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만원 '북극곰 스티커'로 시작해 미국시장 넘보다

[2030세대의 특별한 데뷔전 ①] 친환경 디자인회사 '제이드(JADE)'

등록 2009.04.21 14:05수정 2009.04.21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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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벤처란 사회적 기업(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 중에서도 청년들의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설립된 곳을 나타낸다. 다수의 청년들이 소수의 안정적인 직장에 몰리며 청년실업이 구조화되는 상황에서 소셜 벤처는 청년실업 문제 해소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4차례에 걸쳐 2030세대 소셜 벤처 기업가들을 만날 예정이다. [편집자말]
 소셜 벤처 '제이드'는 특별하다. 단순히 돈 버는 게 목적이 아니라, 멸종위기 동몰 보호라는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탄생했다. 왼쪽부터 웹매니저 이채(27)씨, 작가 김소은(25)씨, 디자이너 홍선영(24)대표.
소셜 벤처 '제이드'는 특별하다. 단순히 돈 버는 게 목적이 아니라, 멸종위기 동몰 보호라는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탄생했다. 왼쪽부터 웹매니저 이채(27)씨, 작가 김소은(25)씨, 디자이너 홍선영(24)대표.오마이뉴스 선대식

"미국 시장이 어떤지 알아봐."
"응, 알아볼게."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멋진 슈트를 입은 사업가들의 대화도, 번듯한 고층빌딩에서 이뤄진 대기업 해외영업부서 회의도 아니었다. 캐주얼 티를 입고 스타벅스 구석에 앉은 앳된 모습의 20대 중반 세 '소녀'들의 대화였다.

홍선영(24)·김소은(25)·이채(27)씨가 그들이다. 국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03~04학번 선후배인 이들은 경영학을 전공하지 않았고, 토익시험 한 번 보지 않았다. 대기업·공무원 대신 이들이 선택한 것은 디자인회사 '제이드(JADE)'를 창업한 것이다. 지난해 7월의 일이다.

제이드는 특별하다. 단순히 돈 버는 게 목적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탄생했다. 이른바 '소셜 벤처'다. 디자인에는 멸종위기 동물 보호 메시지를 담았고, 친환경 소재를 이용했다. 수익의 일부를 동물보호단체에 기부한다. 이미 흑자를 내고 있고, 반응도 좋다.

소수만이 대기업·공공기관 등 안정된 일자리를 얻고 다수가 불안정한 일자리를 얻는다는 88만원 세대의 비극에서 제이드의 실험은 하나의 반전이다. 자,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취업도 어려운데 창업이라니? 그것도 소셜 벤처?

소셜 벤처(Social Venture)란?
소셜 벤처란 사회적 기업(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 중에서도 청년들의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설립된 곳을 나타낸다. 다수의 청년들이 소수의 안정적인 직장에 몰리며 청년실업이 구조화되는 상황에서 소셜 벤처는 청년실업 문제 해소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대학가에서 소셜 벤처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고 이를 지원하는 곳도 늘어나고 있다. 고려·서강·서울·연세대·카이스트 경영대학(원)에서 함께 운영하는 한국쏘시얼벤처대회와 희망제작소가 주최하는 '청년 사회적 기업 창업 아이디어 경연대회' 등에서 많은 청년 소셜 벤처 기업가들을 발굴하고 있다. 제이드는 2008년 '청년 사회적기업 창업 아이디어 경연대회' 수상팀이다.
서울 신설동의 엘리베이터도 없는 허름한 5층 건물 꼭대기에 있는 제이드 사무실을 찾은 건 지난 13일 오전. 신발을 벗고 들어간 19.8㎡(6평)의 작은 사무실은 "이곳에서 사느냐?"고 물어볼 정도로 아늑했다. 사무실 한가운데 좌식 탁자와 흰 소파·베개에서 편안함이 느껴졌다.


수줍은 웃음으로 기자를 맞이한 제이드 식구들의 모습에서는 이틀 전(11일) 공무원 시험을 치른 십수만명의 공시생들의 걱정과 불안은 느껴지지 않았다. 한편으로, 경제 위기에 회사를 제대로 꾸리고 있는지 의심도 들었다. 특히, 제이드 대표인 선영씨는 아직 대학생이다.

이날 낮 김소은씨가 오는 20일 새로 출시할 이면지 수거함 제작을 주문하러 가는 길에 따라나섰다. 서울 을지로 인쇄골목의 여러 박스가게를 찾았지만 만족스러운 가격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껏 동화작가를 꿈꿔왔던 소은씨에게 흥정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며칠 전보다 개당 500원이나 비싸졌네요."
"그땐 견적을 잘못 낸 거예요. 죄송해요. 그 정도는 받아야 해요."

소은씨는 "수량은 적고 요구사항이 많으니 가격 맞추기가 힘들다, 시제품 확인도 어려워 인쇄가 잘못된 적이 많다"며 "예상보다 돈이 더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 게 사업하는 데 큰 어려움"이라고 전했다.

계약을 치르지 못하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 소은씨에게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좋다, 친구들이 걱정하면서도 '아이디어 좋다, 좋은 일 한다'고 힘을 준다"는 답이 돌아왔다.

치열한 시장에 성공적 데뷔한 제이드... 미국 시장 진출 꿈꾼다

 지난 13일 오후 제이드 식구들이 서울 신설동의 사무실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
지난 13일 오후 제이드 식구들이 서울 신설동의 사무실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오마이뉴스 선대식

창업도 어렵지만 수익 내기는 더욱 어려운 곳이 디자인소품 시장이다. 전문 쇼핑몰의 판매 수수료는 35~45%에 달한다. 값비싼 친환경 소재를 사용하고, 판매액의 10%를 기부하는 제이드는 생존 자체가 어렵다.

하지만 태어난 지 9개월 된 제이드는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지난해 11월 선보인 2천원짜리 크리스마스 카드 3500장은 85% 이상 팔려나갔다. 친환경 재생지 등을 쓰고 콩기름 인쇄한 제품이다. 신문지로 만든 연필(800원) 2000자루는 현재 재고가 거의 없다.

제이드의 작지만 값진 성과는 철저한 시장 분석 덕분이라는 게 선영씨의 설명이다. 그는 "2008년 기준으로 디자인소품 시장은 3000억원 규모로 500여개의 브랜드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면서 "디자인 차별화와 합리적인 가격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선영씨는 "요즘 디자인소품은 심플하고 감성적인 것이 트렌드인데, 어떻게 보면 획일적이고 시각적인 면만 강조한다"며 "제이드는 색감이 다르고 이국적인 디자인에 기능적인 측면까지 고려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소비와 기부를 연결시켜, 환경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는 게 우리 제품의 큰 강점"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가능성을 본 성공적인 데뷔"라는 게 제이드의 자평이다. 선영씨는 "얼마 전 습지의 날 행사 때 환경부와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뿌듯하다"며 "2010년이면 매출 3억원은 달성할 수 있다, 오는 5월부터는 자립가능한 정도의 월급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진출도 꿈만은 아니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선영씨의 친언니 홍정희(25)씨가 시장조사를 거의 끝냈다. "미국에는 친환경 디자인 소품을 파는 곳이 많지 않다, 미국 사람들에게 우리 제품을 보여주니 반응이 좋았다,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제이드 쪽의 판단이다.

"도전했더니, 거기 길이 있더라"

 지금까지 제이드가 내놓은 스티커, 크리스마스카드, 연필 등의 디자인소품의 반응이 좋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제이드가 서울 삼청동 거리에서 시민들에게 상품을 팔던 모습이다.
지금까지 제이드가 내놓은 스티커, 크리스마스카드, 연필 등의 디자인소품의 반응이 좋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제이드가 서울 삼청동 거리에서 시민들에게 상품을 팔던 모습이다. 제이드

사실, 제이드의 시작은 작은 북극곰 인형에서 비롯됐다. 선영씨는 "대학교 1학년 때 북극곰 인형을 선물 받고는 예뻐하다가 멸종위기종인 북극곰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지구온난화에 대한 경각심을 전하기 위해 지난해 여름 집에서 북극곰 스티커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한 달 뒤, 웹매니저로 일하는 이채씨와 함께 부산국제어린이영화제에서 과외로 번 돈 30만원으로 스티커를 만들어 팔았다. 선영씨는 "부스를 찾은 사람 중 10명 중 8명이 스티커를 살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고 말했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어린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소은씨가 북극곰 이야기를 만들면서 제이드에 합류한 게 이때쯤이다.

선영씨는 "<세상을 바꾸는 대안기업가 80인>이란 책을 읽고, 디자인·환경·비즈니스를 접목시킬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7월 22일 사업자 등록증을 발급받았다"고 밝혔다. 많은 청년들이 불안정한 사회 속에서 안정적인 직장만을 꿈꾸는 상황. 그에게 두려움은 없었을까?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대기업은 내가 아니어도 많은 이들이 간다. 돈 못 벌면 불안정한 건가? 더 넓은 집, 더 좋은 차에 대한 욕심으로는 행복을 채울 수 없다. 사회에 도움되고 돈도 벌고 싶었다. 20대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 해보니 길이 있었다."

선영씨는 또래 20대 청년들에게 "도전하라"고 말한다. "제이드가 설립된 건 30만원으로 북극곰 스티커를 만든 것"이라며 "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부터 실행에 옮기는 게 모든 일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이채씨 생각도 다르지 않다.

"작년까지 회사를 다녔는데, 돈 버는 기계 같았다. 대기업 들어가도 40~50대에 다 나오지 않나. 차라리 20대 때 잃은 게 없으니 지금 창업에 도전하는 게 낫다. 주변 사람들이 '너희의 상상이 실현됐으면 좋겠다', '너희가 희망'이라고 말한다."

덧붙이는 글 | 제이드 홈페이지(www.wearejade.com)를 방문하면, 제이드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제이드 홈페이지(www.wearejade.com)를 방문하면, 제이드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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