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83)

― ‘남의 험담’, ‘남의 눈’ 다듬기

등록 2009.04.18 19:35수정 2009.04.18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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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남의 험담

 

.. 너도 나도 어디선가 주워들은 소문으로 남의 험담을 한다 ..  《분도출판사 편집부 엮음-십자가의 길》(분도출판사,1981) 8쪽

 

 '소문(所聞)'은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이야기'로 손보아도 됩니다. "험담을 하다"는 '헐뜯다'나 '깎아내리다'로 손봅니다.

 

 ┌ 험담(險談) : 남의 흠을 들추어 헐뜯음

 │   - 험담을 늘어놓다 / 험담을 일삼다 / 험담을 퍼붓다

 │

 ├ 남의 험담을 한다

 │→ 남을 헐뜯는다

 │→ 남을 깎아내린다

 │→ 남 이야기를 마구 한다

 └ …

 

 한자말 '험담'을 그대로 두고 싶다면, "남 험담을 한다"처럼 적을 수 있는데, 이렇게 적는 사람보다는 토씨 '-의'를 붙이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아무래도 토씨 '-의'가 붙지 않으면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끼리라 봅니다.

 

 ┌ 친구의 험담을 늘어놓다 → 동무를 헐뜯는 말을 늘어놓다

 ├ 누나의 험담을 일삼다 → 누나를 자꾸 깎아내린다

 └ 정치꾼의 험담을 퍼붓다 → 정치꾼한테 모진 말을 퍼붓다

 

 그래서 '험담'이라는 낱말을 살려 놓기보다는 '헐뜯다'나 '깎아내린다'나 '모진 말을 하다' 같은 말을 넣어 줄 때가 한결 낫습니다.

 

 

ㄴ. 남의 눈

 

.. 이렇게 하면 금방 남의 눈에 뜨여 잡아먹힌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에요 ..  《다시마 세이조/정근 옮김-뛰어라 메뚜기》(보림,1996) 10쪽

 

 "잡아먹힌다는 것을"은 "잡아먹히는 줄을"이나 "잡아먹힌다고"로 다듬어 줍니다.

 

 ┌ 남의 눈에 뜨여

 │

 │→ 남 눈에 뜨여

 │→ 남들 눈에 뜨여

 └ …

 

 내 눈이고 남 눈입니다. 네 눈이고 우리 눈입니다. 아버지 눈이고 어머니 눈이며, 형 눈이고 누나 눈입니다. 남이나 우리는 한두 사람이 아닐 때가 있어 "남들 눈"이나 "우리들 눈"이기도 합니다.

 

 ┌ 남한테 뜨여

 ├ 남들한테 뜨여

 ├ 남한테 보이어

 ├ 남들한테 보이어

 └ …

 

 이 자리에서는 '뜨여'를 남기고 '눈에'를 덜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한테' 토씨를 붙입니다. 또는, '보이어'를 넣어도 어울립니다.

 

 때로는 토씨 '-이'를 붙이면서 움직씨는 '알아채다'나 '알아차리다'나 '알아보다'나 '알다'를 넣어 줍니다.

 

 보기글이 실린 책을 읽으면, 메뚜기를 잡아먹으려 하는 '남'을 두고 '녀석'이라고 가리키곤 합니다. 그래서 이 '녀석'이라는 낱말을 넣으면서 "녀석들 눈에 뜨여 잡아먹히는 줄을 알면서도"처럼 손질해도 잘 어울립니다. "녀석들한테 뜨여 잡아먹히는 줄을 알면서도"나 "녀석들이 알아채어 잡아먹히는 줄을 알면서도"처럼 손질해도 됩니다.

 

 ┌ 남이 알아채어

 ├ 남들이 알아채어

 ├ 남이 알아보아

 ├ 남들이 알아보아

 └ …

 

 보기글을 다듬으며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남 + 의' 꼴로 토씨 '-의'를 붙인 이 보기글은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에 실려 있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그림책을 읽다가 '남의'라는 말투에 익숙해질 텐데, 이 그림책을 어머니가 읽어 주면서 다시금 익숙해집니다. 생각있는 어머니라면 "금방 남의 눈에 뜨여"처럼 읽지 않고 "금방 남 눈에 뜨여"처럼 읽을 텐데, 이렇게 읽어 주었다 하여도 아이가 나중에 혼자서 그림책을 읽다 보면 저절로 "금방 남의 눈에 뜨여"처럼 읽게 되니, 아주 어릴 때부터 토씨 '-의'가 달라붙는 말투에 눈과 입이 익고 맙니다.

 

 나이를 한 살 두 살 더 먹으면서 읽게 되는 여느 동화책에다가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에는 아주 대놓고 토씨 '-의'가 쓰입니다. 그래서, 열두 해에 걸쳐 초중고등학교를 다닌 아이들치고 토씨 '-의'가 몸에 안 밴 아이들은 없다고 할 만합니다.

 

 맨땅에 박치기를 하는 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애먼 달걀로 바위를 치는 꼴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그렇지만 맨땅에 머리를 꼴아박는 짓이 된다 하여도, 언젠가 아이들 스스로 옳고 바른 말씀씀이를 찾아나설 때가 있지 않겠느냐고 믿어 봅니다. 애먼 달걀로 바위를 치는 어줍잖은 짓이 된다 하지만, 몇몇 아이들이나마 스스로 살갑고 싱그러운 글씀씀이를 알아보고자 소매 걷고 나설 날이 있지 않겠느냐고 믿어 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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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8 19:35ⓒ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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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씨 ‘-의’ #-의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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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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