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요. 공원에서 사진도 찍고 자장면도 사주었던 누님 얼굴이 만개한 목련 사이로 잠시 나타나더니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차돌이 많아 '차독산'이라고 했던 산줄기와 연결된 절골은 옛날에 절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요, 왜놈들이 지은 절(흥천사)은 아이들 유치원까지 운영하고 있는데 선조들이 남겨놓은 유적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니 잠시나마 죄인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군산에는 절골, 째보선창, 백두게, 독점재, 사챙이 다리, 둔배미, 콩나물 고개, 덜컥 다리, 설애, 감도가, 궁멀, 아흔아홉 다리, 팔마재, 흙구더기 등 순수한 우리말 지명이 많은데요. 일제강점기 때 일본식 한자로 바뀐 지명을 지금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아 마음을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봄이면 벚꽃이 만개하고 전망이 좋기로 소문난 군산 월명공원, 가족동반 나들이나 산책을 한 번 가더라도 조상의 얼과 전통문화까지 말살하려 했던 왜놈들에 의해 조성되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절골에서 만난 '젊은 할머니' 이집저집에서 개 짖는 소리가 정겨운 동네(절골)를 지나다가 텃밭에 쭈그리고 앉아 무엇인가를 심는 아주머니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는데요. 탤런트 김수미 씨가 살았던 동네를 묻는 말로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