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알았을까? 5년 뒤면 뒤바뀔 세상을

[책 속으로 떠난 역사여행 39] <일본잡지 모던일본과 조선 1940>

등록 2009.05.03 09:53수정 2009.05.03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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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모던일본> 조선판을 완역한 <일본잡지 모던일본과 조선 1940>이 출간되었다. <일본잡지 모던일본과 조선 1939>에 이어 두 번째 완역본이다.

교과서나 논문 등을 통해서만 일제 식민지 시대를 접했던 사람들에게 잡지가 전하는 모습은 전혀 다른 모습이다. 중일전쟁 이후 창씨개명, 신사참배가 강요되고,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의 수탈이 이루어지던 암울한 시기라는 선입견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1940년대 일부 여성들의 삶

표지 <일본잡지 모던 일본과 조선 1940>
표지<일본잡지 모던 일본과 조선 1940>어문학사
잡지 간행 기념으로 '조선의 약진과 발전하는 눈부신 모습을 상징하는 <미스 조선>을 선발했다. 잡지에 당선자들의 프로필과 사진이 소개된 것은 당연지사. 심사위원들의 심사평까지 자세히 실렸다.

8명의 심사위원(일본인 6명, 조선인 2명)이 엄선해서 <미스 조선>으로 당선된 아가씨는 평양출신 19세 박온실이었다. 심사위원의 한 사람이었던 일본인 작가 구메 마사오의 심사평은 다음과 같다.

박온실과 정온녀 두 아가씨를 나란히 두고 꽤나 망설였다. 정 양의 이지적인 미,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꾸민 듯한 느낌이 나는 것이 아쉽다. 전체적으로 청초하고 연분홍빛 느낌이 물씬 나는 박온실을 추천한다. 눈썹과 눈썹 사이가 넓은 것이 오히려 포용력 있고 누구에게나 호감을 줄 것 같은 이미지라 좋다. (책 속에서)

경성 기생 4명도 화보와 함께 등장한다. 세 명의 기생은 '일본 방문기' 형태로, 또 한 명의 기생은 '기생의 일상' 형태로 소개했다. 먼저 기생의 일상이 어떻게 소개되고 있는지 간략히 살펴보자.


눈부신 햇살과 함께 침실에서 일어나 옷매무새 고치고 단장,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가정적 모습을 보여주는 기생, 기생들이 가장 자유로운 낮 시간, 마음에 드는 옷 꺼내 입고 거리로 나가 친구와 연인도 만나고 단팥죽도 사먹고, 쇼핑도 한다. 호황인 조선에서 기생의 일도 호황이라 오후 3시면 벌써 기생을 마중하는 차가 등장, 거리에 가로등이 켜질 무렵이면 장구도 치고 노래도 하고 춤도 추며 서정적으로 생활하는 기생. (화보 내용 요약)

다음에는 일본 도쿄를 방문한 기생의 모습은 어떻게 소개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바람도 싱그러운 초여름 경성 최고의 기생 세 명이 도쿄를 방문했다. 아름다운 저고리 옷고름, 짧은 스커트를 바람에 날리며 히비야 공원을 걷다. 도쿄의 아가씨, 청년, 할머니, 할아버지 할 것 없이 모두 기생의 모습에 반해버리고, 한창 만개한 장미꽃 아름다움과 경쟁하는 반도의 꽃 기생들. 경성의 다른 친구들과 함께 왔으면 좋겠다는 기생들은 어느새 도쿄 히비야 공원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집 정원처럼 익숙하다며 이야기꽃을 활짝 피운다.(화보 내용 요약)

하지만 이렇게 사는 여성들이 1940년대 얼마나 되었을까. 실제 기생들은 잡지 속에서 처럼 살았을까. 이들의 모습을 통해 식민지 조선 여성들도 나름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즐겼다고 얘기하고 싶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

잡지 발행인 마해송씨의 생각

1차 조선판 <일본잡지 모던일본과 조선 1939>이 품절에 가까울 정도로 성공을 거둔 것에 고무되어 마해송씨는 2집을 발간하면서 잡지 발간에 격려와 성원을 보여준 많은 사람들의 편지를 소개하고 있다. 잡지 발행의 정당성을 격려와 성원을 보여준 열열 독자들의 성원과 격려에서 찾고자 하는 생각이다.

알다시피 내선융화 운운한 지는 오래되었다. 그러나 다른 역사를 걸어온 민족이 완전히 동화되기까지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필요하고도 간단한 방법이 여기에서도 역시 유효하지 않을까 한다. 즉 <조선판>의 월간 발행이 필요한 것이다.

<조선판>의 월간 발행은 나 혼자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 모든 독자의 바람이요 또 성전을 수행하고 있는 일본의 절실한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경영에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있겠지만 이 기회에 마해송 씨의 분발을 바라마지 않는 바다. (전선의 용사 아라키)

한편 이 잡지 내용에 대해 불만을 표하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억지로 조선의 좋은 점만 보여주려 했다는 일본인, 조선인이 사장을 하는데도 어떻게 그런 만화를 실을 수 있느냐며 화를 내는 조선인도 있었다. 이에 대한 마해송 사장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한 마디로 대수롭지 않는 일이라고 단정했다. 더불어 잡지의 내용에 자신의 의도가 개입되지 않았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사원들이 하는 대로 맡겨두었다면서 친일적 잡지를 펴낸 책임에서 자신은 슬며시 발을 빼고 있다.

총독의 말 통해 본 식민지 조선의 현실

기자와의 대담 형식으로 미나미 총독의 말이 소개되고 있다. 그 중 식민지 조선과 관련된 대목을 살펴보자. 먼저 전쟁에 조선의 젊은이들을 동원했던 지원병 제도에 대해서 총독은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었을까?

병사들 가운데는 이미 출정해서 명예롭게 전사한 자도 있네. 남은 가족은 이를 가문의 영광으로 여기고 정신적으로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상황이지. 조선에서는 예부터 군인이라고 하면 가장 신분이 천한 노무자처럼 여겨왔거든. 그런데 현재 반도인은 국체와 시국을 잘 인식하고 각성해서 지원병이 되려고 저렇게 지원하는 자가 많게 되었어. 지원병은 앞으로도 점점 늘어날 걸세. (책 속에서)

한편 식민지 조선의 경제 상황에 대한 총독의 인식을 살펴보자.

현재 조선의 총생산액은 약 30억 엔이네. 농산물이 가장 많아서 총생산액의 약 50%, 임업이 1억 6천만  엔, 수산업이 1억 8천만 엔, 공업이 11억 4천만 엔 정도지. 이 중 농업과 공업은 평행주의를 취하고 있네.

만주사변, 중일전쟁 이전에 조선의 산업은 농업과 임업이 중심이어서 식량과 지상자원 증산에 주력했지만 전쟁 이후는 세계 속의 일본으로 우뚝 서게 한 과학의 진보에 힘입어 수력, 전력, 노동을 갖추게 되었지. (책 속에서)

지원병에 동원된 병사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고, 전사자 가족들이 가문의 영광이라 여겨 자랑과 긍지에 차 있다는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지원병 제도나 창씨개명에 대해 저항만 있었던 게 아니라 동조도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는 역자의 글을 읽으며 가슴이 답답해진다. 하긴 틀린 말은 아니다. 아직도 정신대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주장을 하는 대한민국 사람도 있으니까.

1940년대 전시 상황의 경제에 대한 총독의 말만 들으면 일본의 도움을 받아 '약진하는 조선'의 이미지가 그려진다. 농업 중심 1차 산업 중심에서 공업화의 성장이 눈부시게 이루어지는 조선의 모습. 미나미 총독의 말을 들으며 득의양양 웃음 지을 사람들이 떠오른다. 일제 식민지도 우리나라 근대화에 많은 기여를 했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 입이 안달이 난  사람들의 모습이.

식민지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던 사람들

잡지 속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제1회 조선예술상 수상자 이광수, 밤 기차를 타고 가며 조선어와 일본어로 대화하는 젊은 조선인 부부, 교토 대학 출신 경제학사로 경성방직의 성공을 발판으로 만주국 경성주재 총영사로 만주와 조선을 하나로 만들기 위한 사명감에 충실하는 김연수, 음주도 담배도 오락도 하지 않고 사업에만 매달린 화신백화점 경영주 박흥식….

대한제국 궁내부 자금을 일본 제일은행에 예치했다가 강탈했음을 대담에서 얘기하는 전 조선은행 이사 기무라, 조선 민족을 정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생식에 의한 정복이라며 일본인과 조선인의 잡혼을 장려해야 한다는 미쓰비시지소 주식회사 대표이사 아카호시, 중국식 이름에서 해방되어 일본식 이름으로 바꾸는 것이 반도인이 진정한 일본인이 되는 길이라는 총독 미나미….

잡지에 등장한 이들은 194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았던 사람들이다. 전시 식민지 상황 속에서 강제 동원 당할 염려도, 끼니 이을 양식을 강제 공출당할 위험도 별로 없었던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1940년대는 참 좋은 세상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5년 뒤 세상은 바뀌었다. 잡지 속 그들은 알았을까. 5년 뒤 바뀔 역사를.

덧붙이는 글 | 홍선영 외/어문학사/2009.4/17,000원


덧붙이는 글 홍선영 외/어문학사/2009.4/17,000원

일본잡지 모던일본과 조선 1940 - 완역

모던일본사 지음, 한비문 외 옮김,
어문학사, 2009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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