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31일에 전국 모든 초등학교가 똑같이 일제고사로 본 국어 진단평가 평가 문항은 4,5,6학년 모두 30문씩 출제되었습니다. 모두 90문항에서 사지선다형 문항은 81문항으로 90%를 차지합니다. 아이들이 답안지에 직접 답을 쓰는 서답형 문항는 9문항(4학년 1문항, 5학년 5문항, 6학년 3문항)인데, 서답형 문항 역시 서술식이나 논술식이 아닌 단답형 문항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말이 서답형이지 사지선다형 문항과 크게 다르지 않게 출제되어 있습니다.
다른 교과도 마찬가지지만, 일제고사 진단평가 문제 유형이 대부분 사지선다형이다보니 제7차 국어과 교육과정에서 제시하고 있는 국어과 내용영역과 성취기준을 대부분 진단할 수 없었습니다.
제7차 국어과 교육과정에 나와있는 국어과에서 반드시 가르쳐야할 내용영역은 듣기·말하기·읽기·쓰기·국어 지식·문법 모두 여섯 영역입니다. 그런데 이번 일제고사 국어과 진단평가 문항을 살펴보면, 여섯 영역 중에서 읽기와 쓰기 영역의 일부분과 국어지식과 문법영역만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결국 국어과의 일부분을 평가한 것을 가지고 국어과 기초학력을 진단해서 '도달'과 '미도달'로 평가해서 통지하겠다는 말인데, 이는 국어과 평가 방법으로 최악의 평가방법입니다.
'듣기'와 '말하기'를 평가안한 국어과 진단평가
국어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이 무엇일까요? 제7차 국어과 교육과정에서는 국어과 교육 목표를 다음과 같이 제시해 놓고 있습니다.
언어 활동과 언어와 문학의 본질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언어 활동의 맥락과 목적과 대상과 내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국어를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하며, 국어 문화를 바르게 이해하고, 국어의 발전과 민족의 언어 문화 창달에 이바지할 수 있는 능력과 태도를 기른다.
가. 언어 활동과 언어와 문학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익혀, 이를 다양한 국어 사용 상황 에서 활용하는 능력을 기른다.
나. 정확하고 효과적인 국어 사용의 원리와 작용 양상을 익혀, 다양한 유형의 국어 자료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사상과 정서를 창의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을 기른다.
다. 국어 세계에 흥미를 가지고 언어 현상을 계속적으로 탐구하여, 국어의 발전과 국어 문 화 창조에 이바지하려는 태도를 기른다.
그러니까 국어과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삶 속에서 우리나라 말(모국어)을 바르게 사용하기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의사 소통'입니다. 국어과 교육과정에서 제시하고 있는 여섯 가지 영역 중에서 가장 중요한 영역을 꼽으라면 단연코 '듣기'와 '말하기'입니다. 그 다음이 '읽기'와 '쓰기'이고, '국어 지식'과 '문법'은 모두 '잘 듣기'와 '잘 말하기', '잘 읽기'와 '잘 쓰기'를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일제고사 국어 진단평가에서는 국어과에서 가장 중요한 영역인 '듣기'와 '말하기'를 쏙 빼놓았습니다.
제7차 교육과정에서 <듣기> 영역 내용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듣는다.'와 '태도를 지닌다.'이고 <말하기> 영역 내용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말한다'와 '태도를 지닌다'입니다. 그런데 이와같은 내용은 직접 듣고 말하는 상황을 보면서 평가해야지, 사지선다형으로 절대로 평가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평가한다고 해도 제대로 평가할 수가 없습니다.
이번 국어과 진단평가가 사지선다형과 단답형으로만 구성되다보니 듣기와 말하기를 빼 놓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세 권으로 된 국어교과서 가운데 한 권 '말하기·듣기' 내용은 모두 평가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앞으로도 진단평가가 이런 식으로 계속 진행되면 교실에서 '말하기·듣기' 책은 소홀하게 여겨서 아예 배우지 않는 일이 생길지 모르겠습니다.
'읽기'와 '쓰기'도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습니다.
<읽기>영역의 내용은 제대로 평가한 것일까요? 이번 평가 문항 대부분이 제시한 보기글을 읽고 문제에서 원하는 답을 고르는 문항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읽기 영역은 충분히 평가된 것으로 알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만, 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읽기 내용이 단순히 글을 읽고 내용을 파악하는 것만을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읽기> 영역 내용 속에 들어있는 '읽는 태도를 지닌다.', '도서관에서 읽을거리를 찾아 읽는 습관을 지닌다.'는 내용은 사지선다형으로 평가할 수 없고 평상시 태도를 보고 평가를 해야합니다. 당연히 이번 진단평가에서는 평가할 수 없었습니다.그리고 5학년 24번 평가문항에 다음과 같은 읽기 평가 문항이 나옵니다.
이 문항에서는 대사를 읽을 때 '어울리는 표정과 목소리로 적절한 것(설명)'을 네 개 중에 고르는 문제입니다. 과연 이런 식의 평가문항이 읽기 목표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문항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내용의 읽기 영역 내용 평가는 직접 목소리를 내 보게 해서 표정과 목소리가 어울리는지 어울리지 않는지 평가를 해야지 사지선다형으로 해서는 정확하게 평가할 수 없습니다.
<쓰기> 영역의 평가는 어떨까요? <쓰기 >영역 내용에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글을 쓴다'이고, 그 다음이 '태도를 지닌다.'입니다. 그런데 이번 국어과 진단평가에서 실제로 글을 쓰는 능력을 평가하는 문항은 한 문제도 출제되지 않았습니다.
<국어 지식> 영역의 내용은 대체로 다른 영역에 비해 사지선다형 평가로 평가할 수 있는 내용이 많기 때문에 많은 내용을 평가하고 있지만, 역시 '바른 말을 사용하려는 태도를 가진다'.(3학년)라든가 '문화 유산인 우리말과 우리글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를 지닌다.(4학년)', '공식적인 상황에서 표준어를 사용한다.(5학년)'는 내용은 평가할 수 없었습니다.
여전히 한 가지 느낌만을 강요하는 문학 영역 평가
<문학> 영역에서도 늘 그렇듯 문학영역 내용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작품'을 읽고 내용을 파악하는 것은 많이 평가하고 있지만, '작품의 분위기를 살려 낭독한다.', '작품에 나오는 인물이 되어 본다.', '작품을 스스로 찾아 읽는 습관을 지닌다.(3학년)'같은 라든가, 읽은 작품에 대해 독서록을 작성하는 태도를 지닌다.(4학년)', '작품의 일부분을 창조적으로 바꾸어 쓴다.(5학년)'는 평가할 수 없었습니다.
<문학> 영역 내용 가운데 '작품은 읽는 이에 따라 수용이 다를 수 있음을 안다.(5학년)'고 교육과정에 나와 있으면서, 이번 국어과 진단평가 6학년 24번 문항을 보면, 한 가지 느낌으로만 정답을 몰아가고 있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보고 있으니까, 저의 학창시절 국어시간에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배우면서 국어 선생님이 이 시에서 중요한 '님'에 밑줄을 치라고 하고, '님'은 '조국'이라고 알려주던 일과 국어 시험에서 '조국'이 아닌 다른 답을 쓰면 틀리게 했던 일이 문득 떠오릅니다.
논술과 토론 내용 평가가 없습니다.
중요대학의 입시에서 통합논술형 문제가 출제되어 그런 것이 가장 큰 이유지만, 최근 들어 학교 국어 수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내용이 논술교육이고, 학교 수업에서 토론식 수업을 많이 권장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논술지도와 토론식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곳이 많습니다. 그러나 정작 국어과 진단평가에서는 논술과 토론에 대한 평가는 없습니다.
6학년 1번 문항이 토론 평가라고요?
토론 교육에서 토론할 때 규칙을 잘 지켜서 말한 사람을 알아맞히는 문제로 국어과의 토론 교육을 평가한다는 것이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과연 문항 출제자가 토론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지 따져 묻고 싶습니다. 토론 활동의 평가는 실제 토론 과정에서 평가해야 맞습니다. 단적으로 말하면, 이 문제를 맞혔다고 해서 모두 토론을 잘 하는 어린이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문제에서 답을 골라 맞추는 것과 실제 토론은 다릅니다. 이 역시 오직 사지선다형 지필검사만으로 국어과 교육을 평가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사지선다형 지필검사로는 국어과 교육과정에서 제시하고 있는 국어과 영역의 내용도 국어 수업의 내용도 절대로 제대로 평가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일제고사식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려면, 국어과 교육과정을 제대로 지켜서 영역의 내용을 골고루 빠짐없이 지도하면 안되고 보기글 읽고 내용 파악하는 위주의 문제 풀이방법만 줄기차게 가르치면 됩니다. 우리도 이런 수업 방법이 수업하기 훨씬 편합니다.
이처럼 국어과 뿐만 아니라, 모든 교과교육에서 사지선다형 지필검사로는 도저히 교육과정에서 제시하고 있는 내용을 평가할 수 없는 것이 더 많은데도 교과부는 일제고사를 계속 진행하겠다고 고집합니다.
혹시 교과부가 교사들에게 교육과정에서 요구하는 다양한 내용을 다양한 방법으로 어렵게 가르치지 말고, 일제고사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식으로만 쉽게 가르치라고 암묵적인 지시를 내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덧붙이는 글 | 지난 3월 31일에 전국 초등학교에서 일제고사로 실시했던 진단평가 문제는 이 밖에도 더 많지만, 이것으로 끝내겠습니다. 다음부터는 초등교육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대안으로 제가 교실에서 경험하고 실천한 내용을 바탕으로 써 보려고 합니다.
2009.04.19 16:37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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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만에 독립한 프리랜서 초등교사. 일놀이공부연구소 대표, 경기마을교육공동체 일놀이공부꿈의학교장, 서울특별시교육청 시민감사관(학사), 교육연구자, 농부, 작가, 강사. 단독저서,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외 열세 권, 공저 '혁신학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다.'외 이십여 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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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따로 평가 따로인 일제고사 국어 진단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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