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사람] 그녀가 남기고 간 편지와 누드화첩

[김갑수 한국전쟁 역사팩션 42회] 편지

등록 2009.05.02 12:44수정 2009.05.06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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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어지고 있었다. 밖에 차 소리가 들리는 듯하더니 누군가 대문을 꽝꽝 두들겼다. 김성식은 일순 공포에 휘말려들었다. 마지막으로 퇴각하는 인민군이 대학교수인 자기를 납치하러 온 것은 아닐까 생각 들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희박했다. 하지만 이 비상시국에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대문 두들기는 소리가 더 다급해졌다. 정숙이 일어나 치마끈을 여미며 말했다.

"내가 나가 볼 테니까, 당신은 뒷문을 통해 밭으로 가 숨으세요."

김성식은 제대로 옷도 입지 못한 채, 기다시피 허리를 숙이고 밭으로 나갔다. 환한 달빛이 그의 속옷을 비치고 있었다. 그는 밭고랑에 앉아 가슴을 졸였다. 이두오의 움막이 달빛을 받아 희읍스름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두오는 며칠째 산속으로 피신해 있는 중이었다.

'굶어 죽지는 않았는지?'

집 뒷문 쪽에서 신발 끄는 소리가 들렸다. 정숙이었다.

"인민군 여자 장교가 다녀갔어요."

방에 들어온 김성식은 등화관제 커튼을 단속한 다음 촛불을 켰다. 그의 앞에는 웬 화첩 하나가 놓여 있었다.


"경황이 없어 인사도 못 드리고 떠난다면서, 이 사진 두 장과 책을 놓고 갔어요. 책은 두오 청년에게 전해 달라고 했어요."

조수현이 왔다 간 것이었다. 그녀는 근무처에 꼼짝없이 비상대기하고 있다가, 갑작스럽게  퇴각 명령을 받았을 터였다. 사진은 지난 주 배밭에서 조수현이 가져온 카메라로 세 사람이 찍은 것이었다.


"당신이 셔터를 눌러 준 사진인 줄 알지?"
"참 괜찮은 인민군 처녀였어요."

이 난리 경황 중에도 사진을 현상하여 전해주고 가는 그녀의 마음씨가 갸륵하고 미더웠다. 책은 러시아 화가의 천연색 화첩이었다. 화첩 뒷면에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짐작건대 이두오에게 쓴 편지 같았다. 김성식은 화첩에 이두오 몫의 사진 한 장을 넣고 책상 위에 단정히 정리해 놓았다. 나머지 한 장은 자신의 가방 틈새에 담아 놓았다.

이틀 후 산에서 돌아온 이두오는 화첩을 열어보았다. 그림들은 주로 아름다운 여인들의 반라 또는 누드들이었다. 화초를 배경으로 서 있는 여인들은 야릇하고 몽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두오는 조수현이 남긴 짤막한 글을 읽었다.

오랫동안 내 가슴에 담아둔 이야기들은,
밤이 되면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될 것입니다.
내가 그대에게 차마 애틋해 하지 못한 말들,
그 안타까운 마음들이 모여 별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내 가슴을 온통 적시어 버린 그대의 휘황한 별들...
내 마음의 애틋한 별과 그대의 휘황한 별들을 모아,
가운데 하늘에 뚜렷이 찬란한 별 하나를 만들어 놓겠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지목해 준 직녀성입니다.
이 공포 속에서 당신이 살아만 있어 준다면,
내가 이곳에 다시 올 수만 있다면,
그래서 별 이야기를 한 번 더 들을 수만 있다면...
이런 가혹한 염원들이 두서없이 스쳐가고 있습니다.
그게 허락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먼발치서나마
그 직녀성 그 별에,
우리 두 사람 눈동자의 초점을 맞추기라도 할 수 있을는지요?

다급히 서울을 떠나며, 당신의 조수현

대한민국

새벽부터 온 마을이 시끌벅적했다. 인민군이 버리고 간 군수물자 약탈극이 벌어진 것이었다. 인민군은 갔지만 아직 국군과 미군이 들어오지 않은 것을 사람들은 약삭스럽게 눈치 챈 모양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식품과 피륙들을 서로 많이 가지려고 수라장을 이뤘다고 했다.

아침 일찍부터 집을 비우고 나간 정숙이 반쯤 남은 밀가루 포대를 들고 집에 나타났다. 그녀의 손에는 생채기가 나 있었다. 김성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점심이 지나자 총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미군이 들어와 소탕전을 벌이는 것이었다. 총알이 어디로 날아오는지 몰라 방에 앉아서도 고개를 들 수 없는 지경이었다. 총알 하나가 사랑 문을 뚫고 들어와 잉크병을 깨뜨렸다. 부엌 문에도 총알이 뚫고 지나갔다. 인민군이 올 때는 민가에 총을 쏘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미군은 아주 달랐다. 그들은 모든 움직이는 것을 있으면 무조건 방아쇠를 당기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새벽에는 인민군 유격대가 미군을 기습했다. 예상 없이 습격해 온 유격대에게 미군은 그 우수한 화력을 쓸 수 없었는지 적지 않은 희생자를 냈다고 했다. 전투 장면을 본 사람들은 인민군의 민첩성과 공격정신을 예찬했다. 그들은 피아(彼我)를 떠나 조선인의 우수성에 흡족해하는 듯했다. 김성식도 과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미군이 지나가면 아이들은 손뼉을 쳤다. 누가 시킨 것인지 아니면 자발적인 것인지, 전쟁통의 아이들은 어른보다 눈치가 빨라져 새로운 점령군을 스스로 알아서 환영했다. 그런데 손뼉을 치는 아이들이 미군이 던진 돌멩이에 맞아 부상하는 일이 생겼다.

알고 보니 미군은 전사자와 부상자를 담가에 실어 나르고 있는 중이었다고 했다. 그걸 모른 아이들이 좋아라고 손뼉을 치는 것을 본 미군이 분노를 터트린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기껏 환영하다가 돌을 맞았으니 어리둥절했을 터였다.

김성식은 딸 숙희와 아들 목이· 봉이를 데리고 청수장께로 소풍을 나갔다. 아이들은 좋아서 재잘거렸다. 그러나 그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한 달여를 굶다시피 살아온 그였다. 또한 눈에 익은 북악도 예전처럼 친밀감이 느껴지지 않고 낯설어 보였다. 혹시 숲속에서 무엇이나 불쑥 튀어나오지 않을까 두려워 그는 앞서가는 아이들을 불러 세우고 발길을 집으로 돌려야 했다.

10월 초하루였다. 마을은 차츰 평온을 찾아가는 듯했다. 김성식은 북으로 치고 올라간 국군과 미군이 어디쯤 갔을지 궁금했다. 그는 미군의 인천 상륙이 자기 짐작보다 훨씬 이전에 있었다는 것을 알고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9월 15일에 상륙하여 다음 날로 인천을 점령한 미군이 서울을 탈환한 것은 9월 28일이었으니, 인천에서 서울까지 100리 길을 오는 데 무려 13일씩이나 걸린 셈이었다.

김성식의 의문 제기에는 다른 이들이 간과하는 날카로운 점이 있었다. 인천에서 서울까지 오는 데 13일의 시간을 끈 것은 인천상륙작전 직후에 중대한 차질이 빚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요컨대 인천상륙작전은 미군이나 대한민국에서 선전하는 것처럼 전적으로 성공한 것이 아니었다. 미군은 인천을 점령하면서 그곳의 인민군 2천 명을 거의 전멸시켰다. 이것은 인민군에게 최대의 위기 상황이 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낙동강 전선에 있는 북한의 주력부대가 남북 양면으로 포위될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워커 미8군사령관은 인천 상륙과 때를 맞춰 낙동강 전선의 유엔군에게 총반격명령을 내렸다. 유엔군은 대구 - 김천 - 대전 - 수원 라인을 타고 북상 진격했다. 그런데 서울을 빨리 탈환하여 인민군을 양면 포위하려는 기도는 기대대로 실현되지 않았다. 서울 탈환까지 걸린 13일은 적지 않은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기간 중 대부분의 전투는 서울 연희동에서 벌어졌다. 국군과 미군은 교대로 투입되어 공격했지만, 인민군의 방어벽을 쉽게 뚫지 못한 것이었다. 김성식이 정릉에서 들었던 대부분의 포성은 연희동에서 난 것이었으니 가깝게 들렸으며, 의외로 포성이 여러 날 계속 된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인천상륙작전 #연희동 #누드화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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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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